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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Aug 18. 2024

복수의 기회가 오다

 12월 12일 (수)


 “동인아, 나 할 말이 있는데….”

 “뭔데요?”

 “바지로 작업할 업체가 어디라 했지?”

 “한양금융인데, 왜요?”

 “수일금융으로 바꾸면 안 될까?”

 “네?”

 갑작스런 현우의 제안에 그는 어리둥절했다.

 “사실은….”

 “뭔데 그래? 빨리 말해 봐. 또 수일금융은 뭐야?”

 동수가 답답한지 가슴을 쳤다.

 사건의 전말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숨졌다. 무단횡단이라 보상금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때 현우는 고등학생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의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엄마는 호구지책으로 구멍가게를 열었으나 세 식구 입에 풀칠하기는 벅찼다. 그래서 무리해 큼직한 마트로 확장했다. 이때 ‘돼지 엄마’라는 계주의 소개로 사채업자인 복 사장 돈을 썼다. 마트는 엄마의 친절과 부지런함으로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 엄마는 복 사장의 빚을 갚으려 돼지 엄마에게 계를 들었다. 학수고대하던 순번이 되자 계주가 잠적했다. 복 사장은 차용증을 근거로 마트를 경매에 넘기고는 본인이 낙찰받아 꿀꺽하였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에게 몇 배의 권리금을 받고 넘겼다. 

 그 후 복 사장과 돼지 엄마가 마트를 빼앗으려 작당을 꾸몄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엄마는 그 충격으로 조기 치매가 왔고, 지금 요양병원에 있다.

 그런데 작년에 그 복 사장이란 놈을 강남역 부근에서 우연히 부딪쳤다. 쭉 찢어진 눈매에 두툼한 입술, 콧잔등의 검은 점. 한눈에 봐도 복 사장이었다. 뽈록한 똥배를 내밀며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마치 멧돼지가 돌진하는 것 같았다. 현우는 그놈과 마주쳤다. 머리가 어질했지만 옛날의 기억은 또렷했다.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순간 그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찢어 죽일 놈!”

 현우는 이를 바드득 갈았다.

 어느 빌딩으로 들어가는 복 사장을 뒤따랐다. 그는 ‘수일금융’이란 간판이 붙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때 귀중품으로 치장한 여자가 뱃살을 출렁이며 현우 앞을 지나쳤다. 바로 돼지 엄마였다. 불쾌한 향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녀는 사무실 문을 노크도 없이 열어젖혔다. 현우가 문틈으로 대화를 엿들었다.

 “어, 왔어?”

 “역시 잔고증명이 돈이 되네.”

 “내가 그랬잖아. 자금 회전이 빠른 게 최고라고.”

 “우리 자기 최고야!”

 두 사람은 스킨십에 정신이 없어다. 그들은 동업자이면서 애인 사이로 보였다. 복 사장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팔뚝의 용문신이 꿈틀거렸다.

 “인간쓰레기들!”

 현우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고작 이 말이 다였다. 복수는커녕 당장 생활고로 허덕이는 자신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분을 삭이며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동인과 작업하면서 이제야 원수를 갚을 기회가 왔다.

 현우가 알아본 바 복 사장이 하는 잔고증명은 한양금융의 방법과  같았다.


 "저런 나쁜 새끼들이 있나! 현수야, 이번에 복수를 하면서 돈도 챙기니 일거양득이잖아.”

 동수가 씩씩거리며 힘을 실어 주었다. 현우는 사건의 개요만 말하고 개인사는 창피하여 밝히지 않았다. 어느새 수일금융과 통화한 동인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현수 형, 수일의 잔고 방법이 한양과 똑같네요. 바지도 필요하고 첫 거래는 10억까지만 해 주고요.”

 “그래서 부탁하는 거야. 만약 더 힘들면 이런 일에 사적인 감정을 내세울 수 없잖아.”

 의뢰인이 사무실에 방문하는 것이 잔고업체로서는 가장 안전하다. 본인이 직접 가서 의뢰했는데 투명인간이 아니고서야 오리발을 내미는 사람이 설마 있겠는가!

 “동인아, 수일 작업을 내가 하면 안 될까?”

 “네?”

 “내 손으로 복수하고 싶어서.”

 “처음이라 쉽지가 않을 텐데….”

 “일단 해 보고 어려우면 말할게. 응? 응?”

 불안한 표정의 동인에게 그는 사정 조로 매달렸다.

 “그래, 현수를 한번 믿어 봐. 지금껏 완벽하게 일을 처리했잖아. 난 그 마음 백번 이해하고도 남는다, 남아!”

 “정말 할 수 있겠어요?”

 “너, 현수를 너무 과소평가하는구나. 충분히 할 수 있다니까.”

 동수의 펌프질에 동인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가 결정할 동안 현우는 숨이 막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면… 그렇게 하세요.”

 동인은 탐탁지 않은 음성으로 승낙했다. 

 현우는 수일금융 작업을 진작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 이유는 개인적인 부탁을 하면 그것을 빌미로 동인에게 끌려갈 수 있어서다. 그러나 이제는 작업 성공을 100% 확신하기에 그 명분은 중요하지 않았다.     


 며칠 전 심부름센터에서 일하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현우야. 수일금융 복 사장의 이름은 복칠구인데 바지 사장이야. 실질적인 전주는 돼지 엄마인 박후자이고.”

 “또?”

 “복 사장은 세 번 이혼해서 전처들에게 위자료로 전 재산을 빼앗기고 개털이야. 박 후자의 기둥서방으로 겨우 기생하고 있어.”

 “수고했다. 다음에 한잔 살게.”

 현우는 그 연놈에게 물질로 보상받는 것이 원수를 갚는 유일한 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자본주의에서 돈이 곧 목숨이 아닌가! 한편으론 찾아가 과거의 사건을 드러내어 진실을 밝힐까도 생각했지만 그만두었다.

 세월이 흘러 증거도 없지만 무엇보다 공소시효와 소멸시효가 지났다. 괜한 감정싸움으로 얼굴만 팔려 작업 후 원한에 의한 범인으로 지목될 뿐이다. 그래서 무익한 다툼보다 엄마가 당한 피해액의 10배를 슈킹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판단에 이르렀다.

 ‘엄마, 드디어 복수할 기회가 왔어.’

 현우는 돈 가방을 품고 요양병원으로 달리는 자기의 모습을 상상하자 가슴이 벅차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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