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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by 김여생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주민센터 복도에 작품을 전시하는 거다.
그림도 민화만 있는 것이 아니라서 산수화나 서예 등 여러 종목이 나온다.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또 해보고 싶잖아.
나보다 잘하는 분들이 더더 많겠지만 그래도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내고 싶다.
그래서 매일 몇 시간씩 붓을 불태우고 있다.
그러면서 실력도 조금씩 늘어감에 행복하다.
한번 집중하면 서너 시간은 후딱이라 시작 전 밥을 든든히 먹고 하면 좋겠지만 밥을 먹으면 집중력이 흐트러져 공복을 유지한다.
끝나고 나면 아아 배고파. 하며 허겁지겁 먹는다.
안되겠다 싶어 주전부리들과 음료들과 준비해 놓고 중간중간 먹으려 했지만 오늘도 실패다.
내일모레 내야 하니 이렇게도 시도해 보고 저렇게도 시도해 본다.
'힘든데 좋아.'
쌀쌀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하니 가을가을한 여성이 된 기분이다.
오늘은 유독 날이 추워지고 방바닥도 싸늘해 보일러를 켰다.
기온이 내려가니 고양이도 베란다에 오고 가는 횟수가 줄었다.
그림을 그리고 말려놓으려 바닥에 내려놓으면 고양이는 귀신같이 달려와 그 위에 살포시 앉아버린다.
'아, 아직 안 말랐는데.'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지만 고양이는 나를 보며 눈을 한번 꿈벅하고는 그 위에서 한참을 내려오지 않았다.
미처 마르지 못한 물감이 살짝 묻어 방바닥에 옅은 초록색의 고양이 발바닥이 새겨졌다.
'지워야 하는데 귀여워서 남겨두고 싶다.'
흐린 하늘과 쌀쌀한 바람과 그걸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는, 그리고 그림 위에 앉아있는 고양이와 함께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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