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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by 김여생

새벽 3시.
고양이가 종이스크래쳐를 이빨로 뜯고 있다.
'고..양이!'
눈도 떠지지 않는데 소리가 거슬려 잠이 깨버렸다.
저 행동은 지금 무언가 불만이 있다는 소리다.
'으으음 고양이 그만해줘.'
말을 들을 리 없다.
탁탁- 지이익탁.
아주 야무지게 이빨로 종이들을 발골하고 있다.
내가 일어날 때까지 그만하지 않을 걸 알고 있어 잠 깰 겸 눈을 비벼본다.
게슴츠레 눈을 떠보니 고양이가 이빨로 뜯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다.
'왜? 어떤 불만이야?'
고양이는 입을 앙다물고 그저 지이잉 하고 바라본다.
'배고프구나.'
이젠 눈만 봐도 이유를 알 수 있다.
몸이 천근만근 같지만 우선 일으켜본다.
그래 배고프면 예민해질 수 있지.
나의 고양이는 지금 다이어트 중이다.
사랑한다는 말로 귀엽다는 말로 간식을 남발한 내 죄가 크다.
그러니 배고파서 예민해진 고양이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 낼 순 없다.
다이어트 전, 한 3일을 따라다니면서 고양이의 일과를 살펴보니 나의 고양이는 2시간에 한 번씩 밥을 꼭 먹어야 한다.
자기만의 루틴인 것 같다.
많이 줘도 자기가 딱 먹고 싶은 양만 먹고 돌아서는 아주 기특한 고양이다.
그것만 먹으면 참 좋으련만.
내가 온갖 간식의 세계를 보여줘서 이제 자꾸 두리번거리며 간식을 찾는 고양이가 되었다.
'내 죄가 크다. 미안하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줄일 수 없어 천천히 줄이고 있다 생각했는데 나보다 시간이 5배나 빠른 고양이에게는 이마저도 빠르게 느껴졌나 보다.
침대에 걸터앉으니 고양이가 쪼르르 달려온다.
내가 일어났는지 한번 확인하고는 간식통 앞에 가 조용히 앉는다.
차라리 냐옹하고 화를 내줘.
그렇게 아무 말 안 하고 등만 보여주면 더 무셔.
나는 얼른 뒤따라 가서 짜먹는 간식을 하나 뜯어 접시에 조금 덜고 물을 한강이 되게 넣어 고양이에게 준다.
'물 마이 무야 돼. 고양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그릇에 화가 날 만도 할 텐데 나의 착한 고양이는 그런 것 없이 바로 한 그릇을 비운다.
먹는 동안 사료를 다 먹었는지 그릇을 확인하러 가는데 사료가 딱 한 번 먹을 만큼 남아있다.
'귀엽기도 하지.'
중간중간 습식 간식을 주던 것을 중지하니 많이 섭섭했나 보다.
간식을 먹고는 기분이 좋은지 내 다리에 몸통을 사악 비비고 가는 고양이다.
그러고는 베란다로 나가서 바깥을 구경한다.
달빛도 없는 캄캄한 밤에 나는 홀로 남겨졌다.
이 새벽에 무얼 한담.
책이나 읽어야겠다 하고 침대에 올라가 책을 펼친다.
노오란 조명에 기대 책을 읽는데 고양이가 홀짝 침대로 올라와 자리를 잡는다.
새벽바람이 추운지 귀와 코가 아주 차가워진 상태로 돌아왔다.
'잘 구경했어? 몸이 차네.'
고양이는 몸을 동그랗게 말더니 눈을 감아버린다.
나는 읽던 책을 옆에 두고 조명을 끈다.
조금씩 새어 들어오는 공기에 서늘함이 묻어온다.

'아 이제 공기마저 가을이구나.'
자고 일어나면 가을 준비를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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