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저혈당

by 김여생

나는 저혈당이 자주 온다.

당뇨가 있는 것도 아닌데 기본 혈당이 낮다.

(보통 70 이하면 저혈당인데 난 아침 공복 혈당이 보통 72-74 정도로 아슬아슬하다.)

아침에 어질어질한 경우가 많은데 잠을 못 자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저혈당 쇼크를 겪기도 한다.

중학생 때부터 겪어 하루 이틀이 아니기 때문에 이제는 적응했다.

그래서 밥은 항상 흰쌀밥을 먹고 외출할 땐 포도당 캔디와 이온음료를 챙긴다.

(우리나라에 편의점이 많은 게 정말 감사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오늘 아침, 씻고 나왔는데 뭔가 느낌이 싸하다.

살짝 눈앞이 아릿하고 붕 뜨는 느낌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게 경미한 저혈당 상태다.

'아놔, 오늘은 안돼!'

오늘 동물 병원 예약을 놓치면 얼마나 기다려야 다시 예약할 수 있을지 모른다.

우선 포도당 캔디와 이온음료를 마셔본다.

나아지듯싶다가 안된다.

모자라는군. 포도당 이노옴!

이럴 땐 억지로 혈당 스파이크라도 일으켜서 높여야 한다.

내 경험상 이 상태로 나가면 분명 동물 병원 도착하기 전 내가 먼저 저혈당 쇼크로 벤치에 누워있는 신세가 될 것이 뻔하다.

10시에 나가야 하는데 지금 9시 반이다.

집중이 안 되고 정신이 없어 눈을 감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빠르게 혈당을 올려야 한다.

제일 최선은 무엇인가.

바닐라 라테? 시럽 추가하고 오트밀크로 바꿔서 마시면 혈당 스파이크를 일으킬 수 있다.

(일반우유보다 잡곡인 귀리로 만든 오트밀크가 더 혈당 스파이크를 일으킨다고 한다.)

하지만 7.4킬로 고양이를 들고 이 찜통더위에 10분 정도 걸어갔다 와야 하는데 기운이 안 날 것 같아. 탈락!

밥을 하기엔 시간이 촉박하고 시리얼에 우유?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남아있는 시리얼 양이 부족하다.

어제저녁을 너무 일찍 먹었다.

배가 고프면 중간에 다시 또 저혈당이 올 수 있다.

고민을 하다가 무릎을 탁 친다.

'나에겐 라면이 있잖아!'

혈당 스파이크 최고봉을 잊고 있었다.

바로 물을 올리고 먹으면 바로 갈 수 있게 준비를 다 끝마친다.

고양이는 초음파 때문에 8시간 공복해 예민한데, 냄새를 풍기는 라면을 끓이는 게 정말 미안해서 연신 사과를 했다.

(새벽 5시부터 배고프다고 울어서 계속 달래고 재우다가 놀아주고를 반복했다.)

'배고플 텐데 정말 미안해. 근데 널 안고 병원 가려면 내가 기운이 있어야 해. 지금 이 상태로는 출발을 못하겠어. 정말 빠르게 먹을게 다시 한번 미안해.'

아이는 으으응 거리더니 이불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나는 마음이 급해 거의 익었다 싶을 때 바로 끄고 5분 만에 식사를 끝냈다.

(빠르게 먹으면 먹을수록 혈당 스파이크도 빠르게 온다. 일반 사람들은 이렇게 먹으면 정말 살이 쉽게 찌고 몸에 좋지 않으니 조심해야 한다.)

5분 만에 식사를 한건 사회 초년생 시절 눈치 볼 때나 하던 식사법이었는데, 아직 실력이 죽지 않았다.

다 먹자마자 아이를 가방에 넣고 출발해 본다.

밖에 나왔는데 확실히 라면은 혈당이 정말 빠르게 오른다.

눈이 개안한 것같이 잘 보이고 배가 든든하니 어지럽지 않다.

동물 병원까지 10분도 안되어 금방 도착해 버렸다.

(택시를 타고 싶지만 워낙 가까운 거리라 부르기도 민망하고 잡히지도 않는다. 거기다 고양이까지? 그냥 걷는 게 빠르다고 생각하는 빨리빨리 한국인이다.)

나의 고양이는 병원에서 굉장히 순한 편이라 원장님부터 직원분들까지 다 좋아한다.

배털을 밀고 초음파를 해도 내가 옆에 있으면 조용하다.

그러다가 점점 그라데이션 분노를 보여준다. 그럼 바로 중지!

(분노를 보여도 싫다고 버둥대는 수준이라 공격성이 약해 귀여워들 해주신다.)

그렇기에 다들 '어머 엄청 얌전하다.' 이러면서 초음파 할 때 은근슬쩍 발젤리와 얼굴을 만진다.

고양이 보면 다들 같은 마음인 게지. 후후.

덕분에 빠르게 엑스레이와 초음파를 끝내고 결과를 듣는데.

'지방인 것 같아요.'

원장님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네? 복부팽만이요?'

'몸 안에 염증이나 이상이 전혀 보이지가 않네요.'

초음파 사진 하나하나를 보여주며 장기에 대한 설명과 문제가 있을 때의 설명을 덧붙여주셨다.

'허. 정말요? 원장님?'

'살짝 소화불량이 있어요.'

'그 말씀은 그냥 많이 먹어서.. 인건가요?'

'나이가 있어서 소화능력이 떨어졌을 수 있어요. 빨리 먹지 못하게 조금씩 사료를 나눠서 줘보시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허허허. 웃으니 원장님도 아픈 건 아니니 다행이라며 미소 지었다.

저 복부팽만이 그냥 가스가 찬 거라니.

(고양이의 복부팽만은 굉장히 위험한 질병일 때 많이 보여 걱정이 많았다.)

고양이는 이 상황이 정말 싫어서 코가 분홍색을 넘어 빨간색이 되어가고 있다.

(긴장하거나 흥분하면 코와 발젤리 색이 진하게 변한다.)

'미안하다. 내가 똥땡이를 만들어서 불필요한 진료를 하게 했구나.'

그동안 했던 걱정이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으면서 고양이에게 진짜 미안한데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꽹과리까지 쳐가며 걱정했는데 그냥 건강한 뚱보 고양이였다.

'다행이야. 건강검진 했다고 생각하자. 고생 많았어 고양이.'

끝나자마자 긴장한 아이를 위해 간식을 먹이고 나도 한숨 돌린다.

집에 오는데 발걸음이 엄청 가벼워졌다.

7.4킬로가 깃털 같아.

혈당도 너무 정상이다. 모든 게 씻은 듯이 나았어.

그러고 보니 이제 나는 내 상태를 바로 깨닫고 해결도 빨리하네.

(예전엔 내 증상원인과 해결법을 몰라 비실비실 오래 앓았던 시절이 있다.)

나 자신도 장하고 우리 고양이도 건강하니 장하다!

아주 뿌듯하고 사랑스러운 날이다.


'역시 건강이 최고여!'

keyword
월, 수, 금 연재
이전 03화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