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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by 김여생

선선한 가을에서 완연한 가을로, 이제 겨울 준비를 알리는 비가 온다.
아침부터 세찬 비바람을 바라보니 이제 가을의 끝이 다가옴을 느낀다.
그래도 울긋불긋 물들어가고 떨어져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을 많이 보고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한 날들이었다.
가을을 잘 즐겼나 생각하면 아쉬운 점이 하나둘 있긴 하지만 올해는 대체로 만족스럽다.
가을 하늘과 밤하늘을,
앉아서 색이 변하는 나무들도 많이 바라보았다.
선선한 바람아래 그동안 밀린 책들도 읽어내었고 그림도 끊임없이 그려내었다.
이렇게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한 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올해는 나를 채우고 있다.

어느날 문득 나는 좋아하는 게 뭘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쉬울 줄 알았는데 정말 하나도 정확히 쓸 수 있는 것이 없 당황했다.
여행을 좋아한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스트레스로 인해 요양 같은 휴양지만을 찾아다녔다.
(한국말이 들리지 않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았던 것 같다.)
지금은 집순이가 되어 집에서 고양이랑 뒹굴뒹굴하는데도 행복한 걸 보면 나는 여행을 많이 좋아하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심지어 좋아하는 색도 몰랐다.
좋아한다고 하는 것들은 나에게 잘 어울리니까 혹은 무난하니까라는 이유가 붙은 것들뿐이었다.
이유 없이 그냥 마음이 끌려서 좋은 것들이 없었던 삶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알고 싶어서,
나의 취향을 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게 올해 봄이었는데.
이제 겨울이 다가온다.
나는 빨간색을 좋아하고 하늘 구경을 좋아한다.
그림 그리는 게 참으로 좋고 숟가락을 들 힘이 있을 때까지는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다.
물건을 점점 줄여 4계절 옷을 캐리어 하나로 만들어보고 싶고 도전 중이기도 하다.
생각 외로 운동은 격한 걸 좋아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
그림 그릴 때는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하지만 글을 쓸 때는 음악을 듣지 못한다.
핸드폰 없는 삶을 살아보고 싶어 이것저것 해지 중에 있다.
(없애면 친구들에게 또 엄청 혼이 날 것이다. 8년 전쯤 폴더폰으로 한번 바꿨다가 뭐라뭐라 많이 들은 적이 있다.)
가을비를 감상하며 올해를 주욱 돌아본다.
멀리서 보면 별거 없이 잔잔한 강물처럼 보이는데 가까이 가보면 그 안에서 물살이 빠른 곳도 느린 곳도 군데군데 있었다.
그래서 결론은?
행복하다 이거예요.
그저 매일 웃음이 난다 이거예요.
하루하루가 정말 감사하다.
올해 겨울도 알차게 보내려면 지금부터 미리미리 목록을 작성해 놓아야겠다.
마이클부블레 노래를 틀어놓고 군고구마도 잔뜩 만들어놓고 붕어빵과 호떡을 사다가 냠냠해야지.
키야 생각만 해도 엄청 좋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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