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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Stealer Oct 27. 2024

트레비 분수

포세이돈의 바다 마차 

  뜨겁게 달궈진 스페인 계단에 앉아 사진을 찍은 후 우리는 한 줄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뒤처지지 않도록 종종걸음을 걸으며 이동한 곳은 트레비 분수였다. 너무도 유명한 일명 삼거리 분수는 옛 로마 시대 때 물을 공급하던 수로가 끝나는 곳이었다고 한다. 세 갈래 거리가 만나는 곳이라는 트레비는 고개를 돌려 그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삼거리는 볼 수 없고 온통 건물로 둘러싸여 있을 뿐이었다. 


  로마에만 이천 개가 넘는 크고 작은 분수가 있다고 하는데 이중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바로크풍 분수가 아닐까 싶다. 1629년 우르반 8세 교황의 지시로 시작된 트레비 분수는 교화의 서거로 중지되었다가 1730년 클레멘스 12세 교황의 지시로 다시 시작, 1762년 마침내 완공을 하여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다고 한다. 100년 동안의 긴 휴지기를 보낸 후, 4명의 건축가가 30년 간 정성을 쏟아부어 만든 분수라는 것만으로 전 세계가 가장 사랑하는 분수가 될 만한 이유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 한가득 차오르는 아름다움. 조각들의 생동감과 흘러내리는 분수와 그 앞을 둘러싼 에메랄드빛 물은 좀처럼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거대한 무대 같은 트레비 분수에 상징과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가 아닐까. 트레비 분수 정 중앙에 조개 모양 마차를 타고 있는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우리나라에서는 포세이돈)가 서있고, 양 옆에는 바다의 신 트리톤이 왼쪽에는 포효하는 말과 함께 바다의 역동성을, 오른쪽에는 잠잠한 바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그들은 우리를 행해 달려올 것만 같은 생동력이 느껴졌다. 오케아노스 대양의 신 양쪽으로는 각각 풍요의 여신과 건강의 여신들이 서 있는데, 여신들은 왜 거기에 있는 걸까요?


  스토리는 기원전 19년으로 흘러 올라간다. 두 여신의 조각상 위로 두 개의 부조가 있는데 왼쪽 부조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아그리파 장군이 병사들에게 수원을 찾으라고 명령을 하는 장면이다. 오른쪽 부조는 아무리 수원을 찾아도 나오지 않아 지쳐 있는 병사들에게 한 여인이 땅바닥을 가리키며 이곳을 파보라고 장면이다. 여인의 도움으로 수원을 찾았다고 한다. 하나 덧붙이자면, 스페인 광장의 바르카치아 분수와 트레비 분수에 들어오는 물이 ‘아쿠아 비르고’란 수로를 통해 공급된다고 하는데 아쿠아는 ‘물’, 비르고는 ‘처녀’를 뜻한다고 한다. 이 말의 어원인 ‘비르고’는 처녀라는 뜻으로 트레비 분수 왼편 부조에 나오는 여인을 가리킨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보니 문화 강국의 힘은 무엇 하나도 흘려서 들을 게 없는 섬세하고 탄탄한 스토리가 아닌가 싶다. 새삼 문화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는 행위는 트레비 분수를 보러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해야 하는 의식과 같은 것이 되었다. 동전을 던지는 이 행위는 어디서 시작이 되었을까 의문을 품자 해답은 1954년 상영된 미국 영화 <three coins in the fountain>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애천>이란 제목으로 나와있다. 어떤 사람들은 오드리 헵번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애천> 영화 속 마리아가 트레비 분수를 지나면서 뒤로 돌아서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듣고 마리아는 ‘최소 1년은 로마에 머물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비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도 이때부터 동전을 하나 던지면 다시 로마로 온다는 속설이 생겼다고 보는 게 유력한 거 같다. 

트레비 분수 앞 인파들

  로마가 두 번째인 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대학 시절 유럽 여행 때 나도 사람들을 따라 동전을 하나 던졌던 흐릿한 기억이 선명하게 올라왔다. 로마에 다시 와보겠다는 다짐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때 던졌던 동전의 신비가 이루어진 것일까. 이게 정말이라면 애석하게도 이번에 동전을 던지지 못했던 걸 땅을 치고 후회를 해야 하는 것일까. 동전을 던지지 못한 이유는 아이들과 함께 더위를 이겨내는 와중에 수많은 인파를 뚫고 분수 주변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멀리서 사진을 찍고 등골을 시원하게 두드리는 에어컨 바람의 유혹에 넘어가 신발 가게 앞에 서서 땀을 식혔던 것으로 트레비 분수 관람을 마무리했다. 

레몬 젤라토

  로마 첫날은 단체 투어라 개별적 행동을 못하니 젤라토를 사 먹지 못했는데 마지막 날 우리 가족은 다시 트레비 분수를 찾았고 역시 많은 인파에 멀찍이 서서 보기만 했지만 레몬 젤라토를 사 먹을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 


둘째 제안자가 말했다. 

“엄마, 분수에 저도 동전 던져 보고 싶어요.”

나 대신 첫째 조사자가 말했다.

“안 돼, 돈 아까워.”

둘째도 수긍하듯 더 조르지 않고 뭔가 궁금한 듯 다시 물었다.

“근데 아빠, 분수에 던진 동전들은 누가 가져가요?”


  나도 궁금해졌기에 검색을 해보니 로마시에서 관리를 하고 매주 한 번씩 수거를 한다는 것이다. 원래 교황청에서 카리타스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기금으로 사용해 왔는데 로마시가 동전 소유권을 가져와 재정확충을 위해 쓰려고 하자 거센 반발이 있었고 그래서 다시 카리타스가 자선기금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트레비 분수에 던져진 동전은 한해 23억 원(2023년 말 기준)으로 하루로 나눠 보면 629만 원에 육박한다는 것. 대략 한 사람이 1유로를 던진다고 할 때 하루에 사천이백 명 정도가 소원을 빌고 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50센트라면 두 배 팔천사백 명이다. 이렇게 숫자로 환산해 보는 건 둘째 제안자의 수치화 버릇 때문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소원의 신비와 낭만을 즐기고 있을 때 우리는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아쉽게도 동전을 던지지는 못했지만 로마에 다시 또 올 수 있기를 풍요와 건강의 여신께 그리고 바다의 신께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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