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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너의 개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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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희 Sep 03. 2024

너의 개

단편소설

너의 개 (7화)



  최면에 걸렸다가 못 깨어나면? 너의 생각을 꿰뚫은 듯 그가 능글능글 웃었다.

 

  “최면은 말이죠, 결국 자기 최면입니다. 최면에 걸리고 싶지 않으면 걸리지 않고, 깨어나고 싶은데 못 깨어나지도 않아요. 안 깨어난다면 그건 깨어나고 싶지 않은 거죠. 모든 건 자신에게 달려있어요. 저는 그저 도와드릴 뿐입니다.”

  

  하는 수 없이 너는 그가 가리키는 카우치로 가서 누웠다. 그는 머리맡 보조 의자에 앉았다. 추 같은 걸 흔들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양손을 골반 옆에 툭 떨굽니다. 시선은 천장에 어느 한 지점만 보세요. 긴장을 너무 하셨네. 최면의 시작은 긴장을 이완시키는 겁니다. 힘을 빼고 호흡에 집중하세요. 들이쉬고 내쉬면서 나는 편안하다, 암시를 주세요. 주문을 거는 겁니다. 자, 편안하다.”

  

  하얀 천장에 파리똥인지 흐릿한 점 하나를 보다가 너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긴장이 풀리며 잠이 들었고 숨이 깊어지고 얕게 코까지 고는데도 그의 목소리는 들렸다.

  

  “당신은 오른쪽 눈을 뜨지 못합니다. 나는 왼쪽 눈만 뜰 수 있다, 그렇게 암시를 주세요. 주문을 외듯 계속 되뇌세요. 자, 숫자를 열부터 거꾸로 셀 테니 하나에 눈을 뜹니다. 열, 아홉, 여덟, 일곱,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 뜨세요!”

  

  너는 정말 한쪽 눈만 떴다. 놀라움 속에서 너는 왼쪽 눈만 뜨고 있다. 그는 간절히 원하는 걸 말해보라고 했다. 너는 입이 마비된 듯 발음이 새 나갔다.

  

  “듀우 누늘 다 뜨고 시퍼여어.”  

  

  “좋아요. 나는 두 눈을 뜰 수 있다, 암시를 주세요. 암시는 엄청난 힘이 있어요. 당신의 삶을 바꿀 수 있어요. 효과는 영원합니다. 자, 다시 열, 아홉, 여덟… 하낫, 뜨세요!”

  

  너는 두 눈을 떴다. 당연했던 사실에 전율을 느끼며.

 

  “최면 감수성이 아주 뛰어나시네요. 훈련만 잘하면 서울대 의대 갈 실력이라고 할까요.”

  

  너는 그의 칭찬에 배시시 웃음이 나오는 걸 참았다.

  

  “돌이킬 수 없는 긴 최면에 들어가려면 의식의 심층에 숨은 자신과 만나서 대면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상처든 그대로 바라보고 그랬음을 받아들이며 깨닫는 치유의 과정을 겪고 나면 혼자서 마음먹은 대로 최면에 들어갈 수 있어요. 나 스스로 이 세상을 바꾸는 것과 같죠.”

  

  어느새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너의 귀에 스며들었다. 변화에 대한 기대와 확신으로 심장이 두근대던 그 순간, 전화가 울렸다. 김영준의 핸드폰이었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의 표정이 굳었다. 전화가 계속 울렸으나 받기 싫은 눈치였다. 물끄러미 네가 쳐다보자 그는 마지못한 태도로 일어나 통화버튼을 눌렀다. 기다린 듯 전화기 속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 요양보호사예요.

  

  그는 책상을 빙 돌아 사무실을 서성이며 통화하다 찡그리곤 “전화 바꾸세요”를 거듭 말하더니 갑자기 출입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전화 바꾸세요, 전화 바꾸시라고요,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엄마!”

  

  목소리가 복도에 울릴 때마다 너는 마음이 졸아들었다. 언젠가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어머니는 요양보호사의 전화기를 낚아챈 모양이었다. 한참 만에 사무실로 들어온 그에게서 담배 냄새가 풍겼다.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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