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억흡수 Aug 04. 2024

임진왜란 영웅전[정발]

흑의장군

그저 여느 날과 같은 평범한 날이었다.


절영도에서 훈련하며 조정에 납품할 짐승을 찾아 헤매던 때 도무지 끊을 알 수 없는 왜선들이 온 바다에 가득했다.


순간 알 수 있었다.

그저 여느 날과 같은 평범한 날은 다시 오지 않을 것임을..

곧장 부산진으로 복귀하여 인근 고을에 파발을 띄우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



밤하늘의 별들보다 바다 위에 떠있는 배들이 더 많을 지경이었다.

새벽 물안개를 타고 왜인들이 절영도에 정박하던 그때 그들이 서신을 보내왔다.


서신을 보낸 이는 대마도주 종의지였다.  

*(종의지 : 소 요시토시)



'명국을 공격하기 위한 진군이니 길을 열어주면 아무 일 없이 지나가겠소'


서로 안면이 있던 자였다.

교역을 위해 웃으며 마주했었던 그 온화했던 얼굴은 사라지고

우릴 죽이겠다는 싸늘한 경고만이 문장에 서려있었다.


'죽음이 있을지언정 이곳은 비켜줄 수 없다.!'


울산, 진주, 거제 그리고 해운포에 전령을 보냈다.

그 누구라도 여기 부산진의 위기를 듣는다면 반드시 구원해 주리라 믿었다.


...


동이 틈과 동시에 왜인들이 물밀 듯 밀려왔다.

배들이 해안에 정박하는 족족 계속해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수천, 수만의 발걸음이 땅을 울려대며 달려드니

성안의 장졸들과 백성들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나의 호통을 시작으로 우릴 향해 달려드는 놈들에게 비 오듯 화살을 쏘아댔다.

놈들의 군세는 찰나의 시간도 주춤거리지 않고 귀신같은 안광을 번득이며 더욱 매섭게 달려들었다.


곳곳에서 혼을 빼가는 굉음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우리 병사들은 영문도 모른 채 사방에 피를 튀기며 쓰러졌다.


우레 같은 소리를 울려대는 탄환이 파공음을 내며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그때마다 옆에 있던 녀석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숨이 끊어졌다.


이젠 머리를 내밀고 활을 쏘는 이들이 없었다.

성벽 곳곳에는 사닥다리를 걸친 왜놈들이 괴성을 질러대며 성벽 위로 뛰어올라 칼날을 마구 휘둘렀다.

우리 병사 열댓을 쓰러트린 왜놈의 얼굴에는 사악한 미소가 만연했다.


모두가 죽어 나가는 중에도 나 살고자 도망치는 이는 없었다.

백성들 조차 왜놈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그들의 살육을 저지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야 한다.'


'우리의 좌, 우에서 수사 영감들이 대 군선을 이끌고 나타나 저 악랄한 놈들을 반드시 격멸시킬 것이니

조금만.. 조금만 더..!'


...





『 부산진에서 불꽃이 솟아오르고 비명이 터져 나올 때 이 비극을 지켜보던 두 사람이 있었다.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원균,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박홍


관할 포구의 판옥선을 전부 출동시켜 적을 막아내기에는

시간과 사람이 부족했고 두 수사의 용기마저 부족했다.

그들은 운용할 수 없는 군선 백여 척을 적에게 빼앗길 것을 염려하여

모두 불태워 바닷속으로 처박아 버렸다.


부산진의 군민(軍民)들은 아군의 지원을 기다리며 악착같이 버텼지만

그 목숨이 다 할 때까지 어느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임진왜란 영웅전 [신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