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후 전투에서 포로가 되기까지

천계 6년 북경성 대폭발 비망록

by 장웅진

나는 만력 47년(1619년)에 징집되어 상국(上國: 명나라)의 요청으로 편성된 강홍립 장군 휘하 부대에 들어갔다.

다들 알겠지만 강홍립 장군의 임무는 상국 장수들을 도와 심하(深河: 사르후)에서 오랑캐를 무찌르는 것이었다.

허나 이전까지 나는 대감님들 댁에서 잔치가 있을 때마다 요리를 전담했던 숙수(熟手)에 불과했다.

다행히 나를 알아보신 여러 나리들께서 나를 당신들의 식사를 전담할 화병(火兵: 취사병)으로 써주셨다.

익숙잖은 창검을 들고 전선에 서는 대신 다시 식칼을 들고 부엌에 머물 수 있게 된 이 천한 놈의 팔자를 돌아보면서 그야말로 새옹지마(塞翁之馬)구나 싶었다.

후일 이 재주 덕분에 나는 오랑캐 놈들 손에서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

아울러 내가 북경에 7년 가까이 살면서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 원인이기도 했다.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는 군대가 행군을 멈출 때마다 나리들의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하니 남들이 쉴 때에도 쉴 수가 없었다.

이 와중에도 맛을 타박하는 분도 여럿 계셨던지라 고생이 가중되었다.

얄궂게도 압록강을 건넌 뒤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군량이 미처 거대한 강을 건너오지 못했는데,

상국 장수 분들이 직접 우리에게 달려와 빨리 합류하자고 재촉을 해서였다.


정강이는 부르트고, 발에서는 물집이 터지더니 급기야 피까지 줄줄 나면서 짚신을 적셨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지만, 남들만큼만 고생을 하니 이게 차라리 낫구나 싶었다.

이는 나리들마저도 건량(乾糧: 전투식량)이나 씹으셔야 할 정도로 군량이 부족한 데다,

병사들은 숫제 여러 날 밥을 먹지 못하니 강홍립 장군께서 여러 나리들에게 눈치를 주셨던 덕분이다.


이렇듯 처참하게 행군한 뒤에는 다들 들었다시피 비참하게 패했다.

나리들은 상국 장수들이 어리석다고 한탄하는가 하면,

오랑캐의 수준이 임진년에 조총을 들고 침략해 우리를 놀라게 했던 왜놈들처럼 일취월장했다며 감탄하기도 하셨다.

나는 강홍립 장군께서 직접 지휘하시던 중영(中營)에 소속된 덕에 포로가 됨으로써 죽음을 면했다.

기실 강홍립 장군께서는 화약에 불을 질러 중영을 폭파하려 하셨으나,

오랑캐의 우두머리가 사자를 보내 협상을 권했다.

우리 나리들을 따라 죽을 뻔했으나 오랑캐 덕에 살았으니,

지금도 그 일을 떠올리면 기가 막혀 웃음이 난다.


포로들 중에서 총통과 조총 같은 무기를 잘 다루게 생겼거나 양반이라 사료되면 오랑캐들은 가차 없이 끌어내 죽이거나 어딘가로 끌고 갔다.

놈들은 제대로 밥을 주지 않으면서 우리가 뭐라도 스스로 찾아먹으려고 돌아다니면 기어코 쫓아와 죽였다.

어떤 포로들은 떠돌아다니던 개를 잡아먹었다는 이유로 오랑캐들에게 살해당했는데,

이유가 가관이었다.

오랑캐들은 개를 잡아먹거나 개가죽을 쓰는 걸 얼마 전부터 금지했다나?

그래서 많은 이들이 굶주림과 추위로 죽어나갔다.


이때 어느 나리께서 내가 요리를 잘한다고 오랑캐 군관에게 귀띔하셨나보다.

오랑캐 군관 하나가 나를 지명하더니 자기네 부엌으로 데려갔다.

거기 있는 식자재로 뭐든 만들어보라기에 나는 휘 둘러봤다.

진말(眞末: 밀가루)이 담긴 자루가 여럿에,

잡아서 가죽을 벗긴 지 며칠 된 것 같은 사슴도 여러 마리가 쇠갈고리에 꿰어 걸려있었다.

마늘과 파에 기름, 소금과 간장 같은 것도 있었다.

나는 칼국수를 만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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