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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Aug 17. 2024

작업 금액은 40억으로 - 2

 12월 12일 (수)


 명의대여자를 만나러 갔던 동인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들어왔다.

 “일이 잘된 거 같은데?”

 “응.”

 “나이는 몇 살이야? 수수료는 얼마 준다고 했어? 이제 세 사람만 더 구하면 되는 거지?”

 동수의 질문이 이어졌다.

 “40대 후반의 아줌마야. 큰돈을 찾아도 의심 안 받을 딱 좋은 나이지. 수고비는 억당 100만 원 준다고 했어. 또 머리나 손질하라고 30만 원을 줬지. 그래야 부담을 갖고 펑크를 안 낼 테니까.”

 그는 여자에게서 받은 각서, 등본, 인감 등을 동수에게 보관하라며 줬다. 각서는 잔고업체 서류 중 하나로 만일 잔고증명 돈을 인출하여 도망가거나 잠적할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는 내용이다. 사실 이 각서는 형식일 뿐, 명의대여자가 돈의 출처를 눈치채고 자기 돈이라 생짜를 부린다면 어쩔 수 없다. 

 수사기관에 고소도, 재판을 걸 수도 없지 않은가! 잔고증명이 불법이어서 신고를 못 하는 것처럼 현우 쪽도 벙어리 냉가슴 앓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나마 잔고업자는 본인 돈이지만 이들에게는 범죄 수익금이니 절대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여자로, 그중에서도 가족 관계와 주거지가 확실한 사람이어야 해.”

 이것이 명의대여자 조건의 1순위라며 동인은 선택에 신중을 기했다.

 “현수 형, 내일 고려와 대양에 한시영을 작업용으로 보낼 거니까 서류 작성 부탁해요. 글구 되도록 글씨를 여자체로 써 주세요.”

 동인은 자리로 가더니 수화기를 들었다.

 “고려금융이죠? 8천만 원짜리 잔고인데요, 호주 유학 비자용이에요. 내일 오전에 서류 보낼게요.”

 그는 대양에도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이어 다시 천천히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서울금융이지요? 저번에 전화한 김 실장입니다. 수수료를 좀 낮춰 주면 안 될까요? 그러면 내일이라도 의뢰할게요. 억당 28만 원까지 가능하다고요? 정말 고맙습니다.”

 통화를 마치자마자 동수가 물었다.

 “서울금융은 뭐야?”

 그는 처음 듣는 업체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마 전에 한 번 통화한 잔고업체인데 날 기억하네. 이번에 몰아서 끝낼 생각이야!”

 이때 전화가 울렸다.

“잔고증명 금액을 무제한으로 받겠다고요? 물론 그러면 저희도 좋지요.”

 동인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그럴 리가 없는데….”

“어디서 온 전화야?”

“금방 통화한 서울금융.”

“거기서 무제한으로 해 준단 말이야? 야호! 10억 아니, 100억을 넣는 거야. 현수야, 강남에 있는 빌딩 얼마 하냐? 이번 기회에 조물주보다 높은 건물주가 돼 보자.”

 동수는 호들갑을 떨었다.

 “형, 그렇게 좋아할 필요 없어.”

 “뭔 말이야?”

 “그쪽에서 100억을 해줘도 우리가 작업할 수 있는 금액은 고작 5억뿐이야.”

 “왜지?”

 “대부분 은행의 1일 이체 한도가 최고 5억이거든.”

 “아, 그렇구나. 괜히 헛물만 켰네.”

 동인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소파로 갔다. 동수가 따라 앉으며 나자막히 입을 뗐다.

 “요번에 몇 군데 작업할 건데?”

 “마지막이니 최대로 해야지. 4개까지는 무난할 것 같아.”

 “4개 업체나!”

 전혀 뜻밖이라는 듯 동수의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고려, 대양과 서울금융. 그리고 바지를 보내야 하는 한양금융. 한양을 작업하려면 남자 바지가 있어야 해. 명의대여자 광고가 나갔으니 곧 연락이 오겠지.”

 “동인아, 바지 구하기 힘들면 서류만 보내는 업체를 더 알아보는 게 어때?”

 “모르는 소리 마. 그나마 고려, 대양, 서울이 첫 거래 시 잔고증명을 많이 해 주는 곳이야. 업체가 많을수록 정보 파악이 힘들다는 생각은 안 해?”

 “듣고 보니 그러네.”

 두 사람의 대화에서 현우는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심정이었다. 만약 동수의 제안을 그가 받아들였다면 현우의 뼛속까지 사무친 수일금융 복수는 한순간 사라진다. 수일은 서류 접수가 아닌 의뢰인이 사무실을 방문해야만 잔고증명을 해주기 때문이다.

 “슈킹 금액은 얼마나?”

 “40억.”

 “40억? 그게 가능해!”

 동수는 흥분하여 몸을 떨었다. 현우도 작업 금액에 놀라 심장이 쿵쿵 뛰었다. 한편으론 간담이 서늘했다. 

 동인이 능글스럽게 말했다.

 “푼돈으로 장난치는 놈들을 사기꾼이라 부르지. 근데 50억, 100억이 되면 경제사범이라고 높이 불러 줘. 마지막인데 우리도 그 정도 반열에 올라야 하지 않겠어?”

 “당근이지.”

 “하긴 재벌들은 수백억을 횡령, 배임해도 사회 공헌도 등의 이유로 풀려나는 세상이니까.”

 동수의 맞장구에 현우도 가세했다.

 “어떻게 하려고?”

 “고려, 대양, 서울은 서류로 5억까지 잔고증명을 해 주지. 그 이상은 본인이 사무실을 방문해야 해. 한양은 무조건 의뢰인이 사무실로 가야 하고. 그것도 첫 거래는 10억까지야.”

 “업체마다 잔고 방법이 다르고 뭐가 그렇게 복잡해!”

 동수가 짜증 섞인 투로 언성을 높였다.

 “각자 나름대로 위험을 대비려고 최선의 방어책을 쓰는 거지. 컴퓨터 백신이라고나 할까?”

 “인마, 그럼 우리가 바이러스란 거냐?”

 “그럴 수도 있지. 그것도 고성능 바이러스.”

 “뭐야? 다행히 악성 바이러스는 아니네.”

 “크크….”

 “킥킥….”

 두 사람은 서로의 말장난이 재밌는지 피식거렸다.

 “그러면 슈킹 금액이 25억이지 왜 40억이야?”

 동수는 그의 계산이 잘못됐다고 확신한 듯 따져 물었다.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던 현우도 거들었다.

 “3곳에 서류를 두 개씩 넣으려고?”

 “그건 안 돼요. 하루에 한 건 보내다가 갑자기 두 건을 의뢰하면 금액이 커져 의심받을 수 있어요.”

 “근데 어떻게 40억이 되냐고? 빨리 좀 말해 봐.”

 “3군데에 의뢰인이 직접 잔고증명을 하는 것처럼 해서 보내는 거지.”

 동인은 음흉한 미소를 띠었다.

 “그러니까 서류로 세 건, 손님이 잔고업체 광고를 보고 의뢰하는 것처럼 해서 세 건. 5억 곱하기 6은 30억에, 한양 10억을 더하면… 아! 그래서 40억이구나.”

 그제야 동수는 이해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우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의 계략에 입이 딱 벌어졌다.

 “양쪽으로 두 개씩 의뢰하면 어떨까?”

 순간 더 많은 배당금에 욕심난 현우가 제시했다.

 “와~! 그러면 70억, 70억이네. 야호!”

 동수가 신나서 책상을 두드렸다.

 “마지막이라 저도 같은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내린 결론은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왜?”

 “물론 서류와 사람을 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문제는 돈을 인출하는 거죠. 오전 내로 40억을 찾는 시간도 촉박할 수 있어요. 하물며 그 이상은 무리수예요.”

 “오전 중으로?”

 “네. 이체를 10회 이상 하겠지만 필히 오전에 끝내야 해요. 길어질수록 사고가 발생할 수 있거든요. 어쩌면 돈 가방을 든 아줌마와 경찰이 함께 돌아올 수도 있어요. 상상만 해도 아찔하죠. 여기까지가 우리 몫이라고 봐요.”

 현우는 그의 냉철함과 절제력에 존경심마저 들었다. 한편으로 아쉬웠지만 눈앞에 어른거리는 돈다발로 위안을 삼았다.

 그는 한시영의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평소 자기 글씨체를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땀을 뻘뻘 흘렸다. 표준도 없는 느낌만으로 여자체로 보이는 게 창작만큼이나 힘들었다.

 

 현우는 내일부터 오전에는 상담을 한 건만 해야겠다고 동인에게 말했다. 그 시간에 잔고업체 서류가 오고 발송도 해야 하기에 어수선했다. 무엇보다 도착한 서류 내용에 따라 긴급회의가 열려서다. 

 동인도 그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대출 손님들이 밀려들어 작업용과 이체 통장은 충분하여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는 복수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했다. 동인의 작업 방법과 금액을 구체적으로 알았기에 윤곽이 잡혔다. 기회를 보아 자신의 심경을 고백할 찬스만 노리면 된다. 동인은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슈킹 금액과 방법에는 변동이 없어서다. 또 지금 나는 그들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아닌가!

 ‘복수에 자비란 죄악이지. 복수는 강한 자들만의 몫이 아니야.’

 질끈 깨문 현우의 입술에서 조금씩 피가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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