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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Stealer Aug 17. 2024

아부다비 공항, 아랍어의 풍경

알사탕도 아랍맛, 그 야릇한 중간맛  

베이징 다싱 공항에서 저녁 7시 45분 출발하여 9시간 비행 후 경유지 아부다비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 시간은 밤 1시 정도였는데 시간은 전혀 알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그냥 시계가 그렇게 말해주는 것뿐이었다. Transfer 영어 알파벳이 눈에 먼저 들어왔고 나란히 그려진 글자는 아랍어였다. 요술램프처럼 생긴 아랍어가 눈에 띄자 알라딘이 사는 미지의 공간으로 날아온 것만 같았다. 우리는 환승 방향으로 계속 걸어갔다. 소지품 검색대에 다다르자 얼굴이 수염으로 가려진 아랍인 검사원들이 서있었다. 그들의 체격은 왜소했지만 깊고 짙은 눈빛은 검색대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자 면세점 구간이 한눈에 펼쳐졌다. 잠이 덜 깬 안구가 화려한 불빛에 쪼이자 졸음이 한달음에 달아났다. 대낮처럼 빛나는 하얀 조명은 활기를 몰고 다니듯 만수르 의상을 입은 남성들과 차도르를 한 여성들, 동서양의 관광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얼기설기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마치 저들 사이에 알라딘이 양탄자를 타고 나타날 것만 같았다.

아부다비 공항 

표지판은 아랍어와 영어가 함께 쓰여 있었다. 아득한 과거, 대학 때 기초아랍어를 교양과목으로 한 학기 수강한 적이 있었다. 순전히 호기심에 선택한 과목이었는데 당시 여자 교수님께서 정말 열정적으로 귀에 쏙쏙 들어오게 아랍어를 가르쳐 주셨던 여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랍어에는 성별에 따른 단어가 따로 있었고 기초문법은 비교적 단순했었던 것 같았다. 교수님께서 ‘인샬라’라는 단어를 강조하셨는데 이 의미는 ‘신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하여 언제 어디서든 누구를 만나든 이 한 단어로 모든 걸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마법 같은 단어였다. 

그때 낯설었던 아랍어의 풍경이 아부다비 공항에서 기시감으로 나타났다. 요술램프처럼 생긴 아랍 글자들은 내 눈동자 주위를 둥실둥실 떠다녔다. 알라딘의 양탄자처럼.


탑승구를 향해 걷고 있는데 조사자는 ‘두바이 초콜릿’을 사야 한다며 매장을 둘러보자고 걸음을 막아 세웠다. 아부다비 공항 경유 시간은 겨우 2시간이라 느긋하게 뭔가를 둘러볼 시간은 없었지만 조사자의 간절함에 우리는 잠깐 걸음을 멈췄다. 나와 두 애들은 근처 의자에 앉아 기다리기로 하고 설계자와 조사자 둘이 팔만한 곳을 재빨리 둘러보기로 했다.


10분이나 됐을까. 둘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몇 군데 먹거리 상점에 가서 찾아도 보고 물어도 봤는데 여기서는 두바이 초콜릿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두바이 초콜릿은 한국에서 비싸게 팔림에도 불구하고 비싸서 못 먹기보다는 없어서 못 먹는 아주 귀하디 귀한 아이템이라 한다. 조사자는 우리에게 숏츠 영상을 보여주며 득템의 기회를 놓쳤다는 실망감과 아쉬움을 드러냈다. 나도 초콜릿 광이지만 영상 속 두바이 초콜릿은 보기만 해도 달디 달 것 같은 고농도 단맛이 목구멍에서 밀려 올라오는 거 같았다. 머리끝이 다 어질거렸다. 


30분도 채 안 남은 시간. 초콜릿 구입이 실패하자 설계자는 아랍의 커피 맛을 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마음은 급했지만 이때 아니면 언제 또 아랍 커피를 마셔볼까라는 조바심이 더해져 ‘마시려면 얼른 가서 마시자!’라고 재촉했다. 눈을 레이다처럼 굴려 포착된 카페가 한 곳 있었다. 인테리어는 꽤 고급스러워 보였고 홀 중앙에는 커피콩이 종류별로 한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커피에 대한 과한 진심이 느껴졌다. 

MAATOUK MAISON 카페 진열된 커피콩과 케이크
M 라테 

1949년에 시작되었다는 MAATOUK MAISON 카페는 찾아보니 아랍 지역에서 꽤 유명한 커피 전문점이었다. 커피 2잔과 음료 1잔, 케이크 2조각을 맛보기 용으로 주문해 봤는데 우리 입맛에는 썩 맞지 않았다. 향과 풍미가 없는 씁쓸하고 밋밋한 원두맛, 우유의 유지방 비율이 높아 느끼하고 맹맹한 라테맛, 금가루가 뿌려진 깜찍한 초콜릿 케이크는(누구 코에 붙여야 하나) 카카오가 농축된(단맛은 어디로 갔나) 건강한 맛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울 만한 맛은 아니어서 우리는 가볍게 자리를 뜰 수 있었다. 일가족의 표정을 읽은 것일까. 키 작은 남자 직원이 오더니 상냥한 태도로 서비스라며 작디 작은 커피맛 알사탕을 하나씩 건넸다. 감사함의 표시로 우리는 곧바로 알사탕을 까서 먹었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알사탕도 아랍맛이었다. 그 야릇한 중간맛. 


우리는 서둘러 게이트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잠시 만난 아랍어의 풍경, 그 야릇한 맛을 일깨워준 공간, 언제 또 만날지 모를 아부다비 공항을 뒤로하고 로마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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