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영화는 제목을 말해줘도 대부분 알지 못하는 영화다. 왜냐하면 어디에서도 홍보 따윈 하지 않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주로 예술 영화, 저예산 영화들이다. 요즘 인기 있는 영화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에서 박스오피스를 내걸며 어떤 영화가 인기 있는지 열심히 어필하는데도 난 그런 순위권 영화에 끌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영화들은 보고 나면 아무 느낌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막상 두 시간 정도 영화를 보고 나면, 남는 건 캐러멜팝콘이 편의점 팝콘보다 맛있었다는 감상과 영화관 에어컨 바람이 너무 세서 추웠다는 느낌만 받는다.
그래서 내가 주로 찾는 영화관은 대중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은, 소위 마니아층만 가는 예술 영화관이다. 광화문의 시네큐브, 종로의 에무시네마, 이화여대의 아트하우스 모모, 노원의 더숲아트시네마는 내가 즐겨 찾는 곳이다. 난 이곳 근처의 빵집에서 빵을 뜯어먹거나, 구석에서 만화책을 보며 지루한 영화 상영 시간을 기다리곤 한다. 보통 영화관에는 혼자 가는 편인데,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같은 취향을 공유할 순 없기에 같이 보자는 게 민폐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지인이나 친구와 영화를 보면 상대방 취향에 맞춰 박스오피스에 떠 있는 유명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영화는 홀로 심취해서 보곤 한다.
나의 마이너적인 취향은 영화에서 끝나지 않는다. 난 책을 볼 때도 베스트셀러 위주로 읽지 않는다. 대개 베스트셀러는 대형문고의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배치되어 있으며, 1위부터 적나라하게 등수가 매겨져 가지런히 꽂혀 있다. 과거에는 아무렇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나 또한 웹소설 플랫폼 사이트에 저렇게 내 소설이 정렬되어 있으므로 베스트셀러 책꽂이를 볼 때마다 현기증이 일곤 한다. 그래서 애써 시선을 피해 내가 그동안 눈여겨보았던 책들을 읽는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거의 남들이 찾지 않는 책들로 대개 맨 구석에 단 한 권만 꽂혀 있거나 그마저도 절판된 경우도 많다. 그래서 주로 대형서점보다는 도서관을 뒤져서 좋아하는 책들을 여러 권 대출한다.
참 길게도 주절주절 써놓았다. 나의 마이너적인 성향에 대해서 말이다.
작가가 마이너 성향을 가지면 좀체 글 쓰는데 도움이 되질 않는다. 특히나 나처럼 대중적인 웹소설을 쓸 때 마이너 성향은 그야말로 '필요악'이다.
글은 타자기를 두드리기 전에 뇌라는 필터를 거치게 되는데, 이때 뇌 안의 여러 가지 불순물들이 섞이게 된다. 마이너 성향의 작가는 머릿속에 온갖 마이너 한 잡동사니가 쌓여있으며, 그것이 글이 될 때 먼지처럼 덕지덕지 묻어나게 된다. 결국, 그렇게 조각조각 퍼즐 맞추듯 완성된 글들은 글 곳곳에 마이너적인 냄새를 풀풀 풍기게 되며, 급기야 메이저인 독자들의 외면을 받게 되는 것이다. 참 슬프다. 내가 마이너 성향의 작가라서.
만약 내가 메이저 성향을 가졌다면 어땠을까? CGV나 롯데시네마에서 박스오피스 1위 영화를 감명 깊게 보고 그 영화에 대한 호평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한다면? 또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 들어가자마자 베스트셀러 매대부터 찾아서 보고 그중 제일 잘나가는 소설 세 권을 들고 계산대로 가는 부류라면? 내 글도 많이 달라졌을까? 아마도 그랬을지 모른다. 타고난 성향이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어쨌거나 성향이 메이저라서 피곤하고 힘들 일은 없다. 적어도 상업 작가 세계에서는 말이다.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와 영화를 즐겨보고, 틱톡과 SNS를 꾸준히 하는 '인싸' 작가들은 그들이 쓰는 소설 또한 '인싸'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자신의 성향이 메이저라는 건, 메이저처럼 생각하고 느낀다는 뜻이니까. 그러니까 인위적으로 글을 쓸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글을 쓰면 그대로 상업적인 소설이 완성된다. 그리고 그러한 소설은 다수의 독자의 사랑을 받고 출판사와 플랫폼의 지지를 받아서 밀레니엄 셀러에 오를 것이다.
만약,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이 나와 같은 마이너 성향의 작가라면 상업 작가로 성공하기 매우 어려울지도 모른다. 나처럼 20군데 넘는 곳에 투고했다가 거절을 당하고, 매년 열리는 공모전에서 번번이 탈락하고, 운 좋게 낸 소설이 독자의 외면을 받아서 한달 내내 라면만 끓여 먹으면서 살아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마이너 작가로서 살아갈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 그건 나의 성향을 죽이고 메이저 콘텐츠를 열심히 학습하는 것이다. 만약 에세이 작가라면 최신 베스트셀러 에세이를, 웹소설 작가라면 가장 잘 나가는 웹소설을 계속해서 읽고 흐름을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 이건 진짜 말 그대로 '공부'처럼 느껴진다. 독서실에서 수학책 펴놓고 공부하는 것과 같은 지루함과 힘듦이 느껴진다. 왜냐하면 마이너 성향이 애초에 메이저 스토리의 클리셰를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밀어내려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메이저 콘텐츠를 파고, 파고, 또 파다 보면 어느새 매직아이에 숨은 글자처럼 떠오르는 게 있다. 그때야 비로소 메이저 소설 비스무리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웹소설을 새로 써야 할 때마다, 최근에 나온 웹소설 중 가장 반응이 좋은 웹소설을 읽는다. 물론 내 취향이 아닌 소설이므로 쉽게 읽히지는 않고 억지로 읽는다. 그런데 그렇게 읽다 보면 뻔하긴 하지만, 또 그 뻔한 내용 특유의 재미가 있다. 마치 떡볶이와 같다. 떡볶이는 단순히 흰 쌀떡이나 밀가루떡을 고추장과 함께 끓인 것이지만 분식집마다 며느리도 모르는 양념장 비법으로 매상을 올리지 않던가. 떡볶이가 다 똑같은 떡볶이가 아니듯, 뻔한 웹소설도 다 똑같지만은 않다. 이렇게 서로 비슷비슷한 메이저 웹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내가 써야 할 웹소설의 방향도 생기고, 마이너 취향에서 메이저 취향으로 살짝 변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이때가 바로 글을 써야 할 타이밍인 것이다.
적어도 나와 같은 마이너 성향의 작가는 메이저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한다. 오히려 마이너 성향이기 때문에 더더욱 많이 인기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한다. 그래야만 고양이 사료값이라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밖에 없는 소듕한 고양이, 굶게 할 순 없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