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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너의 개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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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희 Sep 03. 2024

너의 개

단편소설

너의 개 (8화)



  “저기, 소장님 어머니께선 어떻게 지내시나요?”


  “아주 잘 지내십니다.”


  애써 지은 밝은 표정과 어울리지 않게 뾰로통한 말투였다.


  “혹시 어떤 개로 보이시나요? 가령 털 빛깔이나 크기가 얼마만 한지….”


  너는 정말이지 궁금했다. 확신이 필요했다. 그는 책상에 놓여있던 작은 액자를 돌려서 사진을 보여주었다.


  “코커스패니얼. 갈색 털에 귀가 늘어지고 12킬로쯤 되는 중형견이죠.”


  멋진 개였다. 하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너는 시무룩한 시선으로 김영준의 착잡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침묵 끝에 시선이 마주친 김영준이 말했다.


  “개와 함께라면 산책을 나가도 누군가와 대화할 명분이 생기죠. 혼자 공원에 나가 철봉에 매달린 저에게 호감을 느끼며 다가올 사람이 있을까요? 게다가 그 인간이 불 지르는 홀어머니의 외아들이라는 걸 안다면 말이죠, 저라도 도망갈 겁니다.”


  그의 눈이 그렁그렁했다. 너는 증조할머니와 있을 백부를 떠올렸다.


  “태경 씨는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오신 거잖아요.”


  그렇게 해서 너는 12주간 매주 목요일마다 최면심리상담을 받게 되었다. 전반부는 최면 훈련 못지않게 반려견 복지에 관한 이론 교육의 비중도 높았다.


  “우리나라의 동물보호법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느슨하죠. 저는 가장 엄격한 스웨덴의 경우를 적용하고 싶습니다. 스웨덴에선 개를 인간과 동일한 감정을 지닌 존재로 보죠. 6시간마다 산책을 시켜야 하고, 실내에 있을 때는 햇빛이 드는 창문이 요구됩니다. 암모니아 수치는 10ppm, 이산화탄소는 3,000ppm 미만이어야 하고요.”


  4주 차까지 너는 매시간 쪽지 시험까지 봤다. 배우면 배울수록 개에 관한 공부는 끝이 없는 것 같았다.


  “나중에 더 깊이 있게 공부해 보고 싶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부모님을 모시다가 아예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정부 보조금을 받는 분들이 있잖습니까? 요즘엔 반려견을 키우면서 관련 전문가가 되는 전망이 더 밝습니다.”


  “수의사나 애견미용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런 자격증만 있는 것 같죠, 아닙니다. 요즘 반려견 훈련사나 행동 교정사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란 건 아시잖아요? 개 유치원 원장이나 반려견에게 필요한 용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자격증까지 다양한 직업이 있어요. 인공지능이 소설을 쓰고 노인의 벗이 되는 시대라지만, 로봇도 개를 돌보는 전문가들을 대체하기는 힘들 겁니다.”


  너는 할머니가 잠든 이부자리 옆에 배를 깔고 누워 글을 쓰다가 메모장을 닫고 비스듬히 턱을 괴고 창밖을 보았다. 밤하늘을 가린 담벼락에 희미한 가로등이 비치고 있었다. 불을 끄고도 여전히 빛의 입자가 떠도는 방안에 누워서 너는 김영준의 당부를 떠올렸다.


  “딱 한 가지만 약속해 주세요. 절대로, 절대로, 개를 버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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