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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업 Sep 09. 2024

남편 없이 시댁식구와 조리원퇴소하기

조리원에 있는 동안


매일같이 어머님의 영상통화를 받았다.





그때 직감했다.


조리원 퇴소 후에 시댁 식구들의 방문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니


보통 출산 후에는 친정에서


먼저 방문을 하는 게 일반적인 것 같았다.





하지만


매는 먼저 맞는 게 낮다고,


나는 시댁 방문이라는 숙제를


먼저 끝내기로 결정했다.


(피할 수 없는데 즐길 수도 없다면)


(빨리 해치우기 ㅋㅋ)










그런데 내가 퇴소하는 날


남편이 회사일이 바빠서


날 데리러 올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뭐라노...)


(그럼 누가 날 데리러....)




설상가상으로


나는 금요일에 조리원 퇴소 예정인데,


미리 신청했던 산후도우미는


월요일부터 출근 가능하단다.


(오웃... ㅋㅋ 복선 투척인가...)


(신박한 상황이 발생하겠군)


(2박 3일의 공백이라....)


(쿨럭)





음....



AI보다 빠른 속도로 머리를 굴려봤지만


뾰족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이제 나에게는 이전에는 없던


 무기가 생겼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아기!







나는 이제 아기 엄마다.


아기 엄마인 나를 누가 함부로 대하겠는가?


(게다가 출산의 고비를 넘긴 산모


누가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나름의 무기가 생겼으니


조리원 퇴소를 시댁 식구들과


하기로 마음먹었다.


(비장한 마음 장전)


(철컥)









굳게 먹은 마음과 달리,


그간 시댁의 행적 때문인지


퇴소 시간이 다가오자 심장이 요동쳤다.





퇴소를 하는 조리원 문 앞에


시어머니가 검정 자켓을 입고 서계셨다.

(순간 저승사자인 줄 ㅋㅋㅋㅋㅋㅋ)





어머님은 나에게 고생했다는


한마디 인사말을 하시고는


아이를 받아 드셨다.


그리고는 본인의 가방을 나에게 들라고 하셨다.

(응? 나 포터 된 거야?)














조리원 밑에 대기하고 있던 아버님 차에 올라탔다.



자연분만한 산모의 반자,


도넛방석도 동행했다.

(내 회음부... 잘 부탁해 ㅠㅠ)





도넛방석 위에 올라 앉아


안전벨트를 메는데....







"아가 고생했다~~"


시할머니(시어머니 친정엄마)가


뒷좌석에서 인사말을 건네신다.



"네에 ^-^"

(......)



차 안은


시어머니와 시할머니의


대화소리로 가득찼다.






어색한 공기를 가득 실은


시아버지 차가 출발했다.





(덜컹덜컹)




"으으으으....."


오늘따라 유독 덜거덕 거리는 차의 움직임이


예사롭지가 않다.





운전기사가 남편이었으면


머릿털을 쥐고 흔들었겠으나


차마 운전하는 시아버지 머리채를 쥘 수가 없어


조수석의 손잡이만 꼭 붙잡고


엉덩이를 반쯤 든 채로


승마자세를 유지하며 집에 도착했다.


(온몸이 아픈 느낌)


(본의 아니게 스쿼트 운동 제대로 함)

ㅋㅋㅋㅋㅋㅋ












집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나.


소중한 내 친구 도넛방석을 끌어안고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려는데


어머님이 날 부르신다.

(불길)







"글로업아, 할머니 가방 좀 들어드려라."



가방?

가방 어디...?!

어떤 걸 들으라는 거지?



시할머니 손에는 그렇게 크지 않은 가방이 들려있었다.

(대롱대롱)



작은 가방이라 무게감이 없어서


산모 손목에 무리가 갈 정도가 아니었다.



두 가지 마음이 들었다.


1. 내 손목에 무리가 안 가니 상관이 없네


2. 근데 이 가벼운걸 왜 들라고 한 거다냐...

(할머니가 들기에도 무리가 없는걸 ㅋㅋ)




그래도 소녀스럽고 귀여우신(?) 시할머니였기에


시할머니 가방을 들고 팔짱까지 끼고

(붙임성 무엇 ㅋㅋ)


집에 들어왔다.









나는 MZ세대다.




출산 전에 이것저것 유튜브를 찾아보다 보니


둘이 나갔다 셋이 들어오는 영상이 많이 보였다.

(부부가 출산 갔다가, 아기까지 셋이 되어 집에 오는!)



얼마나 스윗한가!



나의 출산 로망이 있다면


그 그림을 보는 것이었는데






나는 둘이 나갔다가 다섯이 되어 들어왔다.

(나, 아기, 시어머니, 시할머니, 시아버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셋이 되어 올 줄 알았던 집에,


다섯이 되어 오다니 ^-^

(숫자는 더 많눼...)

(그냥 숫자 큰 게 이긴 거라 생각하자...)

(나름 정신승리)

(후비적)












집에 들어왔어도 평소 잘 먹는 신생아다 보니


아기가 깨서 울지를 않았다.


(조리원 나오는 순간부터 집에 와서까지 꿀잠^-^)


(애기야 눈치 챙겨.. 좀 울란말이야....)





그런 나의 마음을 아기가 알리가 없었다.


방에 들어가서 좀 쉬려는데


어머님이 부르셨다.


"글로업아~ 내가 너 선물 주려고 이거 가져왔다."


냄비세트, 김치, 반찬 등등


어머님이 사랑이 한 바가지 하고도 넘치게 담긴


박스들이 우리 집에 쌓여갔다.





출산 선물로 이것저것


바리바리 다 싸들고 오신 것이다.


와... 이래서 애 낳고 나면 판도가 바뀌는 건가보다....


고마움에 잠시 눈물이 날 뻔했다.

(날 뻔만 했고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아직 옷도 못 갈아입었는데,


어머님이 한마디 더 하신다.


"이거 박스부터 다 뜯어라."

ㅋㅋㅋㅋㅋㅋㅋㅋ


눈물이 쏙 들어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언박싱 알바 필요하신 분?


글로업 언박싱 잘합니다...


후....





사랑만큼 쌓인 택배 상자들을 보며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근데 나 어머님 환갑 때)


(박스 하나 접어서 문 앞에 뒀다가)


(혼나지 않았었나?)


(어머님도 박스 개수만큼 혼나야겠...??!!!)

ㅋㅋㅋㅋㅋㅋ



(쿨럭)






상자를 바라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는데,


어머님이 그 새를 못 참고 또 나를 부르신다.



"글로업아 얼른 들어와라!"



이쯤 되니


"예 마님~~"


하고 답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ㅋㅋㅋㅋ










다시 방으로 들어가는데


아버님과 시할머니는 나란히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계신다.


(부럽....)






여전히 쿨쿨 자고 있는 순둥이 신생아도 포착되었다.


(일어나~~ 일어나!!!! 쫌 ㅋㅋㅋㅋ)










주방에 계신 어머님이 나에게


비닐장갑을 주셨다.



"김치 좀 김치 통에 옮겨 담아라."



딱 봐도 아이스박스에서 방금 나와


차가워 보이는 김치를


비닐장갑 하나를 주며 김치 통에 옮겨담으라신다.





이럴 땐 뭐다?


안 들린다 시전 ㅋㅋ


조용히 묵언수행을 하고


어머님 옆에 가만히 서있었다.






어머님이 낌새를 눈치채시고는


본인이 김치를 옮겨 담으신다.



휴....


살았다.




용기를 내어 한마디 했다.



"저 옷 좀 갈아입고 올게요."


(이게 뭐라고 ㅋㅋ)

(이 사소한 한마디도 용기가 필요하다.)













조용히 안방에 들어간다.


옷을 후다닥 갈아입고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조리원에서 찾지도 않던 남편에게


다급하게 카톡을 보냈다.


"오늘 퇴근하면 최대한 빨리 와...."

(나 숨 막혀...)




그렇게 남편이 올 때까지


나는 자리에 편히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하는


애매하고 어정쩡한 시간을 보냈다.













"띠띠띠띠- 띠띠띠---"

(현관문 비번 여는 소리)



오... 드디어 나의 희망


남편이 집에 들어왔다.






어머님 낯빛이


예수님이라도 본듯한


밝은 얼굴로 변하는 걸 목격했다.


(어째 손주 안아볼 때보다 더 밝은 느낌)

ㅋㅋㅋㅋㅋ

(착각이겠지? ㅋㅋ)




그렇게 남편으로 인해 어색함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런데....





"띵동 띵동~"



누가 또 집에 왔다.






"뿌에에에엥~~~"


(아기가 자다가 놀라 울음을 터뜨린다.)


(아기 울음소리만이 아니다...)


(사실 나도 눈물이 난다...)


(마음속으로 애보다 더 크게 우는 사람 여기 ㅋㅋ)


(대체 또 누구여....)











"언니~~ 출산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아가씨였다.


나에게 카톡 테러를 날렸던 ^-^





"아~ 반가워요."

(왜 왔어요...ㅋㅋ)




"언니 근데 제가 급히 오느라 아무것도 안 챙겨 와서..."

(이때만해도 선물 같은걸 말하는줄 알았다.)




"혹시 잠옷 좀 빌려줄 수 있어요?"

(자고 가라고 안 했는뒈....)

(그럼 다시 집으로 Go?? ㅋㅋ)




임신 중에 잠옷들은 다 늘어날 대로 늘어나서


신혼 때 샀던 남편과의 커플 잠옷만이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고민에 잠긴 나에게 어머님이


빨리 잠옷 하나 내주라고 말씀하셨고,


하는 수 없이 커플잠옷을


아가씨 손에 쥐어줬다.


하....








남편과 커플 잠옷을 입은 남매를 보고 있자니


뭔지 모를 깊은 빡침이 올라왔다.

(딥빡....)






아가씨는 역시나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저 오늘 그날이라서 생리대도 좀 빌릴게요."

(빌리긴 뭘 빌려... 갚을 것도 아니잖아...^^)




그렇게 조리원 퇴소 첫날이 저물어가는 줄 알았다.


조리원이 왜 천국인 건지


조리원에서 퇴소한 지 반나절이 지나지 않아


깨달아가고 있었다.












"띵동 ~~ 띵동~~ "


"뿌애에에에에엥~~"



데자뷰인가.


또 초인종이 울린다.



아직 조리원 나와서 제대로 쉬지도 못했는데...


불길함이 또 한 번 엄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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