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풍경 속에서 발견한 삶의 방향
걷기가 내게 준 선물: 방치된 화단에서 만난 박주가리
한낮의 열기 속에서 매미소리가 귀를 울리고, 풀잎이 타는 듯한 냄새가 섞인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아스팔트의 후끈함이 공기 중에 가득했다.
어제는 선선한 가을 기운을 느꼈는데, 오늘은 무려 32도까지 치솟는 불볕더위가 다시 찾아왔다. 이슬처럼 맺힌 땀이 뜨거운 햇살 아래 금세 말라버릴 만큼 후끈한 날씨였다.
하지만 이제 걷기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매일 같은 길에서도 새 생명을 발견하는 설렘이 있다. 나는 여전히 같은 도시를 걷고 있지만, 그 속에서 전혀 다른 세상을 보고 있다. 이 뜨거운 아스팔트 위, 도시의 무심한 풍경 속에서 '어디서 또 새로운 생명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설렘으로 주변을 유심히 살피게 된다.
그 기대감 속에 철산역 2001아울렛 화단에서 박주가리 꽃을 발견했다. 2001아울렛이 문을 닫은 지 벌써 3년이 넘어, 이 화단은 오랫동안 방치된 채 풀숲이 우거져 있었다.
모두가 관심을 끊은 그 공간에서, 박주가리는 끈질기게 줄기를 올리고 꽃을 피운 것이다. 꽃잎은 다섯 개로 갈라지며 뒤로 젖혀지고, 별 모양 같기도 하고 불가사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꽃잎에는 뽀얀 솜털이 소복하다. 길쭉한 하트 모양의 잎새 끝이 뾰족한, 이름도 생소한 야생화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혼자 신이 나서 사진을 찍고, 관찰하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새로운 시선으로 채워지는 시간
돌이켜보면, 나는 늘 효율성과 결과만을 추구하며 삶의 시간을 채워왔다. 걷기는 그저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길가에 피어난 꽃들은 '잡초' 아니면 '조경'이라는 이름 외에 아무 의미도 없었다. 질문은 정답을 찾기 위해서만 필요했고, 창의적인 시도는 두려움 때문에 미뤄두기 일쑤였다. 나의 시간은 '해야 하는 일'들로 가득 차 있었을 뿐, '진정한 발견'과 '생생한 경험'으로 채워져 있진 못했다.
하지만 이제 야생화를 찾아다니는 이 매일의 걷기는 다르다. '어디서 피어났을까?' 질문하고, 방치된 공간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새로운 시선을 갖고, 뜨거운 햇볕 아래 땀 흘리며 꽃을 찾아 관찰하는 모든 순간이 살아있는 배움이 된다. 더 이상 시간은 낭비되지 않는다. 주변의 무심한 풀 한 포기조차도 나의 성장을 위한 중요한 관찰 대상이 된다.
방치된 공간에서 피어난 지혜
박주가리를 알아가는 과정은 더 깊은 경이로움으로 이어졌다. 박주가리는 덩굴식물로, 옆에 있는 다른 식물을 지탱하며 시계 방향으로 감아 올라간다. 방치된 화단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주변의 것들을 의지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남는 것이다.
누군가는 시계 방향으로, 누군가는 반대 방향으로, 또 누군가는 정해진 방향 없이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는 사실이 문득 우리 삶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내 속도로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닐까.
박주가리는 '박을 닮았고 쪽 하고 갈라진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어린순은 나물로 무쳐 먹고, 푸르스름하게 설익은 열매 속 하얀 속살도 식용으로 쓰인다. 가을이 깊어 열매가 여물면 껍질이 벌어지면서, 민들레 홀씨처럼 하얀 깃털을 단 씨앗이 하늘로 날아가 번식을 이어간다. 예전에는 이 하얀 솜털을 겨울 보온재나 도장밥, 바늘 쌈지를 만드는 데도 활용했다고 하니,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던 존재였다.
올 가을엔 박주가리 열매가 터지는 모습을 꼭 관찰해 봐야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식물이 주는 물음
뜨거운 햇볕이 등을 내리누르는 귀갓길, 나는 다시 한번 그 화단을 돌아보았다. 방치된 공간에서도 꽃을 피우고, 자신의 방식대로 감아 올라가며, 가을이 오면 하늘로 씨앗을 날려 보낼 박주가리. 그 작은 생명이 내게 물었다.
'당신은 어떤 방향으로 감아 올라가고 있나요?'
나는 이제 안다. 매일의 걷기 속에서 작은 발견을 기뻐하고, 방치된 곳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이 시간들이 나를 살아있게 한다는 것을. 야생화 하나를 알아가는 기쁨이 어쩌면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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