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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by 김여생

나의 사랑 딱딱이 복숭아를 먹다가 혀를 깨물었다.

'윽.'

고양이가 앞에 있어 놀랠까 봐 큰소리도 못 내고 작은 신음과 함께 눈물이 핑 돈다.

눈물이 아른거려 복숭아가 말랭이처럼 보인다.

'너무 아파. 뭣이 급해서 혀까지 씹어 먹는데.'

화장실에서 확인해 보니 보라색으로 멍이 들었다.

나의 이빨, 대단하네.

혀를 씹었지만, 눈물이 나지만 복숭아는 계속 먹는다.

1년 동안 기다려온 딱딱이 복숭아는 매일 먹어도 아쉽기에.

이 습식 사우나 같은 더운 날이 기다려지는 건 시원하고 달큼하지만 아삭한 복숭아를 먹기 위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좋다.

신선의 열매라고 불렸던 이 과일은 무릉도원과 불로불사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삼국지에서는 유비, 관우, 장비가 복숭아나무 밑에서 의형제를 맺기도 했고,

손오공은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먹고 불사신이 되기도 한다.

복숭아나무를 지나면 무릉도원이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신이지만 귀신을 쫓는다 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않는다.

(제사상을 차리고 조상님을 쫓아낼 순 없으니까.)

얽힌 이야기도 많고 보기도 좋고 맛있기까지 하니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자냐.

과일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복숭아만 먹을 수 있다면 1년 내내 괜찮을 것 같다.

(솔직히 소중한 복숭아가 질릴까 봐 걱정된다. 지금도 하루에 2개만 먹는 중이다.)

딱복을 제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물복숭아를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다.

눈앞에 물복만 있다면 감사히 맛있게 잘 먹는다.

부드러울 뿐 복숭아는 복숭아니까.

보통 아침은 액체류만 섭취했는데 요즘은 매일아침 복숭아 하나를 씻어서 먹는 것이 나의 자그마한 행복 루틴이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라는 김민식 PD님의 말처럼 나는 빈도를 높이는데 노력한다.

예전에는 굵직굵직한 임팩트 있는 행복을 바라고 원했다.

큰 것이 와야만 행복하고 감사했는데, 큰 것은 아주 간헐적으로 오더라.

언제 올지 모르는 크나큰 행복을 계속 기다리기만 하며 일상의 행복을 놓치는 것은 참 아쉬운 일이다.

지금은 숨 쉴 수 있음에도 감사하고 자잘하게 아픈 편이지만 크게 아프지 않음에 감사한다.

혀가 아릿아릿하지만 나의 이빨이 건강함에 감사하다.

(치과치료를 안 받는 것만큼 감사한 게 또 있을까.)



'고맙다 복숭아야. 내 이빨이 아주 튼튼함을 깨달았어!'

저녁에 먹을 복숭아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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