PART 1. 78-0-0
시나위의 역사는 기나긴 생존 투쟁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의외의 타협과 이유 있는 고집 속에서 벌어진 잦은 멤버 변동과 해산과 재집결을 거듭하며 생존한 밴드는 흉터가 많은 베테랑 군인 집단 같다. 남들이 음악 하는 동안, 시나위는 전쟁을 치렀다.
2집 이후 나온 시나위의 멤버 변화와 그 과정에서 나온 앨범들은 바로 그 치열했던 전장을 일부분이나마 증명했다. 베이스를 맡던 강기영이 밴드를 나오고, 김영진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1988년에 이들 명의로 신중현 트리뷰트 앨범과, 베스트 컬렉션과 3집이 한꺼번에 나왔다. (김성헌이 보컬을 맡은) 3집은 전작의 명성과 완성도에 근접조차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묻혔다. (그래서일까. 이 3집은 지금까지도 CD로 나오지 않았다.)
이 앨범을 녹음할 즈음에 김종서가 다시 돌아왔다. 뮤즈 에로스에서 드럼을 쳤던 오경환이 김민기의 자리를 대신했다. 이중산 밴드 공연에서 만난, 어린 나이임에도 음악적 센스와 박자감이 좋고, 무엇보다 시나위의 곡을 줄줄이 꿰고 있었던 정현철이 김영진의 자리를 대신했다.
이 앨범은 ‘시나위 2’ (아마도 오아시스 레코드에서 나온 이들의 두 번째 앨범이라는 의미이리라.)라는 표기와 (앨범 재킷에 필기체로 멋들어지게 작성한) 'four‘가 함께 들어있다. 이 ‘four'는 네 명이 모인 사진을 지칭하는 말일까. 아니면 시나위의 4집을 지칭하는 말일까.
각설(却說)하자. 이 앨범엔 대체로 네 유형의 곡이 실렸다. 신대철이 만든 곡. 신대철과 김종서가 만든 곡. 김종서가 만든 곡. 외국곡. 외국곡인 「볼레로」는 LP 기준으로 B면 네 번째에 있다. 김종서가 유일하게 단독으로 만든 「겨울비」 또한 A면 네 번째에 있다.
2집에서 조화로운 작곡 파트너십을 이뤘던 김종서와 신해철은 이 앨범에 이르러 각각 글램 메탈의 섬세함과 하드록의 우직함으로 나뉘며, 서로 치열하게 (때로는 더욱 아름답게) 부딪치고 얽혔다. 신대철이 쓴 곡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단연 「Metalizers」였다. 스래시 메탈을 본격적으로 구사한 이 트랙은 ‘걸작’이라는 말조차도 어느 순간 뛰어넘는다. 적어도 그 당시의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제대로 만든 헤비메탈 트랙 중 하나가 바로 이 곡이지 않았을까.
물론 김종서가 만든 「겨울비」의 음악적 성과 또한 만만치 않았다. 1집의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가 정말이지 ‘시나위’ 다운 어떤 우직한 정조를 담아냈다면, 이 곡은 기존의 이들이 들려주지 않았던 무척이나 세밀한 흐느낌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성과로 인해 결과적으로 이 앨범은 LA 메탈(이라고 불리는 글램 메탈)의 요건에 충분히 충족한 결과물로 거듭났다. 이들은 마침내 의도치 않은 지점에서도 철두철미한 헤비메탈 앨범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앨범이 뭉클하게 들리는 이유는 악전고투 끝에 마침내 헤비메탈을 쟁취한 이들의 결과가 찬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광의 세월’은 짧았다. 이 앨범을 끝으로 밴드가 바로 다시 흩어졌다. 그러나 이 앨범의 빛나는 사운드는 그 쟁취의 순간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지금도 똑똑히 증언한다. 이 앨범은 80년대 국내 헤비메탈 계가 ‘야곱의 싸움’ 끝에 거뒀던 마지막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