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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by 김여생

고양이가 기력이 없다.

맛있는 특식을 주면 눈이 동그래져 허겁지겁 먹는데 오늘은 하나를 채 먹지 못한다.

'우리 똥땡이가 왜 밥을 못 먹니.'

눈만 끔벅이며 으으응 거린다.

혹시 아픈 건가.

소변과 대변 횟수, 활력을 생각해 보면 요즘 조금 떨어지긴 했다.

'병원을 가야 하나.' 하는데 그러고 보니 털이 많이 자랐다.

고양이는 스트레스에 취약해서 다른 이에게 미용을 맡기지 않는 게 좋긴 하지만 나는 1년에 한 번 여름을 대비해 고양이 미용을 맡긴다.

더우면 정말 활력 없이 축 늘어져서 움직이지 못하는데 미용을 하고 싶진 않지만 그 모습을 보면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그냥 덥기만 한 게 아닌 습도 높은 더움은 나이가 들수록 피부병에 점점 취약해진다.

올해는 일찍부터 덥기 시작해 6월 중순에 미용을 했더니 8월 초가 되자 털이 수북수북하다.

잠시 눈을 감고 무엇이 최선일까 생각하다가 눈을 뜨니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 갔나 하고 찾으니 베란다 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다.

'더워서였고먼.'

내가 에어컨 바람을 좋아하지 않아 장마가 끝나고는 에어컨을 세게 틀지 않았다.

'미안해. 나만 생각했어.'

리모컨으로 에어컨 온도를 낮추고 세게 틀어본다.

방을 넘어 베란다까지 차가운 냉기가 돌기 시작하자 고양이가 앞발을 쭈욱 내밀며 스트레칭을 한다.

집 곳곳에 냉기가 모두 스며드니 아이는 배가 고프다며 울기 시작한다.

단숨에 사료 한 그릇과 습식 한 그릇 뚝딱이다.

7.4킬로, 우리 사랑스러운 인격을 가진 고양이가 돌아왔다.

기분이 좋아졌는지 다리에 비비고 또 얼굴에 비빈다고 얼굴 가져오라고 응응거린다.

'내 사랑, 더워서 그런 거지? 아프진 않은 거지? 건강해줘서 고마워.'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자 좋아서 내 얼굴을 난장판을 만들어놓는다.

그래도 행복해.

손으로 찰랑거리는 뱃살을 살짝 만지자 뱃살에도 털이 많이 올라왔다.

한번 해봐?

바닥에 미끄러지지 말라고 발바닥 털만 밀어주는 조그마한 미니 이발기가 있는데 머리에서 번쩍한다.

아이를 눕혀놓고 우선 뱃살을 살살살 만져본다.

'상처 나진 않겠지?'

슬쩍 밀어보는데 싫어할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가만히 있는다.

'어라?'

싫다고 하기 전에 잽싸게 배를 슥슥 밀어 본다.

기계가 웅웅웅 거리며 핑크 뱃살이 짜잔-하고 나타난다.

'어떻게 속살이 이렇게 뽀얀 핑크냐구!'

밀린 털을 걷어내고 못 참고 배방구를 해버린다.

고양이는 한계였는지 으냐앙- 하며 몸을 돌리더니 멀리도 아니고 바로 옆에 철퍼덕 누워버린다.

옆으로 누운 뱃살이 울퉁불퉁이다.

'고양이 미모를 내가 망쳐버렸네.'

처음 털을 밀어봐서 무슨 애 뱃살을 삼룡이를 만들어 놓았다.

내심 미안해서 자꾸 만져보는데 고양이는 그러든지 말든지 배가 시원해지니 놀자고 한다.

나는 바로 민 털을 한데 뭉쳐 공을 만들어 준다.

하얀 공에 검은색 잉크가 한 방울 톡 하고 떨어진 색이 되었다.

그리고 던져주니 좋아서 뒷발팡팡을 하고 혼자 숨었다가 뛰었다가 난리가 났다.

'자기 냄새 참 좋아해 후후.'

(장난감에서 자기 체취 안 나면 2주고 3주고 지켜만 보고 놀지 않는 고양이다.)

뛰어다니는 뒷모습을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며 긴장이 풀린다.

나는 이발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우리 둘 다 건강하자!

사랑한다 나의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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