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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반달 Aug 20. 2024

어느새 원고 반려가 일상이 돼버린

아쉽게도 투고해 주신 ㅇㅇㅇㅇ은 저희 출판사와 방향성이 맞지 않아 반려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저희 출판사와는 인연이 되지 않았사오나, 뜻이 맞는 출판사와 함께하길 응원하겠습니다.




아마 한번이라도 투고해 본 적이 있는 작가는 위와 같은 거절 문구가 익숙할 것이다. 나 또한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이와 같은 거절을 당했었다.


"대체 왜? 내 글이 뭐가 문제냐고? 내 글에서 냄새라도 나나?"


글에서 썩은 내가 나는 게 아니라면 왜 다들 내 소설을 회피하는 거냐고 묻고 싶다. 그러나 처음엔 오기로라도 버텼다가도 반려메일을 스무 통 가까이 받은 후엔 전의도, 어이도 상실한 채 헛웃음만 지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저희 출판사와 방향성이 맞지 않아~'라고 시작되는 메일을 클릭했을 땐, 온몸에 힘이 쫙 빠졌다. 어깨가 축 늘어지고 동공이 풀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좋았던 기분이 곤두박질치고 우울증 환자처럼 침대에 늘어지고 만다. 계속되는 반려 메일 펀치에 그만 KO를 당해버린 것이다.


창피하게도 난 글 쓴 지 12년째 되는 시조새에 버금가는 작가이지만, 반려메일을 아직도 많이 받는다. 내가 아직도 여러 출판사에 투고하는 이유는 단 하나, 한 군데라도 거래처를 뚫어볼까 싶어서이다. 물건을 팔더라도 여러 곳의 쇼핑몰에 입점하는 게 좋듯이, 책을 팔더라도 한 군데의 출판사하고만 일하기보다 여러 출판사와 일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물론 모든 출판사가 반기는 잘 파는 네임드 작가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나는 '망한 작가'가 아니던가. 그러니 날 오라고 손짓하는 출판사가 없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래도 조금 위안이 되는 점이 있다면 이렇게 투고에 실패하는 기성 작가가 비단 나뿐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창피해서 다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기성작가들 중 상당수의 작가들이 새로운 출판사에 소설을 들이밀었다가 고배를 마시곤 한다. 그래도 기성 작가들이 쓴 소설이라면 제법 잘 쓴 소설일 텐데 어째서 출판사들은 원고를 반려하는 걸까? 그 이유는 출판사마다 사정이 있겠지만, 한 해에 소화할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어서 그렇다. 그래서 기성, 신인 가리지 않고 오직 소설의 흥행성만 놓고 심사를 하기 때문에 기성 작가의 소설이라고 해서 무조건 통과시켜 주지 않는다.


얼마 전 일이었다. 심심해서 유튜브를 서치 하다가 우연히 어느 편집자의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편집자는 장르소설 출판사의 편집자는 아니었고, 내 기억이 맞다면 에세이 분야의 편집자였던 것 같다.

Q & A 형식으로 방송을 이어나가던 편집자는 '투고 반려 메일에서 방향성이 맞지 않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라는 물음에 사이다 같은 답변을 했었다.


"보통 원고를 검토하고 반려 메일을 보내는 경우, 방향성이 맞지 않다고 많이 말합니다. 여기서 방향성이 맞지 않다는 말은 곧,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일단, 눈물부터 닦고 다음 말을 잇겠다.

앞의 출판사가 지적한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말은 과연 무슨 뜻일까? 그건 바로, 책이 잘 안 팔릴 것 같다는 말이다. 이는 설령 책을 출간한다 해도 대중들이 많이 사지 않아서 적자를 볼 확률이 높다는 말이기도 하다. 책이 안 팔리면 어떻게 될까? 일단 서점에서 책이 팔리지 않아서 재고가 많이 쌓이게 될 것이다. 그건 그대로 출판사의 적자로 돌아오게 될 테고, 심할 경우 편집자의 교정교열비나 책표지 값도 못 건질 수 있단 말이다.


출판사는 봉사단체가 아니다. 간혹, 출판사의 대표가 작품성을 중요시 여겨서 안 팔릴 걸 각오하고서라도 책을 출간하려는 의지가 있지 않고서야 책을 출간하는 목적은 많이 팔아서 이윤을 내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출판사는 투고한 원고를 보고 이 책이 과연 팔릴지, 안 팔릴지를 분석하게 된다. 그리고 안 팔릴 것 같으면 쿠션어를 잔뜩 넣은 반려 메일을 작가에게 보내는 것이다.


사실, 난 신인 작가였던 시절에 '저희 출판사와 방향성이 맞지 않아~'라는 반려 메일을 받고서 심각하게 고민하곤 했었다.


"방향성? 장르 소설이 다 비슷하지 않나? 출판사마다 방향성이라는 게 따로 있어?"


당시 난 순진하게도 대형서점에 갈 때마다 내게 반려 메일을 보낸 출판사에서 나온 종이책들을 뒤적이곤 했다. 종이책의 날개와 띠지를 훑어보며 과연 날 차버린 출판사가 원하는 '빌어먹을 방향성'이 대체 뭔지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하지만 '빌어먹을 방향성' 따위는 없었다. 앞서 말한 대로, 출판사 측의 완곡한 거절의 표현이었을 뿐이었다. 즉, 내 소설이 시장성이 없으니 출간해도 잘 안 팔릴 것 같으니 반려한다는 말이었다.


최근에도 과거의 나와 같은 신인 작가들을 종종 보곤 한다.


"방향성이 뭐예요? 출판사에서 방향성이 맞지 않다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이런 질문을 남기는 신인 작가들을 보면 난 과거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가슴 한편이 찡하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남긴 상처받은 영혼을 토닥토닥해주고 싶다. 다음번엔 '빌어먹을 방향성'을 운운하지 않도록 출판사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버리라고 조언해주고도 싶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지금은 출판사에서 뭘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출판사에서 원하는 건 팔릴만한 소설이다. 장르소설에 국한해 본다면 요즘 트렌드에 맞는 소설이다. 여기에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클리셰를 섞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너무 판에 박혀서는 안 되고 나름 신선함이 한 스푼 가미되어야 한다.


장르소설 출판사의 입맛, 대형 웹소설 플랫폼의 입맛, 스낵컬처를 즐기는 독자들의 입맛을 맞추느라 작가는 점점 입맛을 잃어간다. 그들이 뭘 원하는지 알고는 있지만 정작 내가 쓰고 싶은 소설과 방향성이 달라서 청개구리처럼 반대 방향으로 뛰어오르고 싶은 충동이 불쑥 솟구친다.


나도 날 뻥 차버린 출판사에게 정중하게 반려 메일을 보내고 싶다.


"귀하의 출판사가 훌륭한 건 알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저와 방향성이 맞지 않군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좋은 인연으로 뵙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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