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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Sep 12. 2024

이것이 정의의 슈킹이다 - 2
(마지막화)

 12월 31일 (월)


 미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현우가 물었다.

 “수혜 씨는 세례명이 뭐에요?”

 “마리아예요.”

 그는 수혜의 세례명이 그녀의 캐릭터와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저는 삭개오로 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예수님을 믿어 볼까 합니다.”

 “정말요? 근데 세례명을 삭개오로 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그건… 성경 속 인물 중에 제가 아는 사람은 삭개오밖에 없거든요.”

 현우는 어릴 적 성당에서 들었던 강론을 떠올리며 말했다. 삭개오는 식민지 동족인 유대인에게 세금을 강제 징수하여 지배국인 로마 당국에 바치는 세리장이었다. 그는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라면 동족을 등쳐 먹는 일도 서슴지 않았고 탐욕과 위선으로 얼룩진 수전노였다. 

 어느 날 삭개오는 자기 마을에 예수가 지나간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나 키가 작아 군중에 둘러싸인 예수를 볼 수가 없어 뽕나무로 올라갔다. 그때 예수가 말을 걸어 왔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네 집에 거하겠노라.”

 동족의 미움과 멸시를 받던 그는 예수께 인정받은 것에 감격하여 자기의 죄를 고백하며 이렇게 선포한다.

 “주여,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겠으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습니다.”

 갑자기 성경의 이 일화가 떠올랐을까? 그것은 지금 자신이 삭개오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라고 느껴서다. 그 어떠한 명분을 내세워도 남의 돈을 빼앗고 친구를 배신한 사실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쌍한 이웃을 돕겠다고 재물을 훔친 로빈 후드의 행동이 과연 선행일까? 어불성설이 아닐까?

 

 어느새 눈이 멈추었는지 밤하늘에 별들이 가득했다.

 “수혜 씨, 알퐁스 도데의 ‘별’을 아세요?”

 “네. 학생 때 읽었어요.”

 “거기 양치기가 바로 저예요.”

 “그럼 저는 주인 아가씨인 스테파네트인가요?”

 그녀는 선홍색 잇몸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짝사랑도 사랑이니까 간직할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잖아요.”

 “그건 그러네요.”

 “세상에 우연은 없는 거래요.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지요. 오늘도 지나 보면 이유 있는 하루라고 봐요.”

 “실장님은 유머스러우면서도 감성적이네요.”

 “수혜 씨 앞에서 척하는 거예요.”

 현우는 이 분위기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우회적으로 사랑의 진도를 조금 더 나갔다.

  “누군가를 좋아하기 전에는 서로 다르다는 것에 끌리지요. 근데 이후로는 그 다름에 힘들 수도 있어요. 그 다름을 함께 인정하고 이해해야만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실장님은 마치 휴머니스트 같아요.”

 “게다가 로맨티스트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저는 괴테의 이 시구를 좋아합니다.”

 “어떤 건데요?”

 “태양이 바다에 미광을 비추면 나는 당신을 생각한다. 희미한 달빛이 샘물 위에 떠 있으면 나는 당신을 그리워한다… 저도 괴테처럼 바다의 반짝임만 봐도 눈부신 당신을 떠올리거든요.”

 그녀는 현우의 멘트에 감동한 듯 부드러운 미소를 띄었다.  

 

 저 멀리 청평역 지붕의 불빛이 보였다. 역 앞의 푸드트럭에서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현우는 뛰어가 핫도그를 사와 그녀에게 건네고는 숨을 골랐다.

 “괜찮으세요?”

 “이 정도는 완전 껌입니다. 어서 드세요?”

 “요즘 살이 쪄서….”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고 하잖아요.”

 “그럼 10개 먹을래요.”

 입을 오물거릴 때마다 보조개가 춤을 추었다. 반쯤 먹다 그녀가 말했다.

 “집 근처에 맹아 학교가 있어요. 저는 그 학생들이 지팡이에 의존해 등교하는 모습을 매일 보아요. 그때마다 그 사람들과 동생의 건강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 드려요.”

 그녀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부정하기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현우는 왠지 부끄러웠다. 

 수혜가 그의 완고한 집착을 서서히 깨어갔다. 그리고 결심을 더욱 굳건하게 해 주었다. 이 순간 그녀는 현우에게는 삭개오가 예수를 만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청량리역에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은 MT를 다녀온 대학생처럼 즐거웠다.

 

 어제 그는 시영을 만났다.

 “시영 씨와 선영 씨의 대출이 아쉽지만 안 되었어요. 그래서 제가 대신 대출을 받았지요. 빨리 가게 빚을 갚고 나머지는 미용 자격증을 취득할 때까지 선영 씨와 함께 쓰도록 해요. 나는 곧 중국으로 일하러 가니 이제 연락이 안 될 거예요.”

 현우는 5천만 원을 내밀었다. 그리고 선영에게는 이 돈을 비밀로 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동수의 귀에 들어갈 수 있어서다. 시영은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현수 오빠, 너무너무 고마워요.”

 그녀는 현우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 또 울었다.

 “참 좋은 인연이란 시작이 좋은 인연이 아니라 마지막이 좋은 인연이래요.”

 시영은 헤어짐을 예감이라도 한 듯 이 말을 유난히 강조했었다. 그녀와의 이별은 이렇게 끝났다.

 이어 희현을 만났다. 그녀도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가장으로서 어려운 형편이었다. 또한 이 작업의 성공에 큰 일조를 했기에 보답하는 것이 도리다. 물론 희현은 사건의 실체를 모르지만. 

 그녀에게도 중국을 핑계 대면서 3천만 원을 건넸다. 희현은 울음을 터뜨렸다. 흘러내리는 두 줄기 눈물이 그칠 줄 몰랐다. 현우는 그녀의 훌쩍이는 어깨를 한동안 감싸 주었다. 인연을 필연으로 만들고자 했던 희현과의 작별도 막을 내렸다. 

 

 “아주머니의 통장에 3천만 원이 있을 거예요. 아드님의 간암 수술비로 쓰세요. 이 돈은 갚지 않아도 돼요. 그럼 끊습니다.”

 “김수잔 씨. S은행 통장으로 2차 수술비 포함해서 5천만 원이 입금되었을 겁니다. 즉시 뇌종양 수술을 받으세요. 그리고 이 돈은 잊어버리시고요. 예수님이 당신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고 믿으세요.”

 “조석기 씨의 통장에 3천만 원이 들어갔으니 확인해 보세요. 인테리어 사무실을 얻고 따님들과 행복하게 사시길 바라요. 이 돈은 천천히 갚으셔도 됩니다.”

 “사장님, H은행 통장으로 4천만 원이 입금되었을 거예요. 그 돈으로 조명 기계를 사세요. 이 돈은 안 갚아도 됩니다. 대신 돈을 많이 벌면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세요.”

 “트럭 아저씨, 박 실장입니다. 5천만 원이 J은행 통장에 입금되었을 거예요. 유류저장고 공사를 시작하세요. 이 돈은 훗날 형편이 나아지면 좋은 곳에 쓰세요.”

 “파랑새 할아버지, K은행 통장에 3천만 원이 있을 겁니다. 당장 재봉틀을 신형으로 바꾸시고 작업장 보수를 하세요. 돈은 안 갚으셔도 돼요. 하나님께서 할아버지의 착한 마음을 아셨나 봐요.”

 “아주머니, 통장에 4천만 원이 입금되었을 거예요. 빨리 따님의 수술부터 하세요. 분명 기적이 일어나서 완치될 거예요. 돈 갚는 것은 신경 쓰지 마시고요.”

 이어 카센터 사장에게 4천만 원을, 청소 프랜차이즈 부부에게 3천만 원을, 자전거 아저씨에게 3천만 원을, 택시 기사에게 4천만 원을 이체했다. 11명에게 송금한 돈이 얼추 4억이 넘었다.

 

 마지막으로 현우는 돈을 보냈던 40여 명의 사람들에게 방금 통화한 내용과 비슷한 메세지를 전송했다. 그는 작성한 문자에 ‘대출금’이란 용어를 쓰지 않았다. 대출금이라면 송금처가 은행으로 찍혀야 하는데 대출 손님의 이름으로 보냈으니 모순이 생긴다. 졸지에 대출 손님들은 현우 대신 자선사업가의 역할을 한 셈이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경찰이 증발한 잔고증명 돈의 흐름을 끝까지 추적한다는 것이다. 얼마 후 돈의 종착지는 드러난다. 만약 출처가 불분명한 돈을 임의로 소비하였다면 자기 것이 아니므로 횡령죄가 성립한다. 그러나 이들은 그 돈을 썼다고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 상황은 얼굴 없는 천사에게 무상증여를 받은 것과 같아서다. 현우가 보낸 메시지가 그 증거가 될 것이다. 11명도 통화내역이 있기에 마찬가지다. 이렇게 그는 자신의 개입을 완전히 차단했다.     

 마침내 18억 정도의 이체가 끝났다.

 “대출은 늦어도 12월 말까지 될 겁니다.”

 이로써 현우는 대출 손님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마치 자기가 등대지기가 된 듯했다. 얼마 전까지 난파선에서 표류한 선원으로 폭풍 속을 헤매던 자신이 아니었던가!

 

 작업 후 열흘이 지났다. 현우의 예상대로 수혜는 경찰에 소환되지 않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실명폰을 꺼냈다.

 “수혜 씨, 박현우입니다.”

 얼마 만에 떳떳하게 불러 보는 나의 이름인가!

 “지금 원생들을 태울 승합차를 보러 자동차 영업소에 갈 건데 함께 가실래요?”

 “네, 현우 씨 그래요.”

 어느새 ‘실장님’에서 ‘현우 씨’로 바뀌었다. 먹색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수혜도 분명 눈을 좋아하게 될 거야.’

 현우가 소리쳤다.

 “나는 사채업자의 작업도 연애의 작업도 완벽하게 성공했다. 이것이 바로 정의의 슈킹이다!”


 P.S : 그동안 저의 소설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글임에도 구독과 라이킷 해주신 작가님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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