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을 바라본다
마루바닥에 찍힌 점 이거나
스피닝을 휘한 자전거의 손잡이거나
나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 바라본다, 응시한다.
촛불은 안되,
내 마음처럼 공기의 작은 흐름에도 일렁이는 촛불은 안되.
속으로 그렇게 말하면서도 일렁이는 촛불은 이미 내 마음속에 들어와
함께 일렁인다.
일렁일렁이는 촛불은 내속에서 타오르는 횟불이 된다.
요가의 수많은 자세중 스탠딩 자세에 해당하는 나무자세, 독수리자세, 전사자세 등은 균형감각이 중요한 자세이다. 완성 자세에서 머물기 위해 중심을 잡고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다. 그래서 외부의 한점을 응시하며,
흔들리는 나의 몸을 흔들리지 않을 앵커에 묶어두고 의지해 보는 것이다.
가만히 바라보고 내 몸이 거기에 묶여 단단해짐을 느껴보는 것,
그러나 말과 생각으로는 쉽게 이해되는 것도 실제로는 결코 쉽지 않다. 내 몸은 나의 뜻과는 무관하게 중력에 응답하고 마음은 그 몸을 따라 흔들린다.
멈춰 있지 않은 세계에서 멈춤을 배우는 것, 흔들리는 마음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중심을 찾아 내 마음을 고정해 보는 것,
그렇게 함으로서 흔들림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 또한 요가 수련의 훌륭한 덕목중에 하나 이다.
우리는 ‘흔들림’을 두려워한다. 바람보다 먼저 눕는 나의 마음, 그리고 그로 인해 휘청이는 삶의 방향. 그래서 본능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무언가’를 찾는다. 그것은 굳은 신념일 수도 있고, 신적 존재에 대한 의존, 혹은 고귀한 누군가의 말과 행동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는 그것들이, 과연 실재하는가?
세상은 끊임없이 흐르고,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리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오늘 나를 지탱하던 믿음이 내일은 나를 무너뜨리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을 무언가를 ‘믿는다’는 그 믿음조차, 얼마나 부질 없는가. 그러니 흔들림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흔들리며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람이 불어와 몸을 가누기 힘들면, 그 바람에 몸을 맡기고 나붓나붓 흔들려보는 것.
균형은 흔들림을 부정하는 데 있지 않고, 흔들림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 것, 그 안에서 중심을 느끼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흔들리는 나를 먼 풍경인듯 끝까지 바라보는 시선,
그것이 외부가 아닌 나의 내면을 향할 때, 비로소 진정한 중심은 그 시선 속에서 자라난다. 외부에 의존한 균형은 간편하고 빠른 길일지는 몰라도,그것은 오늘의 그림자이며 내일의 혼란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느리더라도 흔들리며 내 안의 고요를 찾아가는 것.
조금씩 흔들리다가 마침내 찾아내는, 오롯이 나로부터 비롯된 중심.
그 중심에 닿기를, 그리고 그 위에 나를 놓아보기를.
눈을 감아도 여전히 일렁이는 촛불처럼, 내 안의 흔들림이 멈추지 않더라도 그 일렁임을 지켜보는 나의 시선만은 흔들리지 않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