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너머로 소리들이 들려왔지만 여자는 듣지 않는다.
그저 앞에 있는 창문으로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다 문득 전화를 끊지 않았음을 깨닫고 종료버튼을 누른다.
그러고는 입을 벌리고 싶지도 않은지 코로 한숨을 쉰다.
여자는 바닥에 멍하게 앉아있는다.
옆에 있는 핸드폰이 계속 울리자 귀찮다는듯이 전원을 종료시킨다.
시간을 보니 새벽 3시, 한국은 오전 10시일 것이다.
표정은 변화가 없었지만 무언가 답답함이 느껴졌는지 담배를 집어들고는 밖으로 나간다.
깜깜한 계단을 내려가 집 앞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어 입에 문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밤이다.
불을 붙이고 있는 힘껏 가슴 속 깊이 빨아들인다.
그러고는 후-하고 내뱉는다.
처음으로 입을 열어 소리를 낸 순간이다.
입을 열기가 싫은지 이따금씩 코로 한숨을 쉬다가 필요해지면 그때야 입을 열고 담배를 몸 속 가득히 넣어버린다.
까만 어둠아래 하얀 연기만이 두둥실 떠다닌다.
그걸 바라보다 뜨거운 담뱃불이 손가락에 닿아 꽁초를 놓쳐버린다.
'네가 우리 가족 불화의 원인이야.'
여자의 머리속엔 아까 전화 속 말이 계속 맴돌고 있다.
떨어진 꽁초를 다시 주우려다 이내 발로 지져서 불씨를 꺼트린 후 집으로 돌아왔다.
벌써 두번째 같은 말이다.
처음 들었을 때, 여자는 밤새 눈물을 흘렸다.
서러움인지 억울함인지 모를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또 흘렸다.
그리고 두번째인 오늘, 여자는 울지 않는다.
그저 모든 게 귀찮아졌을 뿐이다.
밖은 밤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새벽이 오기 전 제일 어두운 밤이 오고 있다.
'역시 도망 끝엔 낙원은 없는 건가.'
여자는 전화를 끊고 처음으로 입을 열어 혼잣말을 한다.
그러고는 무언가 결심한 듯이 방의 불을 끄고 더욱 새까매진 밤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여자는 어둠을 보며 누군가에게 말하는지 모를 말을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헤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