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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구소년 Nov 01. 2024

오키나와의 꿈, 섬마을 사람들의 비원

1958년 가져오지 못했던 성지의 흙. 그로부터 52년.

 오키나와, 일본열도에서 가장 아름답기도 하지만 일본의 중심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 오키나와에서도 야구의 꿈은 항상 자라납니다. 오키나와의 많은 야구소년들이 고시엔을 꿈꾸며 항상 달려 나가고 있습니다. 따스한 태양의 기운을 받은 소년들은 성지를 향한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오키나와의 66개 팀 중 단 한 팀만이 고시엔의 검은 흙을 밟을 수 있는 영광을 누립니다.

고시엔 출장을 확정하고 환호하는 코난고교 선수들(출처:오키나와 타임즈)

고시엔의 흙은 야구소년들에겐 꿈의 상징입니다. 허락된 자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과도 같죠. 그런 이유에서 이기 때문일까요 경기에서 패한 선수들은 글러브 가방이나 신발주머니에 자신이 밝은 고시엔의 흙을 담아 가기도 합니다.

1958년 대회에 출전한 슈리고교 선수들 (출처: 오키나와 타임즈)

 1958년 제 40회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 오키나와 대표로 출전한 오키나와 슈리고교도 이와 같았습니다. 아쉽게도 1차전에서 패한 슈리고교 선수들은 여느 팀과 마찬가지로 고시엔의 흙을 눈물과 함께 담았는데요, 그러나 그들의 흙은 오키나와로 오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당시의 오키나와의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오키나와는 당시 미국령으로 고시엔의 흙은 미국의 검역식을 통과하지 못해 반입이 금지되었고 이로 인해 선수들은 공항에서 자신들의 추억을 눈물과 함께 쏟아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오키나와의 일본 반환 전인 1972년까지 이어졌을 것 같네요.

눈물과 함께 흙을 버리는 슈리고교 선수 (출처: coralways)

 이렇듯 오키나와는 고시엔에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섬입니다.  계속해서 우승과는 연이 없던 오키나와, 1990년과 1991년 오키나와 수산고교가 2년 연속으로 여름 대회 결승에 올랐지만 두 번 모두 준우승에 그치며 아쉬움을 삼켰습니다. 그러던 2010년, 코난고교의 센바츠 우승을 시작으로 오키나와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센바츠 우승도 분명 위대한 기록이지만 섬 마을 사람들은 추억과 가져오지 못했던 그 해 여름의 흙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2010년 코난의 에이스 시마부쿠로 유스케 (출처: 버츄얼 고교야구)

 센바츠에 이어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 대회도 오키나와 대표로 출전하게 된 코난고교, 1차전에서부터 도쿠시마의 강자인 나루토를 만나며 쉽지 않은 경기가 예상되었지만 봄의 왕자는 쉽게 이 경기를 풀어나갔습니다. 그 후 메이토쿠 기주쿠(고치), 센다이 이쿠에이(미야기), 세이코학원(후쿠시마), 그리고 호토쿠 학원(효고)에 역전승을 거두며 결승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맞이한 결승전, 2000년대 최강의 팀 중 하나인 도카이대 부속 사가미 고교에 13대 1로 완승하며 섬마을 사람들의 꿈을 이루어냈습니다. 우승의 순간 캐스터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마지막 직구! 반 세기 전, 고시엔의 흙을 가져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류큐의 섬에, 진홍의 대 우승기가 처음으로 전해집니다!
오키나와의 꿈, 섬마을 사람들의 비원을, 코난고교 봄-여름 연패의 위업으로 달성해 냈습니다!

우승 직후 코난고교 선수들 (출처: 버츄얼 고교야구)

 일본 고교야구에서 봄-여름 연패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기록입니다.  올해 106회를 맞은 고시엔에서 봄-여름 연패는 단 7번에 불과할 정도로 그 확률이 매우 낮습니다. 그 어려운 기록을, 고시엔의 흙조차 허락되지 못했던 소년들이 이루어냈으니 이가 얼마나 대단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인지 알 수 있습니다.

류큐의 섬, 오키나와 (출처: ana)

 오키나와는 ‘류큐의 섬’이라 불립니다. 이는 류큐 열도에 속한 섬 중 오키나와가 가장 크고 열도를 대표하기 때문인데요. 고시엔과 타 스포츠 종목에서도 응원가로 자주 쓰이는 ‘다이나믹 류큐(ダイナミック琉球)‘란 노래가 있는데 이 노래의 가사 중 한 부분을 발췌했습니다.


이쿠마 아키라(イクマあきら) - 다이나믹 류큐(ダイナミック琉球)

海よ 祈りの海よ

우미요 이노리노 우미요

바다여 기도의 바다여

波の声響く空よ

나미노 코에 히비쿠 소라요

바다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하늘이여

大地踏み鳴らし叩く

다이치 후미나라시 타타쿠

대지를 두드리며 때리는

島の太鼓ぬ響き

시마노 테쿠누 히비키

섬의 북소리

제 92회 전국 고교야구 대회 우승팀 오키나와 코난고교 (출처: 버츄얼 고교야구)

1958년, 기도의 바다로 향하지 못했던 성지의 흙을

파도 소리가 울려 퍼진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삼켰던 류큐의 섬에

열도를 뒤흔든, 대지를 두드린 소년들의 기적이 찾아왔습니다.

섬에 희망의 북소리를 들려준 2010년의 코난고교입니다.


오늘의 고시엔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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