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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웅진 Aug 31. 2024

마치면서

소프트파워로서의  애니메이션


<20세기에서  본  21세기>는  2011년에  출판전문지  <기획회의>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우리나라에서  왜  인기를  끄는가, 거기서 우리는 어떤 영감을 받을 수 있는가에  관한 글이었지요.


문화평론가 김봉석 선생님이 쓰신 <문화의 힘은 다양성과 소통이다>라는 글에  이  기고문과  관련이  있어  보인  부분이  있길래  발췌해  소개하겠습니다.



"문화가 흥미로운 것은 반드시 우월한 것, 중심만을 따라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어디가 우월하다고 일방적으로 말할 수도 없다.

각자의 장점이 있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대중에게 전달하는가의 문제가 더 크다.

(중략)

외국의 다양한 문화들을 우리의 감성과 논리로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순간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다양한 문화적 환경을 가지고 있는가, 이다."



김봉석 선생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일본 문화 혹은 미국 문화에 환장하는 건 그 나라들이 그저 강대국이라서는 아닐 겁니다.

일본과 미국이 강대국들이라서 우리나라에 일본 애니메이션, 미국 영화와 드라마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나온 거라면, 중국이나 러시아의 문화컨텐츠에 대해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겠죠.


그러나 중국 기준으로 보면 '손톱깎이로 잘라내고 싶을, 발톱의 끄트러미 같은 땅 덩어리'인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래 중국인 배우가 중국어로 연기하는 영화에 대한 팬심을 보기는 어려워졌고,  현재  중국  영화ㆍ드라마는  그저 고증과 웅장함을 추구하는 사극 매니아들이나 찾는 컨텐츠가 됐죠.

러시아 컨텐츠는 말할 것도 없고요.


1990년대에 일취월장하던 일본 경제의 기세를 꺾을 힘도 있던 미국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이 나오는  걸  보세요.

 할리우드의 영화 감독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고전 영화에 영향을 받는 일도요.

그리고 이 <20세기에서 본 21세기>가 기고됐던 당시 싹이 트던 한류 열풍이 지금과 같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잘사는 나라들, 강대국들에서 팬들을 대량 만들어내는   일도요.


전 우주 최강의 군대를 가진 젠트라디인들이 "함대가 지나가는 항로에 위치한 외로운 섬 하나 같은 행성"인 지구의 문화에 심취한 일은  이렇듯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지 않나 싶네요.

 물론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의  스토리는  미국  제7  함대  제독부터  병사들까지   태평양  한복판의  이름마저  낮선  작은  섬   원주민들에게  단체로  동화된다는  거나  다름이  없지만요.

그래서 이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를 가장 마지막에 소개한 겁니다.

문화력,  즉  소프트파워의  힘이  엄청나다는  걸  얘기하려고요.





어쩌면  이  작품이  기획된  1980년대  초  시점에서  초거대   군사대국이던  소련의  국민들을  자유자본주의  국가의  문화  컨텐츠로  매료시켜  이  작품  제작진의   나라였던  일본이  불타는  일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품었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런데  이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의  TV  방송분   후기에서  어쩌면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캐릭터가  '빌런  등극'을  합니다.


 지구  문명을  "우리  젠트라디인들의  정신을  오염시키는  해로운  것!"으로  규정하고  지구  인류와  더불어   말살하려다가  박살난  보돌  저  사령관(아래)만큼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사이코  같기도  하고

또  "익숙하기도  한"  캄진(위)이  그  캐릭터입니다.


일개  장교인  캄진의  몸은  정직해서(...),  아니  보돌  저  사령관과는  달리  아주  젊어서  지구의  문화에  익숙해진  상태입니다.

서부 영화를  즐겨보더니  지구군에게서  노획한  초거대  로봇형  자주포에  올라타고선  카우보이  코스프레를  하고, 야쿠자 영화라도 봤는지 자신을 '두목님'이라 부르게 하고, 예전에는  젠트라디의  군법에  따라  얼굴  볼  일도   없었고  말  섞을  일도  없었던  여군  상관과  연애까지  합니다.








캄진과 여군 상관이 꿈도 희망도 없기에 했던 자-살 공격 장면에서 영화 <사의 찬미>(1991)가 떠올랐는데, 그 영화 주인공들이기도 한 실제 인물들인 윤심덕과 김우진도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일본의 '연인끼리 동반자-살' 문화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까....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김대중 정부가 일본 문화 개방을 선언하기 전에도 일본 문화 컨텐츠는 알음알음 국내에 유통됐죠. 이 당시에는 서울의 청계천에 일본 애니메이션 불법 복제 비디오 테이프를 파는 곳도 많았데고요.

저도 그런 비디오 테이프로 <기동전사 건담>(0080 주머니 속의 전쟁)을 처음 접했었고 말이죠.

덕분에 입으로는 반일/혐일을 외치면서도 볼펜과 샤프 등 학용품, 전기밥솥과 워크맨 등 전자제품, 양말과 속옷 등 옷가지, 심지어 음식까지 일제를 사랑하는, 캄진 같은 사람들이 참 많았죠.

"일본은 싫지만, 일본의 OO는 좋단 말이야. 우리도 이런 건 본받아야 해"라고 후배들한테 떠들면서요.


그런 캄진 같은 사람들이 금뺏지까지 달고서 예전과 같은 주장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도 보이고 말이죠.

하긴 지금은 북한 내에서   퍼지는 한국 문화를 탄압하는 김정은(도요타의 고객)의 할애비(김일성)도 일본 야쿠자 영화에 푹 빠져 살았데고, 애비(김정일)는 일본 요리를 너무 좋아해서 일본인 요리사까지 고용했을 정도였으니,

소프트파워의 힘은 어쩌면 하드파워보다 센가 보구나 싶어요.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72971521












그런데 1990년대 중후반의 '고난의 행군'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북한의 상황을 보면서

빨치산이었다가 백선엽 장군 부대에 귀순했던 이태라는 양반의 수기 <남부군>이 생각납니다.


"굶주리고 지쳤을 때에는 옆에 여자(빨치산 동료)가 누워 있어도 성욕이 일지 않았다"는 말 말이죠.

어쩌면 <20세기에서 본 21세기>를 작성한 뒤 만들었던, 아래의 <마크로스 2> 패러디에서처럼

대북 방송용 스크린으로 케이팝 아이돌들을 보여줄 게 아니라 먹방 유튜브를 보여줘야 하는 걸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문화라는 게 발전하려면 일단 배부터 채워지고, 주머니에 돈도 좀 있어야 하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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