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중이 묻다: 우리 아이들의 유년은 어떤 '맛'일까
무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9월, 7호선 신풍역 부근을 산책하다가 시선이 멈췄다. 자동차 소음과 아스팔트의 열기가 가득한 도로변, 단단한 보도블록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한 포기 풀. 그 위로 하얀 꽃을 피우고, 아직 익지 않은 초록색 열매를 방울방울 매단 까마중이었다.
도심 속에서 까마중을 마주하다니. 그 작은 생명력에 놀라 무심코 쪼그려 앉았다가, 까마득했던 유년의 시골 마을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시절 까마중은 밭 가장자리나 담벼락 밑에서 흔하게 자라던 풀이었다. 가을이 되면 검게 익은 열매를 따 먹으며 놀았는데, 그 달콤함이 어린 혀끝을 간질였다. 입술이며 손이 까맣게 물든 줄도 모르고, 친구들과 마주보며 서로의 까만 입술을 놀리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때 우리는 자연 속에서 간식을 찾고, 놀이터를 만들 줄 알았다. 샐비어 꽃의 붉은 봉오리 끝을 따서 꿀을 빨았고, 봄이면 아카시아 꽃을 훑어내 그 단물을 맛보았다. 하교길 산딸기를 따 먹고, 뽕나무에 까맣게 익은 오디를 따서 먹던 시골 마을의 길가는 그 자체로 풍성한 먹거리이자 신나는 놀이 공간이었다. 먹거리만이 아니었다. 아카시아 잎이 무성해지면 이파리를 따서 엄지와 검지로 톡톡 떼어내는 잎따기 놀이를 했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사람이 먼저 잎을 뗄 수 있었다. 줄기의 잎을 먼저 다 떼어낸 사람이 이기는 간단한 게임이었다. 승자는 곧 아카시아 파마 미용실의 손님이 되었다. 기다란 줄기로 머리를 말아 올리는 '아카시아 파마'는 여자아이들에게 최고의 놀이였다. 토끼풀이 꽃을 피우면 꽃반지와 꽃팔찌, 화관까지 만들며 재잘거리던 동무들의 모습도 눈에 선하다. 굳이 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우리는 계절이 주는 선물을 만끽하며 자연과 호흡했던 시간들이었다.
문득, 아스팔트 위에서 힘겹게 꽃을 피운 까마중을 다시 바라본다. 까마중 하나가 이어준 어릴 적 추억 속 장면들은 몽글몽글 아지랑이처럼 아련하다. 저 작은 까만 열매가 도심 속 기적처럼 나에게 잊었던 따뜻함을 선물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아이들의 기억 속에는 무엇이 자리 잡고 있을까? 딱딱한 시멘트와 디지털 기기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어떤 '맛'과 '향'으로 유년을 기억하게 될까. 도시의 삭막함 속에서 마주한 한 줌의 야생이, 내 마음속 잊고 있던 추억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이처럼 단순하고 소박한 자연의 기쁨을, 오늘을 살아가는 아이들도 누릴 수 있기를 조용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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