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트에 그림을 그리듯 조향을 하는 브랜드
자유로운 삶에 대한 열망으로 똘똘 뭉친 세 명의 창립자
1961년, 무대 디자이너 이브 쿠에랑(YVES COUESLANT), 실내 건축가 크리스티앙 고트로(CHRISTIANE GAUTROT), 화가 데스몬드 녹스-리트(DESMOND KNOX-LEET) 호기심 가득하고 창조적인 열정을 가졌던 세 명의 예술가 친구들로부터 브랜드 ‘딥티크(Diptyque)’가 탄생합니다. 먼저 영국 메종을 위한 패브릭과 벽지를 함께 디자인했던 크리스티앙과 데스몬드의 만남을 시작으로 이브와의 인연으로 이어지는데 예술과 문화에 대한 깊은 조예를 바탕으로 만났던 셋은 급속도로 가까워집니다. 창의성과 예술적 비전에 공통을 이뤘던 세 사람에게 돈보다도 가장 중요했던 건 그들이 팔고 있는 상품의 가치. 성공을 위한 체계적인 마케팅 대신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망과 자유로운 삶, 진정성 있는 디자인이었습니다.
‘딥티크(Diptyque)’는 고대 그리스어인 ‘딥티코스(Diptykhos)’에서 시작합니다. 단어 자체로도 사용되는 프랑스어로 그 의미는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두 개의 그림으로 구성되는 예술작품의 한 형태 ‘2단 접이식 목판화’를 의미합니다. 파리 시내에 자리한 브랜드 최초의 부티크가 이러한 형상을 띄었는데, 건축학적 미학에 따라 나란히 설치됐던 쇼윈도의 모습이 오늘날 이름의 유래가 됐습니다. 활짝 열린 두 개의 창은 향기와 예술을 전파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데스몬드와 크리스티안이 전 세계에서 공수한 패브릭에 디자인과 색채를 더하는 아티스트로 이름을 알렸고 이브는 컨설턴트이자 실질적인 관리를 맡게 되며 고유의 직물 디자인 아이템들을 선보이기 위한 첫 부티크를 열게 되었습니다.
당시 최초의 매장이 자리했던 생-제르맹(Saint-Germain) 거리는 파리 문화의 구심점이자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장 콕토(Jean Maurice Eugène Clément Cocteau), 세르쥬 갱스부(Serge Gainsbourg)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와 예술인들이 활동하던 곳이었습니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엄선해 온 독특하고도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 아이템들이 추가되면서 부티크는 더욱 매혹적인 모습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그러나 탁월한 마케팅 기법 없이 사업을 확장하기란 무리였을까요?. 패브릭 판매로는 큰 경제적 호황을 누리지 못해 한계를 맞이하게 됩니다. 재정적인 압박을 받던 중에도 이들은 부티크 창문을 꾸미기 위해 램프에 오리, 꿩, 거위 같은 동물을 수채화로 그려 장식해 두었는데 패브릭보다도 이 아이템이 호황을 누리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세 사람은 딥티크의 사업을 확장하며 패브릭과 어울릴만한 장식용 소품과 오브제를 함께 판매하기 시작했고 이는 곧 오늘날 딥티크의 근간이 됩니다. 나무 장난감, 목마, 촛대, 식탁보 등의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이 매장을 채웠고 희소성을 가졌던 이들의 제품군은 당시 패션 매거진과 파리 가이드북 등에 소개되며 지금의 명성에 불씨가 됩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퍼퓸
관습을 타파하고자 하는 열망에 가득 찼던 세 명의 공동 설립자들은 창조적 과정을 개발시키면서도 현대까지 브랜드 고유의 특성을 유지해 왔습니다. 1963년에 들어서는 향에 관한 애정을 담아내고자 차 향기를 기반으로 한 최초의 캔들이 출시됐고 1964년에는 데스몬드가 영국식 포푸리를 수입했는데 히아신스와 버베나, 로즈, 재스민 등을 말려 향을 낸 향기 주머니가 매장을 향한 대중들의 발길을 모았습니다. 창립자들은 다수의 조향사들과 플로럴, 스파이시, 우디 등 새로운 소재들을 활용한 향기, 그를 품은 캔들을 줄지어 출시했고 여기에는 어릴 적 살던 추억의 장소나 여행지에서 느꼈던 추억들이 뿌리가 됩니다. 포푸리와 캔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낳았고 수익성을 발견하자 딥티크 퍼퓸의 힌트가 됩니다. 오늘날 딥티크를 상징하는 시그니처 제품인 향수는 캔들을 뒤이어 1968년 ‘로(L’eau)’라는 네이밍으로 최초 론칭되는데, 지금과 마찬가지로 남녀 전용의 구분 없는 중성적인 어코드를 향유합니다. 16세기식 향수 레시피에서 영감 얻어 시나몬, 제라늄, 정향, 샌들우드 등을 블렌딩해 동시대 향수와는 확연히 다른 존재감을 냈습니다. 후각적인 영역을 끊임없이 탐구하던 딥티크는 더욱 다채로운 모습으로의 발전에 도전하며 패브릭과 인테리어 소품을 모두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향수와 캔들에만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향을 찾는 방식부터 달랐다
딥티크에게 브랜딩은 먼저 '고유함'을 만드는 것이었다. 컨템퍼러리 브랜드로서의 길을 걸어 나가기 시작한 이들은 고전적인 조향 방식을 탈피하고 몇 가지 고유한 규칙을 만들었다. 먼저, 인적이 드문 풍경에서 희귀한 천연 재료를 찾아 나섰고, 과거와 미래, 전통과 아방가르드, 새로운 발상과 단절, 그리고 역사 속 '다른 곳'을 향한 여정을 떠나기로 했다. 딥티크는 매번 상반되는 두 개의 세계를 놓고 서로 다른 장르와 문화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어 아이디어를 혼합하고, 영감을 이끌어내는 데 전념했다. 이를 토대로 딥티크는 브랜드 고유의 철학을 전 세계에 전파하고자 끊임없이 새롭고, 경이로운 조향 방식을 모색한 끝에 비로 ‘후각적 풍경'에서 고안된 향기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림 그리듯 향을 조합한다?
그 밖에도 딥티크가 오랜 시간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딥티크만이 소유한 원료의 역할이 가장 클 터. 이들은 자사에서 쓰이는 히든 노트를 돌발적 향기라고 칭하는데, 이는 딥티크만의 예술성을 부여하는 딥티크의 숨겨진 원료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이 향을 메인 원료에 더하면 더할수록 색다른 개성이 피어나 단번에 딥티크 향수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하나의 단서가 된다고. 하여 딥티크는 추구하는 후각적 톤에 따라 각각의 원료를 세심하게 선별해 놓은 원료 팔레트가 존재하며, 마치 화가가 팔레트를 가지고 색상을 조합하듯 딥티크의 조향사는 원료 팔레트로 향기를 조합한다는 것이다. 딥티크 창립자 중 데스몬드 녹스-리트는 조향사이자 화가였는데,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릴 때와 동일한 방법으로 향을 그려나갔으며 꽃잎들을 으깨어 페이스트를 만들고, 그것을 농축액으로 전환시키는 등 그 어떤 규칙이나 한계 없이 자유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향의 하모니를 창조해 냈다. 이처럼 색상과 향기로 딥티크의 향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딥티크만의 독특한 퍼퓸 팔레트가 형성되었고, 돌발적 향기가 탄생된 것이다.
향수 애호가들 사이에서 딥티크의 향수는 마녀의 물약(Witch's Portion)이라고 불립니다. 그만큼 향수의 색채가 강해 호불호가 갈리는 향수이지만, 딥티크가 가지는 향수의 매력은 독보적입니다.
이런 향수들 사이에서 개인적으로는 가장 대표적인 4가지 향수가 매력적이었습니다. 이 4가지 향수는 도손(Do Son), 필로시코스(Philosykos), 플레르 드 뽀(Fleuq de Peau), 롬브로단로(L'Ombre Dans L'Eau)입니다
첫 번째로 도손(Do Son)은 투베로즈(Tuberose) 향기로운 플로럴 향과 머스크(Musk)의 포근한 느낌이 더해진 매력적인 향수입니다. 여기에 오렌지 리프(Orange Leaf), 핑크 페퍼(Pink Pepper)가 더해져 그 매력을 더하여, 자칫 뻔할 수 있는 향을 특별하게 만들어줍니다.
다음으로 필로시코스(Philosykos)는 무화과(Fig) 향수 중 가장 대표적인 향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향수에는 무화과 열매(Fig)를 비롯하여, 무화과 잎(Fig Leaf), 무화과나무(Fig Tree)의 향이 모두 사용된, 말 그대로 무화과나무의 모든 향이 하나의 향수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무화과 열매(Fig)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코코넛(Coconut), 무화과 잎(Fig Leaf)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풀잎의 향(Green Note), 그리고 무화과나무(Fig Tree)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나무의 향(Woody Note)등이 사용되었습니다. 때문에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한, 매력적인 무화과 향수가 탄생하였습니다.
그다음으로 플레르 드 뽀(Fleuq de Peau)는 머스크가 돋보이는 플로럴 향수입니다. 도손(Do Son)과의 차이는 아이리스(Iris)와 터키 장미(Turkish Rose)가 사용되었으며, 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안젤리카(Angelica), 베르가못(Bergamot), 그리고 알데하이드(Aldehyde)가 사용되었으며, 잔향으로는 엠버그리스(Ambergris), 암브레트 시드(Ambrette Seed) 등이 사용되어 커리어 우먼들에게 잘 어울릴법한 조금은 딥하고 섹시한 느낌의 향수가 탄생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롬브로단로(L'Ombre Dans L'Eau)는 딥티크의 대표적인 장미 향수입니다. 이 향수에는 장미(Rose)와 블랙 커런트 잎(Black Current Leaf)과 꽃(Black Current Blossom) 등이 사용되어 줄기와 잎이 함께 있는 장미를 다발로 들고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절간의 향을 닮은 탐다오(Tam Dao), 베티버의 대표 향수 베티베리오(Vetyverio), 오르페옹(Orphéon) 등 매력적인 향수들이 많으므로, 자기 만의 색깔을 담은 향을 찾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