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끝나지 않는다 그저 통과해 가는 여러 갈래 길중 하나 일뿐
요가는 몸의 운동이면서 마음의 수련이기도 합니다.
요가를 생각하면 유연함을 바탕으로 기묘하고 복잡한 동작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인간으로서, 아니 나로서는 도무지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동작들이
요가라는 것을 떠올릴때 생각하는 대표적인 이미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도 요가를 설명할때, 마음의 수련 혹은 명상이라는 주제를 빠뜨리지 않습니다.
요가가 처음 시작 된 인도에서도 신체적 건강을 증진 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단순한 운동 이상으로, 자아 탐구와 내면의 평화를 추구하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명상과 호흡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고 몸의 속박으로 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즉 영혼의 그릇인 몸으로 부터 속박 받지 않음으로서, 정신적, 영적 건강을 증진 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역활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래에 와서 명상을 통한 마음 수련법으로서의 역활보다는 체력 단련과 다이어트의 효과에 중점을 두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도 요가를 처음 시작할때의 마음은 딱딱하고 굳은 몸들이 '나의 통제를 들어 먹지 않는 고집 불통'의 몸이 되어 버려서 이걸 어쩌지 하는 염려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몇 주 동안 요가 수업은 생각 했던 것 보다 훨씬 힘들었습니다.
오다가다 창문 넘어로 보았던 수업 내용들은 운동 시작전 몸풀기로 하는 스트레칭 정도로 여겨 졌었기 때문에, '이렇게나 힘들다고?' 수업중 몇번이나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릅니다.
수업 도중에도 여러번 뒷편에 걸린 시계를 힐끔힐끔 보며 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곤 했습니다.
그래도 수업이 끝나고 나면 웨이트 트레이닝 후의 피로감과는 다르게 상쾌하고 개운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듯 요가의 한 시간은 저강도 운동이면서도 끝임없이 집중하고 힘을 써야 되는 쉽지 않은 운동이었습니다.
여자 회원이 다수인 수업이라 민망하지 않을까 하는 처음의 생각도 수업이 시작되는 동안은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수업중 다른 생각을 한다거나 명상에 빠져 있을 여유는 없었습니다.
내 자세를 생각하고 수업중 강사선생님의 지시어를 따라가다 보면 땀은 한두방울이고 평상시 잘 쓰지 않던 근육들은 제각기 비명을 질러대고, 따라갈 수 없는 자세를 흉내내느라 진땀을 흘리곤 했습니다.
그 순간 강사님의 말씀 하나가 스치듯 지나갑니다.
"고통은 곧 지나 갑니다. 호흡이 가빠지지 않도록 천천히 들이마시고 통제되지 않는 나의 몸에 저항하려 하지 말고 힘이 들어가지 않게 천천히 들이 마시고 천천히 호흡하면서 호흡속에서 내 몸을 바라보세요.
지금 통증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바라보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통증은 통과해 갑니다. 고통은 차츰 사라지고 몸은 조금씩 편안해짐을 느껴보세요."
땀이 삐질 나던 순간에 법문처럼 깨달음의 말씀인 듯 들려오는 지시어에 나도 모르게 가팔렀던 호흡을 느끼고 , 깊이 들이 마시고 천천히 뱉어내면서, 억지로 힘으로 눌러 자세를 따라가려 했던 나의 근육들을 어루만집니다. 통제를 거부하던 근육의 비명들도 호흡의 깊이에 따라 숨을 주이고, 힘들었던 자세는 조금씩 깊어지며 통증 또한 차츰 차츰 그 동작에 길들여 지듯 사그러짐을 느낌니다.
한껏 들이마시고 천천히 뱉어내는 숨결을 따라 몸은 조금씩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
다음 동작으로 이어지는 숨가쁜 수업이 다시 시작입니다.
그렇듯 처음으로 수업중 다른 생각으로 마음에 파문이 일어났던 순간이었습니다.
나의 통증을 마주하고 통증을 어루만지듯 호흡으로 다스리는 순간, 고통은 그저 통과해가는 과정일 뿐,
영원히 그곳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깨달음이 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드는 경험이었습니다..
그 순간은 찰나였고 수업내내 이어지는 여러 동작들에 떠밀리듯 쫓기어 파문을 일으킨 그 깨달음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지만,
수업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통증을 흘렵보낸 통과의 순간을 다시 한번 음미하게 되었습니다.
요가가 마음 수련이라더니 이런 것인가 하는 작은 발견에 새삼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도, 수업을 따라가는 동안에도, 좀 처럼 나아지지 않는 아사나들에 실망하고 좌절하면서,
내 몸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요가 아사나가 되지 않겠는 걸,
이라는 포기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작은 발견은 요가를 다시 열심히 해 봐야 겠다라는 용기를 주는 순간이었습니다.
요가의 아름다운 아사나를 따라할 수 있음 좋겠지만 그것을 따라 할 수 없다고 해서 요가가 아닌 것인가?
요가는 그저 과정의 수단으로서 통과해 가는 여러 갈래의 길 중에 하나일 뿐인 것을, 깊고 가벼운 호흡으로 나의 요가를 하리라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가끔은 힘든 동작들 앞에 저걸 어떻게 하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헛웃음 짓다가도
내가 할 수 있는 한계까지 따라가 보고 그래도 하지 못 하는 것은
그저 바라볼 뿐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의 근육이 붙는 중인 모양입니다.
오늘도 부족하지만 나마스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