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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Stealer Aug 31. 2024

카페테리아 좀도둑

감시카메라가 없다는 건  

모든 절차를 끝내고 자동문을 밀고 나오자 피켓을 든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나는 눈을 반짝이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픽업 기사를 찾았다. 그러나 남편 이름이 적힌 종이와 태블릿은 찾을 수가 없었다. 오른쪽 왼쪽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의 기대는 불안으로 바뀌었다. 조금 늦는 걸까, 누군가 허겁지겁 들어오지 않을까 입구를 주시하며 기다렸지만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불안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공항 출입구

그냥 택시를 타고 가려니 픽업 차량이 오기로 했기 때문에 약속 취소가 확인되지 않는 한 우리도 움직이지 못할 상황이 되었다. 실망은 포기를 낳았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서서히 사라져 갔고 기사 아저씨가 오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남편은 카페테리아로 가서 요기 좀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우리는 군말 없이 카페테리아로 이동했다.




카페테리아 

카페테리아는 중앙에 계산대를 두고 왼쪽 공간은 커피와 샐러드와 빵 등을 팔고 있고 오른쪽 공간은 편의점처럼 음료와 과자, 식품 등을 진열하여 팔고 있었다. 계산대에는 중년 정도의 남성 두 분이 주문을 받아 커피와 빵을 세팅하거나 손님이 들고 온 물건을 계산해 주며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오른쪽 테이블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애들한테 먹고 싶은 걸 고르라고 하자 첫째는 연어 샐러드 하나, 둘째는 레모네이드 한 병, 셋째는 치즈 샌드위치 하나를 골랐다. 은행에서 현금 300유로를 바꿔왔지만 카드가 가능한지 알아봐야 해서 먼저 중국 마스터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자 판매원은 고개를 흔들었고 나는 서둘러 한국 비자 카드를 다시 내밀었다. 그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카드를 포스기 위에 잠시 대더니 다시 카드기에 카드를 끼워 넣었다. 처리되기를 기다리는데 그 시간이 어찌나 길던지, 숨죽이고 포스기만 보고 있는데 이내 경쾌한 기계음을 내며 영수증이 조르르 흘러나왔다. 이 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나는 환희의 미소를 지으며 영수증에 사인을 했다. 카드 사용 '문제없음'이라는 관문 하나를 통과한 것 같았다.   


에어비앤비 주인이 연결해 준 NCC 택시 회사 픽업 기사와는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았다. 시간은 지체되어 갔고 그럴수록 설계자 남편은 분주하게 약속 장소를 오가며 얼굴빛이 점점 어둡게 변해갔다. 간식거리를 다 비우고 나서도 감감무소식이자 애들도 지쳐갔다. 나는 김훈의 ‘허송세월’을 펼쳐 읽고 있었고 조사자는 영어 단어장 꺼냈고, 제안자와 협력자에게는 반 강제로 책을 읽으며 기다리게 했다. 옆에 있던 협력자가 말했다. 


“엄마, 엄마 나 도둑 본 거 같아. 사람들이 계산 안 하고 그냥 가져가”


설마 하는 마음으로 “어디?” “저기 우리 앞에 앉은 저 여자 있잖아. 저 사람도 생수를 꺼냈어. 근데 눈치를 좀 보더니 계산 안 하고 그냥 마셨어.” “정말?” “그리고 아까도 어떤 남자가 음료수 그냥 들고 갔어.” “정말?” “엄마도 가만히 저기 보고 있어 봐.” 나는 반신반의로 협력자의 시선에 합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낭을 멘 청년이 진열대에서 물병을 꺼내 자연스럽게 가버리는 것이었다. 어머나!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바빠 보이는 한 남성 역시 진열대에서 음료병 하나를 꺼내 들더니 그냥 가버리는 것이었다. 세상에!


중앙 계산대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계산을 기다리고 있었고 감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로마의 좀도둑이라는 것이 저런 것이란 말인가. 놀라웠다. 그러나 좀도둑보다 나를 더 놀랍게 했던 건 감시카메라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럴 수가 감시카메라가 없다니.


내 눈을 의심했다. 베이징에서는 눈만 돌리면 마주치는 게 감시카메라 렌즈였다. 날아다니는 새보다 더 많이 볼 수 있는 감시카메라가 이곳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감시카메라가 없다는 건 마치 이 나라에서는 생수 한 병 정도 가져가는 건 죄가 아니라 자비를 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돈이 없는데 목이 마르시나요? 급해서 돈을 지불할 시간이 없으신가요? 괜찮습니다. 가져가 드세요.’라고 암묵적 자비를 허용하는 거 같았다. 감시카메라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자율일까 타율일까 안전일까 위험일까 자유일까 억압일까 불안일까 안심일까.    


남편이 머리카락이 하얀 양복 입은 아저씨와 함께 등장했다. 픽업 기사 아저씨였다. 백발이었지만 할아버지는 아니었다.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표정 변화가 없는 걸 보니 원래 저런 표정의 가진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기다림에 지친 우리였지만 그를 보자마자 불만 같은 건 한달음에 달아났다. 이곳에서 꺼내 줄 구세주만 같았다. 


그를 따라 주차장으로 가자 9인승 검은색 벤츠가 줄지어 여행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그중 하나에 올라탔고 기사 아저씨는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한마디 말도 없었고 난처한 표정도 변함이 없었다. 감시카메라가 있든 없든 그의 난처한 표정은 변함이 없을 것만 같았다. 감시카메라가 없는 사회에 산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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