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취향

by 김여생

드디어 수업 날이다.
아침부터 들뜬 마음으로 룰루랄라 준비를 마친다.
걸어가면 40분 정도가 걸리는데 가는 길에 산책로와 숲길이 있어 딴짓을 많이 하므로 넉넉히 시간을 잡고 출발한다.
날이 쌀쌀해져 기모가 들어간 맨투맨을 꺼내 입었다.
하지만 거의 1시간가량을 걸으려면 음료는 차디찬 것이 필요하다.
커피를 줄이고 있지만 이 좋은 날 산책하며 즐거운 수업을 가는데 아이스커피가 빠질 수 없다.
좋아하는 카페를 가서 커피를 포장해서 나온다.
로스팅을 직접 하고 있어 그때그때마다 조금씩 블렌딩이 달라지지만 항상 평균을 웃도는 맛과 향을 가지고 있어 좋아하는 집이다.
한 손에는 커피가 귀에는 좋아하는 노래가 흐르고 울긋불긋한 하지만 아직 초록빛도 감도는 나무들이 가득한 이 산책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림을 그리며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관찰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뭇잎의 생김새, 나무의 모양 그리고 형형색색의 색상들.
특히 가을은 물들어가는 나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자연의 위대함과 고마움이 느껴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걸어가면서 하늘과 나무와 잔디를 구경하며 걸으니 1시간도 빠듯하다.
(다음에는 그냥 한 시간 반 전에 나올까 생각해 본다.)
오면서 커피를 마셔서 집중력도 회복되었고 모두와 한 번씩 인사를 나누고 어김없이 서로 칭찬 타임도 갖는다.
열과 성의를 다한 그림에 흡족하지만 동시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 두근두근해진다.
어제 완성하고 정말 마음에 들어서
'이거야 이거!' 하며 혼자 만족했더랬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다른 그림에 칭찬이 쏟아졌다.
1장에서 2장 정도를 전시하는 거지만 혹시 몰라 10장을 그려갔다.
(왠지 어깨가 아프더라니 많이 그려서였던 것 같다.)
이렇게도 그려보고 저렇게도 시도해 봤다.
그렇게 마지막에 완성한 것이 제일 마음에 쏙 들었는데.. 누구에게도 이렇다 할 얘기를 듣지 못했다.
모두 다른 하나의 그림을 칭찬해서 결국 그 그림이 나의 첫 전시 그림이 되었다.
선생님은 풍부한 어휘를 사용하며 칭찬해 주셨는데 뭔가 마음 한구석이 아쉬웠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들고 선생님께 직접 물어봤다.
'선생님. 전 이걸 전시하고 싶은데 어떨까요?'
'이건 많이 연해서 꽃의 생동감이 떨어져요. 아까 그 그림 아주 좋던데요.'
'그런가요.'
'그 그림 가져와봐요. 은색 테두리를 하면 더 멋질 것 같아요.'
하시더니 내가 은색 물감이 없다고 하자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 빌려 반짝이는 은테두리 그리는 법까지 가르쳐 주셨다.
반짝이는 은색의 테두리까지 그려주니 한층 깊이 있는 그림이 되었다.
'꽃이 예쁘게 살아났네.'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액자로 만들기 위해 그림을 맡겼다.

(나의 취향은 수채화같이 연한 꽃이 좋은데 민화는 조금더 생동적인 색감을 사용하므로 주제와 맞지 않아 뜻을 굽혔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집에 와서 나가지 못한 그림들을 하나씩 쓰다듬는다.
'다시 봐도 정말 예쁘고 너희는 나의 여린 한 떨기 꽃이야.'
나의 꽃 취향은 대중의 취향과 다른가 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이미 끝난 일이다.
그래도 하루에 몇 시간씩 연습한 덕분에 뭐가 뭔지 분간도 가지 않았던 시절에서 빠르게 탈출한 것 같다.
그래도 정말 운이 좋지.
1년에 한번 있는 전시회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게.
부족한 실력으로 액자까지 만들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한다.
아직 갈 길이 구만리다.
이제 다시 차근차근 나의 생활에 그림을 더한 삶으로 돌아가야겠다.

'그래. 아직 초보니까!'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8화집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