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진 않았지만 눈을 감고 있었더니 어느새 살짝 선잠이 들었다.
아침은 빠르게 다가왔고 알람이 울리자 여자는 그저 습관처럼 출근준비를 한다.
머리를 빗고 옷을 입으며 창밖을 바라본다.
회색의 구름이 하늘을 가득 가리는 것도 모자라 땅까지 내려 앉았다.
아침 7시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오후 4시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비는 쏟아지지 않지만 금방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다.
여자는 창문을 열고 온몸으로 날씨를 맞이해본다.
한국과는 다른 뼛속까지 스며드는 생소한 찬 기운이 몸 구석구석을 타고 들어온다.
11월 내내 계속 이런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파란 하늘이 잠시 그리웠지만 티 없이 맑은 하늘을 보면 더 우울했겠노라 생각한다.
흐릿한 하늘은 혼란스러운 마음과 맞물려 잘 어울린다 생각하며 준비를 마쳤다.
여자는 매일 같은 시각 7시 30분에 집에서 출발한다.
버스를 탔다가 지하철을 타고 가야한다.
거리가 꽤 멀지만 월세를 아끼기 위해서다.
이것만 보면 서울살이와 그리 다르지도 않은 모양새다.
그럼에도 이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나라에서 지내는 이유는,
한국에 있으면 모든 것들을 내 눈으로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망쳤다.
모든 것을 두고 잠시만이라도 해방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모든 것을 되돌아보면 도망치는 것은 그저 임시방편이었고 언젠가는 마주해야할 문제였다.
시간을 두고 떨어져있으면 상처가 조금은 아물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상처를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니 그곳이 곪고 있는지 그 때는 알 수 없었다.
버스를 타고 바깥을 바라보며 혼란한 마음을 정리해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 때 전화가 울린다.
여자는 바로 종료버튼을 누르고 비행기모드로 전환시킨다.
그 후 번호와 카카오톡 모두 차단해 버린다.
가족이라서, 가족이기 때문에 계속 모든 것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어떤 무례와 상처와 그 무엇을 해도 묵묵히 견뎌내었다.
하지만 여자는 드디어 용기를 내어 결심을 했다.
결심을 한 동시에 한쪽 마음을 무너져내리고 있었지만 현실은 시간을 주지 않는다.
당장 일을 하지 않으면 비자가 없어지고 비자가 없어지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자는 현실을 알기에 고개를 가로 저으며 정신을 차리기로 한다.
생소한 언어를 들으며 지하철을 갈아타고 출근지에 도착했다.
시내에 있는 한국음식을 파는 음식점이다.
그 나라 언어를 할 수 없는 외국인에게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가 않다.
한국식 김밥과 라면, 떡국을 팔지만 가격은 뭇 음식점과 다를 바가 없이 비싸다.
그럼에도 단골 고객들이 많아 음식점은 항상 문정성시다.
특히 이렇게 날이 쌀쌀하고 뼛속 추위가 찾아오면 어김없이 방문객이 늘어 일하는 사람은 가만히 서 있지도 못할만큼 종종걸음으로 분주하게 돌아다녀야 한다.
여자는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가 손을 멈췄다.
담배가 시급했다.
목에 무슨 알맹이 같은 것이 계속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음식점을 돌면 옆 건물과 사이에 아주 작은 골목길이 있어 들어가 혼자 조용히 담배를 한 모금 한다.
안에 들어가면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어야 한다.
표정관리를 잘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담배를 하나만 피려고 했으나 하나, 두개 세개피가 나란히 발 앞에 떨어졌다.
이 알맹이가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않고 계속 머물러 있는게 답답해서 계속 물고 있다가 이러다가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 4개피에 멈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여기는 담배에 관대해 냄새가 나도 신경쓰지 않는다.
유모차를 끌며 피우기도 하고 걸어다니며 마음껏 피운다.
마지막 담배를 발로 끄고 있는데 한방울씩 비가 내린다.
여자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마에 큰 빗방울을 맞았다.
빗방울이 코 옆을 타고 턱으로 내려가 톡 하고 떨어진다.
그제야 하늘 보던 것을 멈추고 발을 떼어 음식점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여자는 웃으며 인사를 하며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