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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e Oct 27. 20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바보 같은 짓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지금 애를 낳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진화 생물학자의 관점에서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애를 낳는 것은 한마디로 바보 같은 일이라고 말하는 영상을 본 적 있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보여주듯 이제는 더 이상 결혼과 출산이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 부부도 어느새 결혼한 지 3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 아이는 없다. 주변을 둘러봐도 일단 결혼한 친구보다 결혼하지 않은 친구가 더 많고,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은 부부보다는 아이 없는 부부가 더 많은 게 현실이다.


내 나름대로 분석해 봤을 때, 아직 아이가 없는 부부들은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1. 부부가 합의 하에 아이를 갖지 않기로 선택한 경우

2. 부부가 합의 하에 아이를 갖기로 결심하여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노력하는 경우

3. 아이를 낳을지 말 지 아직 갈팡질팡 고민하는 부부

4.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기면 낳겠지만, 없어도 괜찮다는 주의로 특별한 노력은 하지 않는 부부


우리 부부는 오랜 기간 동안 3번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2번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중이다. 이런 변화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노산의 위험성 그리고 거주지 이동이 있었다. 출산이라는 것은 시간이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 여성의 나이 35살이 지나면 임신과 출산에 있어서 모든 위험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더는 미루지 않고 선택을 하기로 했다. 건강한 나이에 출산을 할 것인지 아니면 깔끔히 포기하고 딩크부부로 살 것인지를.


어쩌면 1번으로 갈 수도 있었을 선택지가 2번으로 향하게 된 것에는 거주지 이동도 한 몫했다. 서울에 살 때는 지옥철로 악명 높은 9호선 전철에 매일 몸을 실었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온몸이 끼인 채로 40분 넘는 거리를 왕복하다 보면 사람이 아니라 좀비로 사는 것 같았다. 남편의 직장은 경기도에 있어서 서울에서 경기도까지 자차로 출퇴근을 했다. 둘 다 출퇴근 시간만 1시간이 넘었다. 집에 오면 둘 다 녹초가 되어 배달음식으로 저녁을 때우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신혼생활을 보내면서는 아이를 낳는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남편 직장이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오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빼곡한 건물들과 사람들 틈에 치여 살던 서울살이와 다르게 이곳은 건물 사이에도 여유가 있고, 사람 사이에도 여유가 있었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생전 안 하던 요리도 맘껏 해보고 배달음식을 시키는 일도 많이 줄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부부의 대화에 '아이'라는 주제가 추가되었다.


사실 나는 간접 경험으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 일인 지 잘 알고 있었다. 14살 차이가 나는 늦둥이 동생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 배가 점점 불러오는 모습, 입덧을 하는 모습, 커진 배에 폐가 눌려 잠도 잘 못 자던 모습이 아직까지 너무 생생하다. 배꼽이 커질 정도로 하루종일 울던 아기, 잠을 너무 못 자서 엄마 아빠 얼굴이 모두 노랗고 퀭했던 모습까지도. 그래서 더 아이를 낳는 것이 두렵고 피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힘든 만큼 얼마나 아이가 예쁜 지, 사랑스러운 지도 잘 알아서 더 고민이 되었다.




어쩌면 정말 바보 같은 짓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둘이서 여유롭게 보냈던 일상에 균열이 생기고, 지금의 '느슨한 나날들'이 '우왕좌왕 육아일기' 혹은 '좌충우돌 육아생존기'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아직 경험에 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발을 딛는 것은 너무 두렵고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한 때는 이런 생각도 했다. 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 부부 밑에서 자라는 것을 선택할까? 우리는 부모로서 지, 덕, 체를 겸비한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이런 무한 경쟁 사회에 아이를 낳는 것은 낳는 자의 욕심일 뿐 태어난 자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


이런 어지러운 질문들에 그 어떤 명확한 답도 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아보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반반 닮은 아이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고, 엄마 아빠가 된 우리 부부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분내가 풀풀 풍기는 아기를 내 품에 꼭 안아보고 싶고, 그런 아기가 처음 뒤집기를 한 날, 처음 걸음마를 한 날, 처음 '엄마'를 말하는 날, 처음 학교에 들어가는 날.. 그런 모든 날들을 경험해보고 싶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세상은 참 어지럽고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충만하게 해주는 소소한 행복들이 분명히 있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한 번 살아볼 만하다고 생각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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