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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

by 김여생

오늘도 어김없이 밖으로 나왔다.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을 때 머리가 복잡하면 손이 멈춰버린다.

이럴 땐 잠시 숨도 고를 겸 새로운 장소로 나가야 한다.

음료수도 덤으로 한잔해-!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지만 나온 김에 잠시 걷고 싶어 일직선으로 갈 수 있는 짧은 거리를 일부러 빙 돌아서 가 본다.

역시 오후엔 마의 5분.

5분만 지나면 너무 더워진다.

이제 돌아가려 횡단보도를 기다리는데 반대편에 만삭의 임산부가 거리에 서있다.

더위에 얼굴이 벌겋게 되어서 손으로 배를 받치고 그늘에 서 있다.

'나도 이렇게 더운데 얼마나 더울까.'

'양산도 없네 이런.'

횡단보도를 건너면 여긴 완전 햇빛밖에 없는데 내가 가진 양산을 빌려줘야겠다 생각했다.

(카페가 바로 앞이기도 했고, 카페에서 집까지 걸어서 3분이라 나는 괜찮을 것 같았다.)

파란불로 바뀌고 건너려는데 승용차 한 대가 다가오더니 임산부 앞에 선다.

정말 다행이게도 데리러 온 사람인 것 같다.

'정말 다행이다아-' 하며 마음을 쓸어내리며 난 카페 들어왔다.

임신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주변 친구들의 임신과 출산을 바라보며 정말 위대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마음으로 낳은 나의 고양이도 이리 소중하고 매일 예뻐서 어쩔줄을 몰라 하는데 10달을 뱃속에 직접 품어 낳은 아이는 어떤 느낌이 들까 생각도 해보곤 한다.


예전에 직장동료와 임산부석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무조건 비워두어야 할 것인가,

유연하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서.

나는 유연하게 대처하자는 주의였는데 주변에 임산부가 없다면 잠시 앉아도 되지만 핸드폰을 보거나 자면 안 되고 임산부가 오면 바로 비워주면 되지 않을까요 의견을 냈다.

그랬더니 내 말을 듣고 직장동료는 극대노를 했다.

그런 사람이 없으니까 비워놓아야 한다고.

요즘 양심을 물에 말아먹은 사람이 많다고, 얼굴까지 벌게지며 열을 올렸다.

거기에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했는데 나도 저혈당으로 힘들어서 잠시 임산부석에 앉아있다가 임산부가 와서 바로 비켜준 적이 있었는데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하셔서 민망했던 적이 있다.

잘 안 비켜준다고.. 그 말을 듣고 조금 슬펐던 기억이 있다.

우리 모두 어머니의 뱃속에 10달을 있다가 나와 성인이 되었는데 왜 다른 어머니들에게 조금의 배려가 어려울까 깊이 생각했다.

결론은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마음속에 사랑보다 힘듦이 가득 차서 사랑의 눈으로 타인을 보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고.

그렇게 결론을 내린 뒤로는 난 더더욱 오지랖퍼가 되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유 없이 짜증을 내거나 예민하게 굴어도 그 사람의 안위를 걱정해 주었다.

저 사람이 화를 내는 건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고.

(이유 없는 짜증은 항상 원인이 있다.)

나도 부족함이 많아 아직도 사랑을 배우고 있다.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면 이 세상은 흑백티비가 되지 않을까.

이렇게 다채로운 색상의 삶을 사는 것은 다 각각의 사랑이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나는 매일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


이 세상의 모든 임산부 분들 응원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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