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운만큼 사람들이 계속 밀려 들어왔다.
외국사람들에게 한국식 라면은 맵지만 이렇게 춥고 비가 오는 날엔 맵고 뜨거운 것을 먹으며 땀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한국인들이 전파하지 않았을까 여자는 생각한다.)
매운 것이 힘든 사람들은 떡국을 먹는데 만두가 들어있는 만두 떡국은 꽤 별미로 인기가 좋다.
처음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국에서 한국음식을 먹고 있는 외국 사람들을 보는 게 꽤나 신기했지만 이제는 익숙해 졌다.
하지만 아직도 North인지 South인지 물어보는 사람들은 있다.
그럼 가끔씩 장난으로 North인데 아는 척 하지 말라고 하면 흠칫 놀라는 사람들의 표정을 사진으로 찍어두고 싶은 여자다.
바쁜 날들이지만 머리가 복잡할때는 아무 생각 없이 일할 수 있는 게 좋다.
아마 내년 4월까지는 계속 바쁠 것이다.
중간중간 담배가 생각났지만 바쁠 때 담배타임은 사치이기도 하거니와 주인의 눈치가 매서워 나갈 수 없다.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다가 그 땀이 식어 땀자국이 남을 때 즈음 일이 끝난다.
여자는 여섯시에 끝난다.
일이 끝나면 음식 한그릇을 공짜로 주기에 저녁을 먹고 집으로 갈 수 있어 편하다.
예전에는 일이 끝나면 국물하나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었지만 요즘 여자는 입맛이 없다.
절반도 먹지 못한 채 일어서면 일하는 다른 사람들이 한마디씩 물어본다.
'어디 아파?'
'아뇨. 요즘 입맛이 없네요.'
여자는 애써 웃으며 대답한다.
'요즘 계속 남기잖아. 다들 걱정해.'
같은 식당에서 일하는 남자가 여자에게 말한다.
이 남자는 여자에게 관심이 있어 어떻게든 말을 걸고 알아가보려 하지만 여자는 항상 웃지만 남자에게 조금의 틈도 주지 않는다.
'걱정 감사해요.'
하며 일어나는 여자다.
'한국 돌아가거나 그런거는 아니지? 힘들면 말해.'
'네 안돌아가요. 걱정마세요.'
남자는 잠시 걱정했지만 여자의 대답을 듣고 내심 안도한다.
여자는 지금 남녀관계를 생각할 정도로 여유 있는 상태가 아니다.
이제 외국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에 돌아간다 하더라도 혈혈단신인 신세가 되었다.
항상 마음 속엔 외로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소속되어 있다는 그 알량한 소속감으로 어떻게든 마음을 붙잡고 있었다.
이젠 그것마저 없어져 버렸다.
어디가 끝인지 모를 곳에서 올라오는 이 외로움을 여자는 견디기가 어려워 담배에 의존하고 있다.
희뿌연 안개 속에서 손을 내젓고 있는데 그 무엇하나 보이지 않고 손에 걸리지 않는 기분을 실시간으로 계속 느끼고 있다.
여자는 음식점에서 나오자마자 담배를 물었다.
지하철까지 걸어가며 담배를 손에 놓지 않는다.
'날씨라도 따뜻했으면.'
여자는 생각한다.
날씨가 따뜻했으면 이 외로움이 덜 차갑지 않았을까 하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지만 이 서늘함은 없어지지 않는다.
외국은 한국과 달리 온돌이 없으므로 라디에이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제일 높게 올려놓아도 공기만 따뜻해질 뿐, 한국 온돌의 그 뜨거움은 맛볼 수 없다.
라디에이터를 제일 높게 올리고 전기매트도 최고로 올려본다.
그리고는 이불 안으로 깊숙히 들어가 몸을 동그랗게 말아 버린다.
아무 생각없이 잠에 들고 싶지만 그 날 이후로 여자는 잠을 거의 못자고 있다.
잠시 잠에 들었다가도 땀을 뻘뻘 흘리며 깨거나 발작을 하며 깨는 것을 반복하여 깊은 잠을 포기한 상태다.
얼마 있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알람시계가 울린다.
여자는 물에 축축히 젖은 고무같은 팔다리를 힘겹게 움직여 본다.
침대에 걸터 앉아 손으로 머리카락을 붙잡고 뒤로 쓸어넘긴다.
'하 지겨워.'
모든 것이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이 짓거리를 언제까지 해야할까.
다 때려치우고 동굴에 들어가 웅크려 있고 싶다.
이미 알맹이는 찢어갈겨져 황망한 사막에 뿌려졌는데 이 겉 껍데기만이라도 지켜보고 싶다.
휴가를 받아야겠다 생각하며 일어나는데 잠시 휘청한다.
여자는 다시 침대에 앉아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정신을 붙잡고 오늘도 길을 나선다.
하늘은 어제였는지 오늘인지 내일인지 가늠할 수 없게 매일 흐린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