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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by 김여생 Sep 25. 2024

그림을 시작했다.

정말 배워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용기를 내 다니고 있다.

집에서 끄적끄적 하기에는 실력도 잘 안 늘고 기본기가 없으니 점점 산으로 가는 느낌이라.

초등학교 때 미술학원을 다녀본 적이 있긴 한데 아직도 생생하다.

한 달을 넘게 선만 그렸다.

가로로 세로로 대각선으로.

그것도 나름 재밌긴 했는데 난 색칠을 해보고 싶었다.

선생님은 기본인 선을 그려야 다른 것도 할 줄 아는 것이라며 강경하셨고 결국 초등학생은 흥미를 잃어버다.

나이가 들면서 다시 미술에 관심이 생겼는데 서양화도 좋지만 동양화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씩 민화 수업을 듣고 있다.

학원을 찾으니 다 멀리 있어서 집 근처를 찾다가 주민센터에서 하는 수업을 발견하고 얼른 등록했다.

다들 언니들이고 내가 막내다.

(야호! 이 나이에 내가 막내이기 쉽지 않다구.)

아무래도 나이대가 조금 높다 보니 대화주제가 범상치 않다.

암에 걸리고 항암을 어떻게 는지,

(지금도 항암치료하면서 나오시는 분도 있다.)

죽음은 무섭지 않은데 병은 무섭다던지,

요양원에 부모님을 모시고 갈 때마다 운다던지.

내 나이 또래에선 잘 나오지 않는 주제가 많이 나오는데 이러한 얘기들을 아무렇지않게 얘기하신다.

서로에게 안부를 묻듯이 정말 자연스럽게.

(처음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언니들은 대수롭지 않은듯 일상적인 얘기라 하여 많이 놀랐다.)

들으며 나도 나이가 들면 저런 주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얘기하겠구나.

매주 깨달음을 많이 얻는다.

반찬얘기도 종종 하셔서 오늘은 연근을 삶을 때 꼭 식초를 넣고 삶은 다음 조리는 게 맛있다는 야기가 나왔다.

(부연설명으로 우리 집 아저씨는 서걱거리면 한 번 먹고 안 드신다는 이야기도 덤으로 들려주신다.)

아, 그리고 어른들은 나이를 학년으로 말하는 걸 좋아하시는데,

(예를 들면 53살을 5학년 3반 이렇게.)

요즘은 학년대신 지하철 출구를 쓴단다.

5호선 3번출구.

깔깔깔 어른들은 재치가 넘친다.

나는 초보라 얘기하면서 그림 그리는 멀티는 안 귀로 듣다가 다 그리면 그때서야 이야기에 참여한다.

선생님도 정말 좋은 분이신데 예전에 배웠던 기억이 나서 선 그리기 연습을 해가니 그렇게 하면 재미가 없다면서 바로 진도를 나가버리셨다.

지금은 호랑이그림도 완성하고 꽃그림도 완성했다.

뭐 실력이야 허허허 싶지만 그래도 완성작이 늘어가니 조금 더 완성도를 높이고 싶다는 의지가 생긴다.

얇은 붓으로 선을 그리는 작업이 많아 굉장한 몰입도를 요하기도 해서 집중력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숏츠로 인한 도파민 중독과 짧아진 집중력에 효과가 아주 좋다.

오늘 선생님이 다음 달 복도에 우리가 완성한 작품을 전시할 거라는 말을 하셨다.

'허덕.'

이 실력으로 저는 창피한걸요 슨생님!

선생님은 '꾸준히 연습해서 완성작을 늘려보세요.'

한마디와 함께 사라지셨다.

허허허.


오늘부터 매일 연습이다!

(하루 루틴에 그림을 넣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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