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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

by 김여생

(스포가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날이면 생각나는 프로그램이 있다.
'지붕 뚫고 하이킥.'
결말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어린 나의 마음을 와장창 헤집어놓은 작품이라 마음속에 오래 남아있다.
그는 왜 마지막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을까.
그건 과연 어떤 감정들이 담긴 눈물이었을까.
아침엔 보일러를 틀고 낮엔 반팔을 입고 저녁엔 두꺼운 이불 속으로 숭덩하는 날이 지속되니 마음도 선선해지며 감성적이게 된다.
내 기억으로는 그때 결말이 방영되고 나서 시청자 게시판이 난리가 났던 기억이 있다.
다음날 다들 삼삼오오 모여 애고 어른이고 하이킥 얘기만 하던 시절이었다.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어서,
'감독님 잠깐 나와보셔요 얘기 좀 해보셔요!'
하고 싶었고 감독의 세경이 진실한 사랑이었다는 인터뷰는 내 마음을 더욱 어지럽게 만들었다.
초등학생이 사용하기엔 격하다는 이유로 '빵꾸똥꾸'는 뉴스에 나오기도 하고,
풍파고 교감의 '아주 굿이에요 굿굿굿!'이나
황정음의 '띠드버거 주세요.'는 그야말로 엄청난 인기를 몰고 유행이 될 정도로 사람들은 이 시트콤에 진심이었다.
살짝 뿌연 화면에 몇 마디의 대사를 하다가 흑백 화면으로 바뀌며 그대로 끝나버리는 마지막 장면은 진심이었던 만큼 크나큰 당혹감으로 다가왔고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이 감정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았던 만큼 사람들은 자꾸 말을 만들어 내었고 세경 귀신설도 돌았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지나고 흘러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과 추억이라 웃을 수 있는 것들이 생기고 나니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시트콤 같지 않다던, 그렇기에 하이킥의 마지막은 모두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감독.
주인공인 세경이에겐 그 결말이 해피엔딩이라던 최다니엘의 말을 생각하며.
즐겁게만 시청했던 하이킥을 조금은 묵직한 마음을 가지고 시청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재미난 에피소드가 많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어른이 되어버린 시선으로 바라보니 그저 웃기고 재밌기만 한 프로그램은 아니다.
중간중간 현실을 보여주는데 밝은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보니 모르고 지나간 것이 보인다.
'가을 타나 봐 정말.'
안쓰러운 장면들에 눈물 한 바가지를 흘린다.
몇 주에 걸쳐 보다가 오늘로 마무리를 했다.
십여 년이 지나고 보아도 마음은 헛헛해진다.
즐거운 시트콤으로 마무리해주면 어땠을까.
진실의 사랑이었으면 모든 갈등을 이겨내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었으면 어땠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이렇게 마음 아픈 결말이니 내 마음속에 이렇게 콕 박혀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현실의 세경이들은 진정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아니 근데 그럴 거면 추억이라도 많이 만들어주지! 으헝헝헝.'
나의 베갯잇은 오늘도 수분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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