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빛의 광장
작렬하는 태양 아래 우리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가이드를 놓칠세라 열심히 걸었지만 11살짜리 막내의 걸음은 자꾸 뒤처져갔다. 마지막 코스인 캄피돌리오 광장과 포로로마노만 잘 따라가면 하루 일정은 무사히 끝나는 셈이다. 우리의 하마 가이드는 힘에 부치는 참가자들을 보고 두 가지 조건을 내놓았다. 캄피돌리오 광장 중앙을 뚫고 올라가며 설명을 듣느냐, 옆길로 가서 광장과 포로로마노 중간 어디쯤 자리를 잡고 앉아 설명을 들은 후 각자 원하는 대로 구경을 하느냐였다. 참가자 모두 지쳐 있던 터라 거수로 정하니 대부분 후자 쪽에 손을 들었다.
아스팔트로 된 널찍한 곡선 길을 따라 올라가니 오른쪽으로는 캄피돌리오 광장이, 왼쪽으로는 포로로마노 유적지가 펼쳐졌다. 하마 가이드는 참가자 열댓 명 모두 일렬로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안내했고 우리는 앉은 상태에서 하마 가이드의 설명을 편안히 들을 수 있었다.
하마 가이드는 오른쪽을 가리키며 캄피돌리오 광장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앉은자리에서는 캄피돌리오 광장은 볼 수 없었지만 이따가 돌아가는 길에 보라며 역사적 스토리를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배경 지식도 없이 귀로만 듣는 역사 이야기는 쇠귀에 경읽기나 다름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건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가 로마를 건국할 당시 형 로물루스에 의해 가장 높은 언덕인 ‘카피톨리노’ 언덕을 수도로 정해졌다는 사실이다. 그 이전 캄피돌리오 광장은 주피터 신전이 세워졌기에 신성한 곳이라고 한다.
이날 우리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지친 몸을 이끌고 캄피돌리오 광장을 지나 코르도나타 계단을 내려왔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려오면서 바라보이는 풍경은 피로를 잊게 했다. 다 내려온 후 우리는 잠시 계단에 앉아 눈앞에 보이는 공간을 감상했다. 슬슬 출출해졌고 힘들다는 어린 대원들을 위해 택시를 부르려 했으나 기다리는 시간과 차 타고 가는 시간까지 합치면 걸어가는 시간보다도 길었다. 택시는 포기하고 맛있는 저녁을 기대하며 극기의 마음으로 일렬로 씩씩하게 걷기 시작했다. 발걸음의 속도는 제각각이었지만 맛집을 기대하는 마음만은 하나였다.
역사 기행은 무엇보다 복습이 중요하다. 오늘 하루 본 이 어마어마한 역사와 유적을 흘러 보낼 수는 없었다. 숙소 책꽂이에 있던 ‘로마’라고 쓰인 하드지로 된 팔뚝만 한 책을 꺼내 들었다. 고대 로마부터 현대까지의 로마 모습이 사진첩으로 설명과 함께 있었지만 이탈리어로 되어 있어서 읽을 수 없었다.
캄피돌리오 언덕은 로마의 일곱 언덕 중 가장 높은 언덕으로 원로원과 호민관 건물만 남아있었는데 12세기 무렵 16세기 바오로 3세 교황이 미켈란젤로에게 이곳의 디자인을 의뢰했고 1537년 미켈란젤로는 캄피돌리오 광장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미켈란젤로가 죽은 후에도 그가 만든 설계에 따라 화려하고 웅장한 바로크 양식으로 세나토리오 궁전과 분수대, 콘세르바토리 궁전이 지어졌다.
세 개의 건물로 둘러싸인 캄피돌리오 광장의 정면에는 현재 로마 시청으로 사용하고 있는 세나토리오 궁전이 있고 좌로는 누오보 궁전, 우측으로는 콘세르바로리 궁전이 있는데 누오보 궁전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콘세르바로리 궁전과 완전 대칭형으로 지은 건물이다. 이 두 궁전은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데 현재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고대 로마, 이집트, 그리스 시대의 조각상들과 르네상스 예술품이 보관되어 있다고 하는데 유료 입장이어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코르도나타 계단 상단 끝에는 로마 공화정 시절 전투에 공을 세운 쌍둥이 형제 ‘디오스쿠리’ 조각상이 있다. 그리고 광장 중앙에는 로마 제국의 16대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마상이 있는데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황제이자 스토아학파의 철학자이기도 했으며 전쟁터에서 쓴 일기 ‘명상록’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50센트 동전에도 캄피돌리오 광장과 함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동상이 그려져 있는데 이탈리아 사람들이 그를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로마 시청이 된 세나토리오 궁전 앞에 있는 분수대도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것으로 중앙에 미네르바 여신상이 있고 오른쪽에는 ‘테레베강의 신’의 조각상이 있는데 왼쪽에는 ‘나일강의 신’이 있다. ‘테레베강의 신’ 조각상을 자세히 보면 그 아래 아주 귀엽게 조각된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이곳 캄피돌리오 광장에서 결혼식 사진을 찍는 신랑 신부 사진 촬영을 종종 볼 수 있다더니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도 하얀 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는 커플들을 볼 수 있었다.
‘캄피돌리오 광장’하면 미켈란젤로의 두 가지 신비를 꼭 확인해야 한다.
첫 번째는 돌계단이 있는 언덕길이라는 뜻의 ‘코르도나타’라는 돌계단이다. 코르도나타는 역사다리꼴 모양으로 원근의 착시효과를 노려 설계한 것으로 계단 위쪽으로 갈수록 넓게 설계하여 계단을 올려다볼 때 가까워 보이는 착시효과를 주고 있다. 반대로 내려갈 때는 멀어 보이는 착시를 준다.
두 번째는 캄피돌리오 광장 대리석 바닥에 그려진 기하 학적 무늬이다. 바닥에 그려진 무늬에 숨은 비밀이 있다고 하니, 듣고 보니 과연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에 전 세계인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연꽃 모양의 기하학적인 무늬는 눈으로 보면 직선인데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곡선으로 연꽃 모양처럼 보이고 더 놀라운 것은 그 무늬가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 모양은 세상을 향해 퍼지는 빛의 상징이라고 하니 전 세계 사람들이 찾아오는 이유가 아닐까. 우리는 누구나 빛을 향해 가고 싶은 내면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