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5. X-81-36
팀이 이뤄질 때만 해도 당장 나올 것만 같았던 이 음반은 6년이 지나서야 겨우 세상 빛을 볼 수 있었다. 이 시간은 결코 낭비되지 않았다. 이 앨범에 실린 대부분의 트랙이 대체로 팀 결성 초기인 1998년에서 2000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에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리믹스 두 곡과 간주곡 「S.L.L.」, 킵루츠[Keeproots]가 작곡한 「회상」, 더 지[The Z]가 작곡한 「음의 여백」을 제외한 나머지 곡 중 두 곡만이 2000년 이후의 작업이었다.) 이 앨범에 실린 곡은 말그대로 갈고닦을 대로 갈고닦은 곡이었다.
적어도 이 앨범을 만들 당시, 나찰과 엠씨 메타(MC Meta)가 구사한 한국어 랩은 제법 ‘독특’한 초이스였다. (두 래퍼의 랩은 90년대 당시 한국 힙합 곡에 만연했던 각운 라임의 ‘리스크’를 제법 영리하게 회피했다.) 앨범 후반부에 등장하는 90년대 미국 동부 힙합의 성격을 지닌 비트에서도 이 '독특함'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는 사실상 엠씨 메타(MC Meta)의 솔로곡인 「나이테」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게스트 래퍼로 참여한 세븐[Seven]은 「옛이야기」에서 강력한 랩 스킬을 발휘하며 이 앨범의 '하드코어(Hardcore)'에 좀 더 힘을 보탰다.
(샘플로 추출한 LP의 노이즈까지 컨트롤하며,) 스크래치부터 샘플링에 이르는 다양한 스킬을 총동원하여 이 앨범의 비트를 치밀하게 구성한 제이유(JU)의 비트 메이킹 솜씨는, 이 앨범을 결코 무너지지 않을 반석 위에 올렸다. 엠씨 메타(MC Meta)의 랩은 중저음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찰의 랩은 더블링과 코러스를 정교하게 넣는 방식으로 살린 그의 프로듀싱 덕분에 두 사람의 랩은 좀 더 확실한 변별력을 갖출 수 있었다. (「뿌리 깊은 나무」의 첫 벌스에 나오는 나찰의 랩 파트를 그가 정교한 층위의 사운드와 코러스가 서포트하는 대목을 들을 때마다 놀란다.) 「가리온」의 처음을 ‘지배’하는 베이스 사운드도 그렇거니와, 「언더그라운드」의 소위 ‘먹통’ 비트와 샘플의 조화는 당시의 그만이 만들 수 있는 ‘곧은 소리’였다. 선명회 합창단이 부른 가곡 「굴뚝」의 피아노 연주를 샘플링해서, 이를 잘게 편집하여, 「옛이야기」의 비트에 알맞게 가꾼 그의 집요함은 해당 곡을 더욱 빛냈다. 「언더그라운드」나 「마르지 않는 펜」의 베이스 사운드는 하이 텐션의 그루브로 충만하다. 독특한 미감을 강하게 쟁취하는 이 앨범의 사운드는 면도날도 안 들어갈 것 같이 치밀하다. 이 앨범의 비트는 기실 이 앨범의 시간을 영원히 멈췄다.
미국 동부 힙합계의 전설적인 마스터링 엔지니어인 토니 도시(Tony dowsey)의 마스터링까지 거친 이 앨범은 그러나 발매되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야유를 보냈다. 그들은 이 앨범이 태업의 결과라 여겼다. 이 앨범은 그 말에 개의치 않았다. 그저 조용히 원래 자기가 마땅히 차지해야 했을 왕좌로 천천히 걸어갔다. 무사히 대관식까지 치른 이 앨범을 왕좌에서 끌어내릴 사람은 이제 아무도 남지 않은 듯하다.
이 앨범이 정지(整地)한 대지는 오늘도 싱크홀 하나 없다. 디디고 선 대지를 생각지도 않고 나무에 핀 꽃만 바라보는 나를, 이 앨범을 만든 시간과 이 앨범의 굳건한 사운드가 오늘도 진중하게 꾸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