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이때까지 내 다리 옆에서 자던 고양이가 앞발로 내 어깨를 툭툭 친다. 괜히 내 침대 머리맡을 맴돌며 비비적거리기도 한다. 얼른 일어나서 밥을 주고, 화장실을 치우고, 놀아달라는 것이다. 몇 번의 괴롭힘 끝에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내가 일어나자마자 하는 건 바로 고양이 똥을 치우는 일이다. 간밤에 커다란 화장실에 똥과 오줌을 잔뜩 싸놨으므로 청결을 위해서는 늘 하루에 한두 번씩 치워주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고양이의 식기를 세척하고 방마다 있는 물그릇을 집어다가 깨끗한 물을 채워준다.
고양이 밥은 내가 따로 줄 필요가 없다. 작년 말에 자동급식기를 들인 이후로 2시간 터울로 6g씩 정확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띠띠또또~ 청량한 알림이 들리면 자동급식기에 한 숟갈만큼의 사료가 와르르 쏟아진다. 전에는 내가 직접 사료를 주었는데, 이젠 그 일을 자동급식기가 대신하고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다른 집사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람 일은 뒷전이고 눈 뜨자마자 졸린 눈을 비비며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고 밥을 채워 넣는 일을 먼저 하는 게 익숙하다. 예전에 TV에서 어느 고양이 집사 연예인의 일과를 본 적이 있는데 그녀도 눈 뜨자마자 비틀비틀 걸어가더니 고양이 화장실부터 치웠던 것 같다.
이제 슬슬 점심도 먹고, 유튜브도 실컷 보았으니 일이나 해볼까?
나는 '글을 쓰기 싫다' VS '글을 써야 한다'는 갈등으로 늘 괴로워한다. 내 안에 천사와 악마가 싸우듯이 글 써야 한다는 마음과 글 쓰기 싫다는 마음은 늘 충돌한다. 하지만 언제나 글 써야 한다는 마음이 이긴다. 왜냐하면 이번 달에 글을 열심히 쓰지 않으면 다음 달에 빈곤하게 살아야 하니까. 나는 잘 나가는 작가가 아니기에 늘 성실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필실에 들어와서 노트북을 켜고 의자에 간신히 앉았다고 해도 쉽게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내가 글을 쓸라치면 노랗고 뚱뚱한 고양이가 와다다 달려와서 '무엄하다'는 듯 눈을 부릅뜨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말한다.
"집사, 나 서운해. 밥 주고 간식 주면 다야? 왜 안 놀아줘?"
그러면 난 수리부엉이처럼 눈을 매섭게 뜬 녀석을 보며 말한다.
"엄마, 일해야지. 엄마가 일해야 네 밥도 사고 간식도 사지."
하지만 녀석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지금 밥이랑 간식이 문제가 아니야. 놀아줘. 놀아달라고. 어제 새벽 내내 집사가 눈 뜨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 줄 알아?"
녀석의 "야옹"거림이 커짐에 따라 나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꿋꿋이 모니터를 보며 글을 쓰려고 한다.
"나를 무시했겠다? 좋아. 나도 방법이 있다고."
녀석은 괘씸하다는 듯 날 바라보다가 풀쩍 책상 위로 올라온다. 그러고는 "어디 글 쓸 테면 써보라지." 하는 식으로 육중한 몸으로 자판에 걸친 내 손목 위에 납작 엎드려버린다.
녀석의 몸무게는 10kg에 육박한다. 지금은 자동급식기 때문에 살이 빠져서 8kg밖에 안 나가지만, 작년 말쯤에는 맘모스빵 같은 몸매를 갖고 있었다.
"하아."
내 입에서는 절로 한숨이 흐른다. 하지만 이내 녀석의 뱃살에 짓눌린 손목을 조심스럽게 빼낸 후 녀석의 육중한 몸통을 들어 올려 아래에 내려놓는다. 그러고는 다시 글을 쓸 요량으로 모니터를 노려본다.
하지만 녀석의 괴롭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허! 집사! 날 감히 내려놓았겠다? 어디 맛 좀 봐라."
녀석은 사람처럼 벌떡 일어서서 내 오른팔에 달려든다. 그러고는 송곳니가 살벌한 입을 크게 벌려 "앙!"하고 내 팔뚝을 깨문다.
"앗!"
녀석에게 폭행당한 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오른팔을 주물럭거린다.
"왜 그래? 너, 자꾸 이럴 거야?"
결국 짜증이 난 나도 소릴 지르고 만다.
"집사가 안 놀아줘서 그러는 거잖아."
"내가 일을 해야 너 밥도 사고 간식도 사지."
"그런 거 몰라. 암튼, 놀아줘!"
하여간 말이 안 통하는 녀석이다. 녀석은 간식까지 충분히 먹었으면서도 고작 15분 안 놀아줬다고 이렇게 시위를 하는 거다.
결국, 빈정이 상한 나는 노트북 가방에 얼른 노트북을 챙긴다. 집에서는 녀석의 방해 때문에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으니 가까운 카페라도 나가서 글을 쓰려는 것이다. 그러면 녀석은 당황한 얼굴로 날 바라본다.
"집사, 화났어?"
"몰라. 다 너 때문이야."
난 그대로 쌩~ 하니 나가버린다.
하나밖에 없는 글 친구라니. 아까 한 말 다 취소다.
녀석은 내가 집필하는데 엄청나게 방해되는 훼방꾼에 지나지 않는다.
카페에서 두어 시간 시원한 음료를 들이키며 글 한 편을 완성하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조금 전 고양이 때문에 났던 짜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얼른 집에 가서 고양이를 보고 싶어 진다.
글은 마치 변비와도 같은데, 글이 꽉 막혔을 때는 안절부절못하게 되며 미칠 듯한 짜증이 폭발하지만 글이 술술 잘 나올 때는 한없이 너그러워진다.
카페에서 리프레쉬를 하고 온 나는 집에 들어온다.
"나 왔어!"
집에 오자마자 고양이를 찾는다. 녀석은 가끔 현관 앞까지 오곤 하지만, 대개는 침대형 스크레쳐 위에서 뒹굴거리거나 캣타워 꼭대기에 늘어져 있다. 그러다가 나를 힐끗 보고는 우리 둘 사이에 언제 문제가 있었냐는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한다.
"집사, 왔어?"
그러고는 느긋하게 꼬리를 꼿꼿이 치켜세우며 내게 다가온다. 다리에 제 뺨을 비비는 건 환영한다는 뜻이다. 동시에 맛있는 걸 내놓으라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얼른 찬장을 뒤져서 고양이가 먹을 만한 걸 내놓는다. 대개는 참치 츄르나 닭고기 트릿 같은 것이다.
냠냠 쩝쩝.
그릇에 담긴 간식을 먹는 녀석을 쓰다듬으며 나는 흐뭇해한다.
"오늘 글 잘 쓰고 왔어. 그래도 오늘은 카페에서 글이 잘 나왔지 뭐야. 다음부턴 엄마 글 쓰는데 훼방 놓지 말아 주라. 내가 글을 써야 너 맛있는 간식도 사주고, 장난감도 사주고 하지. 이제 글 쓰고 왔으니까 많이 놀아줄게."
글을 쓰고 난 후엔, 녀석이 한없이 사랑스러워 보인다.
황금빛의 길고 고운 털, 두툼한 앞발과 풍성한 흰 목도리, 더없이 귀여운 수리부엉이를 닮은 두 눈.
마치 환상 속 신비스러운 동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