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 자네, 그 소문 들었는가?

by 기억흡수

새벽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오사카만의 사카이 항구는 벌써부터 상인들과 뱃사공들, 그리고 각지에서 몰려든 낭인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분주했다. 하룻밤 사이에 전국을 휩쓴 소문 때문이었다. 짐을 가득 실은 수레를 끌던 한 상인이 물동이를 진 사내에게 슬쩍 다가서며 목소리를 낮췄다.


“자네, 그 소문 들었는가?”

“뭐 말인가? 요새 소문이 한두 개여야지.”

“아니, 그게 말이지. 천하의 하시바 군이 패배했다는군.”

“에이 이 사람아! 파죽지세의 군세가 무슨 얼어 죽을. 어림없는 소리 말게.”


사내는 코웃음을 치며 물동이를 어깨에 얹으려 했다. 하지만 상인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잡아끌며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


“실은. 죽었던 시바타의 망령이 나타났다는군.”


물동이를 쥐고 발걸음을 옮기려던 사내의 몸이 굳었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다 가문의 필두, 귀신 시바타 카츠이에 말인가?!”

“그렇다네! 키이의 사이카슈와 손을 잡고 하시바 군을 박살 냈다더군. 죽었던 시바타가 돌아와 하시바를 쳤다는 소문이 파다하네.”


그때, 곁을 지나가던 뱃사공이 그들의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나도 들었소! 그 유명한 시즈카타케 칠본창이 무너졌다 들었소!”

“그, 그렇소. 근데 뉘시오? 어쨌든, 그 칠본창의 으뜸이라는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완전 박살이 났다 하오.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간신히 도망쳤다지 뭔가!”

“후쿠시마? 그 용맹한 자가 어찌…. 말이 안 되는구먼.”

“아이고, 이거 또 괜한 불똥이 우리한테 튈지 모르겠소.”


순식간에 주변을 지나던 모든 이들이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삽시간에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다.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가 열 사람을 거치면서 점점 더 자극적으로 변해갔다. 시바타 카츠이에가 죽고 하시바 히데요시의 독주가 시작된 지 꽤 많은 시간이 흐르며, 패배의 쓴맛을 본 많은 다이묘가 히데요시의 발아래 엎드렸고,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키이 지방에서 들려온 소문은 마른 풀밭에 던져진 불씨처럼 빠르게 퍼져나갔다.




주코쿠, 코리야마 산성.

주코쿠 지방을 호령하는 모리 가문의 당주, 모리 테루모토는 서재에서 전령이 가져온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그의 동공은 끊임없이 흔들렸고, 보고서를 쥔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다급히 그의 두 숙부, 코바야카와 타카카게와 킷카와 모토하루를 찾아갔다.


“숙부님, 이 기회에 우리도 움직이는 것이….”


모리 테루모토가 보고서를 넘기며 입을 열었으나, 코바야카와 타카카게가 고요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아직 성급하다, 테루모토. 하시바 히데요시는 아직 움직이지 않았어. 우리가 성급하게 움직이면 오히려 저자의 덫에 걸릴 뿐이다.”


옆에 있던 킷카와 모토하루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켜봐야지. 우리 둘이 덤벼도 하시바를 이겨내지 못했다. 우리는 히데요시의 속내를 먼저 파악해야 해.”


코바야카와 타카카게와 킷카와 모토하루는 모리 가문을 주코쿠의 지배자로 군림하게 한 장본인들이자, 가문의 실세들이었다. 보고서를 건네받은 서국 최고의 지모라 불린 코바야카와 타카카게의 눈은 처음 듣는 이름에 미묘한 관심이 어려 있었다.


“하시바를 상대로 제법이네. 시바타의 혈육이라니. 흥미롭군. 이 아이가 어떤 변수를 만들어낼지 지켜보자.”





에치젠, 토야마성

삿사 나리마사는 이노우에 세이잔의 보고를 듣고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과 흥분이 가득했다.


“파하하하! 시바타의 핏줄은 역시 다르구나. 카츠이에 님을 쏙 빼닮았어. 어린 나이에 벌써 저런 일을 해내다니. 과연 귀신의 아들이로구나!”


나리마사의 호탕한 웃음이 성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이노우에 세이잔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주군, 이제 저희도 행동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오사카는 요새 공사에 정신이 팔려있을 것입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그래, 세이잔. 우리가 나서서 저 아이를 도울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 카츠이에 님께 받은 은혜를 갚을 때가 왔다.”

“이미 준비해 둔 것들이 있습니다. 오사카에 연락망도 구축해 놓았으니 명령만 내리시죠.”

“파하하하! 목을 씻고 기다려라 하시바. 너의 목을 자르는 것은 반드시 내가 할 테니. 놈에게 시바타 가문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마!”




오슈, 요네자와성

어둠이 깊게 내려앉은 요네자와 성의 중심부에 선 사내의 한쪽 눈은 위험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독안룡이라 불리는 다테 마사무네였다.


“뭐? 나와 비슷한 나이라고? 시건방 떠는군. 나였어도 그쯤은 충분히 꺾을 수 있어.”


하지만 곧 그의 표정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고, 자신의 칼자루를 잡으며 중얼거렸다.


“귀신의 아들이라…. 나의 전장도 모두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면…. 카츠류우, 너의 이름은 기억하겠다. 하지만 이 다테 마사무네의 이름이 그대보다 먼저 천하에 울려 퍼질 것이다.”




카가, 카나자와성

호쿠리쿠 지방의 영지를 굳건히 확립한 마에다 토시이에는 거처에서 보고서를 읽고 또 읽었다. 그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찝찝하군….”


그의 아내가 차를 가져오며 물었다.


“표정이 안 좋으세요. 무슨 일인가요?”


토시이에는 아내가 들고 온 찻잔을 뺏어 벌컥벌컥 마셨다.


“시바타! 시바타의…, 아들이 살아있다.”


아내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지금은 관계가 어긋나 버렸지만, 예전에는 서로 왕래하며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었다.


“살아남은 귀신이 내 목을 노릴지도 모르겠군.”

“그때 일을 아직도 잊지 못하시는군요.”

“그날, 시바타는 전부 죽었어야 했어….”


토시이에는 밖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공사가 진행 중인 오사카성.

시즈카타케 칠본창을 비롯한 젊은 무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유독 후쿠시마 마사노리의 얼굴은 불타는 듯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제길! 어딜 가나 그 귀신 놈의 이야기뿐이군.”

“무슨 소린가? 자네 이름도 만만치 않게 들리는데.”


-쾅


한 남자의 도발에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주먹으로 탁자를 내려쳤다. 도발한 남자는 같은 칠본창인 와키자카 야스하루였다. 그의 입가에는 비열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네놈과 같은 칠본창에 묶여있다는 게 수치다. 닥치고 꺼져라 와키자카.”

“흐흐흐, 진 건 진 거 아닌가? 변명이라도 해보지 그러나? 삼천의 병력이 잡초들처럼 뽑혀 나갔다던데? 그 잘난 마사노리의 창은 어디에 있었나?”

“이! 개 같은…! 덤벼라 와키자카! 네 놈의 아가리를 찢어주마!”

“흐흐흐. 애송이에게도 졌는데 나에게는 잘도 이기겠군.”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와키자카에게 덤벼들자, 쿠로다 나가마사가 그들을 가로막았다.


“진정해라 마사노리. 분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흐흐흐,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지. 시바타의 아들이 복수를 이루었다는 건 변하지 않아. 우리가 무너트린 시바타의 아들이! 칠본창의 필두인 후쿠시마 마사노리를!”


와키자카의 조롱에 이번엔 카토 키요마사가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와키자카! 선을 넘지 마라. 우리를 모욕하는 것은 곧 히데요시 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하시바 가문의 젊은 무사들이 뒤엉켜 싸우고 말리며 위험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시바타 카츠류우라는 이름이 그들 사이에 깊은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편, 하시바 히데요시는 이 모든 소란을 뒤로하고 천수각의 난간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의외로 차분했다. 시중을 드는 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리, 온갖 소문이 들려옵니다. 이대로 두시면….”

“내버려두어라.”


히데요시는 손을 들어 시종의 말을 끊었다.


“시바타 카츠류우…, 과연 시바타의 피를 이은 인간이군. 아, 귀신인가? 아무튼 이제야 제대로 된 상대가 나타났어. 좋다, 아주 좋아. 시바타의 마지막 혈육을 나의 칼로 키워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건 단순한 소년의 복수가 아니야. 전국에 숨죽이고 있던 자들을 끄집어낼 완벽한 미끼다. 내게 등을 돌린 자들이 있다면, 그 불꽃에 모두 뛰어들게 될 터! 그때 한꺼번에 모두 태워버리면 그만이야. 너구리가 굴 밖으로 나오려 한다면! 그 녀석의 꼬리를 잡고 흔들어 쥐새끼들에게 던져주면 그만이겠지.”


히데요시는 마치 거대한 바둑판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전국이 시바타의 이름으로 떠들썩한 이 순간에도, 키이의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사이카슈의 그림자 마을은 고요했다. 며칠 전의 격렬했던 전투가 거짓말처럼, 마을에는 평온함만이 감돌았다. 전투의 상흔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아이들은 평소처럼 숲을 뛰어다녔고, 어른들은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며 시간을 보냈다.

마을 사람들은 조용히 동료들의 시신을 거두었다. 피 묻은 흙을 털어내고, 깨진 화승총을 부수어 땅에 묻었다. 무심곡의 폭포를 마주하는 작은 언덕에는 이름 모를 무덤들이 촘촘히 들어섰다. 십여 개의 새 무덤을 바라보던 사이카 마고이치를 따라 모든 사람이 흙을 덮었다. 카츠류우와 미카즈키, 야마자키와 하야토, 그리고 사이카슈 5인방을 비롯한 모든 그림자가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기억하며 묵념을 올렸다.


“복수를 향한 길은 언제나 피를 부른다. 잊지 마라, 카츠류우. 너의 손에 묻은 피는 그들이 너에게 맡긴 책임이자, 동시에 너의 족쇄가 될 것이다.”


마고이치는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카츠류우는 아무 말 없이 흙을 한 삽 더 퍼서 무덤 위에 덮었다. 그의 손에 들린 삽은 무거웠다. 그가 이룩한 승리는 너무나 많은 피와 맞바꾼 것이었다. 동료들의 죽음은 그의 복수심을 더욱 불태우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었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제가 더 강했다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그저 흐르는 물과 같다. 왔다가, 사라지는 것. 그들은 너와 함께 싸우며 너의 삶을 지켜주었다. 그것이 그들의 운명이었을 뿐이다. 물은 흐르고 흘러 바다로 스며들 것이니, 넌 대양 같은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여라.”

"명심하겠습니다, 스승님."


카츠류우는 고개를 숙였다. 료에몬은 그런 카츠류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하핫, 우리 대장은 너무 어려운 말만 하십니다. 카츠류우, 그냥 밥이나 먹자. 배고프다.”


준시로가 옆에서 거들었다.


“료에몬 형님은 방금까지 피로 목욕을 해놓고도 입맛이 있으십니까? 참 대단하십니다.”

“피 묻은 옷이 무슨 대수냐. 빨면 지워질 것인데. 배를 채워야 정신을 붙들 수 있지 않겠나. 하하핫!”


료에몬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그림자 마을의 고요를 깨뜨렸다. 마을의 아이들이 그런 료에몬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카츠류우의 얼굴에도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들은 서로를 보듬으며 상처를 치유했다. 그들은 함께 싸웠고, 함께 살아남았으며, 함께 아파했다. 사이카슈의 끈끈한 유대가 있었기에 그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해가 질 무렵, 마을의 모두가 함께 모여 식사를 했다. 따뜻한 국물이 허기진 배를 채웠고, 모닥불은 지친 몸을 녹였다. 피로 물든 땅 위에서, 그들은 삶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카츠류우는 미카즈키와 나란히 앉아 불꽃을 바라보았다.


“힘들지 않아, 카츠류우?”

“응. 너만 있다면, 괜찮아.”


미카즈키의 우수가 섬전처럼 뻗어 카츠류우의 옆구리를 강타하려는 찰나, 급하게 주먹을 멈춰 세웠다. 답지 않게 오글거리는 말투에 성질이 났다가도, 한편으로는 꽤나 마음에 드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미카즈키의 맑은 눈동자가 카츠류우를 향하자, 카츠류우는 그녀의 이마를 시작으로 붉은 입술까지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의 손길에 미카즈키는 고양이처럼 눈을 감았다. 따스하고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복수도, 전쟁도,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서로의 온기만이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고, 모두가 잠에 빠져든 어둠이 깊어진 밤. 그림자 마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강한 기척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18화제17화 : 그 아이를 넘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