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경주가 시작되자 춘식은 지금까지 손실을 만회하려는 듯 과감한 제안을 했다.
“이번 경주에 4-6 복식으로 승부를 걸겠어. 둘 다 나를 믿고 따라와.”
마감 10분 전 배당판은 32.8배를 가리키고 있었다.
“춘식이 형, 또 물귀신 작전으로 나오네.”
“민수야, 이번엔 진짜 촉이 왔어. 틀림없어!”
“매번 경주 시작할 때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 촉을 어떻게 믿어? 내가 한두 번 당해봤나? 나는 4-11을 주력으로 하고, 4-13을 방어로 만 원씩 걸 거야.”
4-11의 6.5배, 4-13은 4.3배였다.
민수가 거절하자, 그는 치우를 꾀기 시작했다.
“논리적으로는 민수 말이 맞지만… 올림픽 해마다 오는 춘식의 감을 한 번 믿어볼까?”
치우가 마지못해 돈을 건네자, 춘식은 발매기로 달려갔다. 4-6의 최종 배당은 20.2배였다. 잠시 후, 춘식이 씩씩거리며 돌아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있잖아, 발매기에서 구매권을 뽑으려는데 누가 뒤에서 '마권 떨어졌어요' 하더라고. 내 것인가 싶어 주워보니 지난 경주 표더라고. 그런데 다시 보니 내 마권이 사라졌어!”
“젊은이, 그건 사기 수법이야. 일부러 미적중 마권을 떨어뜨려 당신이 주울 때 자네 마권을 가져간 거지. 나도 당해봤어. 여긴 정글이라 방심하면 안 돼. 그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무서운 거라.”
옆에 있던 노인이 말했다.
“정말 뒤통수에도 눈이 있어야 한다니까요.”
“그럼, 우리 모두 도깨비가 되는 거야.”
치우의 농담에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경주가 시작되고 1번 인기마인 4번 마가 선두로 치고 나갔다. 11번 마가 그 뒤를 쫓았고, 6번 마는 3코너까지 후미에 머물렀다. 직선주로에서 4번 마는 더욱 앞서나갔고, 11번 마는 점차 뒤처지기 시작했다. 6번 말이 11번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춘식은 6번 말을 향해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11번 말이 다시 힘을 내며 6번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30m 지점에서 4번 말이 결승선을 통과하고, 6번과 11번의 2위 경쟁이 치열해졌다. 6번이 약간 앞서 있는 상황이었다.
“다 왔어! 버텨!”
“잡아! 따야 해!”
춘식과 민수의 외침 속에 치우도 6번 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순간, 바깥쪽의 6번 말이 11번을 살짝 밀치며 결승점을 통과했다. 1위는 4번, 2위는 6번, 3착은 11번이었다. 춘식은 기뻐서 그를 꽉 껴안았다. 민수는 침통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번 경주는 심의 경주입니다. 고객 여러분께서는 심의가 확정되기 전까지 구매권을 보관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랜 심의 시간 동안 사람들은 초조하게 기다렸다.
“이번 심의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6번 말은 2위로 도착하였으나 결승선 10m 지점에서… 따라서 2착은 11번 말이 되겠습니다.”
“뭐야? 낙마도 안 했는데 왜 실격이야?”
춘식은 분노하며 게거품을 물었다. 곧이어 심의 상황이 공개되었다. 6번 말이 밀쳤을 때 11번이 안쪽 펜스에 부딪히며 놀라는 장면이 나왔다. 결국 6번이 11번의 진로를 방해한 것으로 판명되어 실격 처리된 것이다.
춘식은 울상이 되었고, 4-11 조합으로 6.5배를 적중한 민수는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아, 스팀이 팍팍 오르네. 오랜만에 고배당을 맞힐 줄 알았는데, 실격이라니? 아윽! 경주마다 판정패를 당하더니 이번에는 카운터 펀치를 맞았네.”
춘식은 마권을 찢어 허공에 냅다 뿌렸다.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치우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괜찮아, 맞힌 거나 다름없어. 공부한 보람이 있네.”
이때 방송에서 깜짝 이벤트를 한다고 알렸다. 중앙 관람대 잔디밭으로 남자들이 몰려들어 제기차기 시합을 시작했다. 우승자에게는 간식 교환권이 주어졌다.
“잡아! 잡아! 조금만 더. 아, 정말 미치겠네. 그걸 못 잡다니?”
“봐! 이번 경주에는 성국이 오빠를 꼭 넣어야 한다고 했잖아?”
젊은 남자의 짜증 섞인 목소리와 앳된 여자의 불만이 앞좌석에서 들려왔다. 이들은 20대 초반의 애인 사이로 보였다.
애인 사이로 보이는 20대 초반의 커플이었다.
“진짜 말을 안 들어요.”
“야! 1년에 몇 번 들어오는 기수를 어떻게 믿어? 글구 들어온 다음에 누가 그런 말을 못 하겠어?”
치우는 옥신각신하는 청춘 커플의 모습에 슬며시 웃음이 났다. 새로운 배당판이 열리자,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정하게 마번을 골랐다.
“우리 자기 만세! 아, 아깝다. 조금 더 갔어야 했는데.”
“그러게. 현금서비스를 받아서라도 쏠걸 그랬어.”
지금 이 연인은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에서 경마로 바꿔 타고 짜릿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모른다. 자신들이 탄 이 경마 롤러코스터가 브레이크도 없이 시속 500km로 추락한다는 사실을.
부부로 보이는 중년 남녀가 뒷좌석에서 소곤거렸다.
“이번 대상경주에 이 말과 저 말에 베팅할 거야. 내게 소스가 왔는데, 이미 마방 사람들은 돼지 잡는 날이라며 좋아하고 있대. 그리고 마주와 조교사는 벌써 양복을 입고 시상대에 올라갈 준비를 마쳤대.”
“경주가 끝나자마자 바로 시상하는데, 옷 갈아입을 시간이 어딨겠어? 당신의 뻥은 여전히 국보급이야.”
남자는 마치 우승마가 결정된 것처럼 확신에 차 있었다.
경주가 끝난 후, 소스를 받았던 부부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남편은 아내의 핀잔을 방어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곧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욕설을 쏟아냈다.
그때 주변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몇 사람이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나눠 주었다. 그 유인물은 '경마팬에게 바랍니다'라는 제목으로 시작해 '경마 소비자연대(경소연) 드림'으로 끝맺었다. 치우는 그 글을 읽고 나서 타당한 주장이라고 느꼈다. 유인물을 나눠주던 한 남자가 연설을 시작했다.
“우리 경소연의 목표는 경마 중독으로 인해 패가망신하는 경마팬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몇은 손뼉을 치며 호응했지만, 대다수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보안요원들이 주의 깊게 지켜보았지만, 제지는 하지 않았다.
“저렇게 해 봤자 철옹성 같은 마사회가 꿈쩍이나 할까? 헛수고일 뿐이야.”
춘식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민수가 유인물을 흔들며 말했다.
“우는 아이에게 젖을 준다고 하잖아. 이 이중과세만 해도 그렇지. 경마팬들이 한 달만 베팅을 하지 않으면 마사회가 두 손 들고 항복할 텐데… 문제는 경마꾼들이 단결하기 어렵다는 거야.”
구매 마감 3분 전을 알리는 음악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경소연의 사람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급히 창구로 향했다. 치우는 그 모습을 보며 조금 전의 정의감과는 상반된 행동에 묘한 아이러니를 느꼈다.
“저 시추에이션은 대체 뭐야? 경마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그가 혼란스러워하자 춘식이 단언했다.
“중독이지, 뭐. 치우야, 내가 경마 중독 10단계 현상에 대해 말해 줄까?”
“어떤 건데?”
“중독 1단계, 과천 주변 10km 내외의 도시를 점점 좋아하게 된다. 장외발매소가 있는 동네를 미리 알아두고 다닌다.
중독 2단계, '경' 자나 '마' 자가 들어간 단어를 다른 사람보다 빨리 발견한다. 그 용어에 상당한 집중력을 보인다. 예를 들어, 경복궁역, 마두역 같은 일상에서 그 증상을 알 수 있다.
중독 3단계, 주머니에 사인펜이 쌓이기 시작한다. 어느새 자동차 글로브 박스에 사인펜으로 가득하다.
중독 4단계, 학창 시절에 싫어했던 수학의 숫자를 사랑하게 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숫자 외에는 관심이 없으며, 숫자가 곧 돈으로 보인다.
중독 5단계, 도움을 요청하는 시기로, 타인에게 부담을 주기 시작한다. 그동안 혼자서 해결해 왔던 일이 서서히 지인에게 피해를 준다.
중독 6단계, 주말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거짓말을 하게 된다. 이미 빠져나오기 힘든 터널에 진입한 시점이다.
중독 7단계, 고배당과 저배당 중 한쪽으로 치우쳐 자신만의 경마를 발견하는 시점이다. 이때는 많은 돈을 탕진한 상태이다.
중독 8단계, 점점 사람들을 피하게 된다. 빚이 쌓여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주변의 좋은 사람들은 사라지며 하이에나 같은 이들만 남는다.
중독 9단계, 외로움이 찾아오는 시기이다. 모든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오직 땅을 흔드는 말의 요동침에서만 희열을 느낀다. 이때 베팅 금액은 현저히 줄어든다.
마지막 중독 10단계, 지갑, 핸드폰, 신분증 등 아무것도 몸에 지니지 않고 다닌다. 주머니에는 약간의 돈과 사인펜 하나만 있을 뿐이다. 이상으로 경마 중독 증상 끝!"
“그럼 너는 몇 단계야?”
“나는 한 사이클 돌고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섰어.”
“춘식 형은 화장터에서 입술만은 안 탈 거야.”
“민수야, 그걸 확인하려면 우리가 춘식이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해. 알았지? 나는 온 김에 경마장을 구경하고 올게.”
치우는 실내로 들어갔다. 편의점과 식당이 보였고, 관람실마다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중 ‘초보 경마 교실’이라는 강의실이 눈에 띄었다. 직원이 경마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베팅 방법 등을 설명하고 있었다. 치우는 그 강사가 마약 판매상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중독 예방 교실’이나 관련된 자료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춘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야?”
“그냥 둘러보고 있어.”
“곧 10경주가 시작되니까 빨리 와.”
“천천히 갈게.”
“안 돼! 지금 와야 해.”
“왜?”
“너에게 기적을 선물해 주려고.”
치우는 그 말이 허풍이라는 걸 알면서도 발걸음을 돌렸다.
“이번 경주에서 7번 말이 승부를 걸 거니까 7에 베팅해. 내가 이 경주에서 잃은 돈을 만회하고도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줄게. 나만 믿어!”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예시장에 갔을 때 7번 말이 매우 활기차고 기수도 의지가 넘쳐 보였어. 더 중요한 건, 오는 길에 부티 나는 사람들이 조교사에게서 나온 소스라며 속닥이는 걸 들었어. 그러더니 한 발매기를 차지하고 계속해서 마권을 구매하더라고. 결론적으로 내 예시장 관찰과 정보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거지.”
치우는 7번 말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이 말은 추입마마로, 기수도 추입에 능숙한 선수였다. 추입마란 출발할 때 힘을 아껴 선행 그룹을 따라가다가 결승 주로에서 최대의 속도를 내는 말이다. 그동안 성적이 좋지 않아서 팔리기 힘든 말이라 배당도 꽤 높았다. 하지만 말 상태가 아무리 봐도 별로였다. 이기려면 어느 정도는 컨디션이 좋아야 하는데... 그는 고민했지만, 특별히 베팅할 말도 없었다.
경마장은 사실상 도박장이다. 레저라는 명칭은 그저 겉치레일 뿐이다. 경마장을 찾는 사람들은 불안감을 안고 있다. 그래서 자신에게 답을 찾기보다는 타인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상대방의 말이 확신에 찰수록 더욱 믿고 싶어지는 곳이다.
“민수야, 너는?”
“사실 나도 신빙성이 없어 보이긴 한데, 춘식 형이 소스도 들었다고 하니 한번 믿어보려고.”
춘식이 얼마나 설득했는지 민수는 고분고분 따라갔다.
“그럼, 7에 걸고 몇 번을 찍을 거야?”
“팔리는 말 전부 사.”
“뭐? 피아노를 치라고?”
“그래도 엄청 남는 장사잖아.”
“그렇긴 하지만….”
민수와 춘식이 대화를 나누었다.
치우는 7번을 축으로 하고 6구멍에 1만 원씩 걸었다. 사면서도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자기보다 마력이 뛰어나니 인정하기로 했다.
“이게 마지막 돈이야. 알아서 해!”
“걱정하지 마! 이 경주로 인생 역전이 될 거야."
민수가 투덜대자, 춘식이 큰소리를 쳤다. 배당판을 보니 7번과 함께 어떤 말이 들어와도 최소 30배 이상의 배당이 걸려 있었다. 문제는 7번이 과연 2착 안에 들어올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런 불확실한 경주가 어디 한두 번인가!
드디어 발주기 게이트가 열리자 7번이 가장 먼저 치고 나갔다. 춘식은 환호했지만, 치우는 이 상황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했다. 1,800m의 장거리 경주에서 추입마가 선행을 하면 거의 꼴찌를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경마는 수많은 변수가 발생하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응원하기 시작했다.
오르가슴! 이것이 남녀 간의 것만일까? 경마장에도 환상의 오르가슴이 존재한다. 그걸 누가 느끼냐고? 남자든 여자든,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가 경험할 수 있다.
마감 30초 전에 울리는 음악과 깜빡이는 배당판의 불빛이 사람들을 재촉한다. 구매를 못할까 하는 불안감은 남녀가 사랑을 나눌 때의 절정 순간과 같다.
마권 구매가 마감되면 현장의 스릴감을 느끼려는 사람들로 트랙 주변은 북적거린다. 말들이 발주기로 들어가면, 긴장감에 휩싸여 담배를 물게 된다. 시선은 말과 배당판을 번갈아 가며 집중한다.
“으쌰!” 하는 소리와 동시에 말들이 게이트에서 튀어 나간다. 자신도 모르게 담배를 빨아들이는 힘이 강해진다. 서너 모금이면 꽁초가 될 정도다.
치우는 7번 말이 선두를 달리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어느새 트랙 앞으로 서너 발자국 나아갔다. 이어 소리 지를 준비를 한다.
“죽여! 살려!”
치우의 바지는 이미 젖어 있었다. 결국 경마장에서 강렬한 쾌감을 느끼고 말았다. 이는 의지가 아닌 본능이었다.
7번 말은 4코너를 돌자마자 급격히 무너졌다. 춘식은 자지러지게 비명을 질렀다. 마지막 직선주로에서 순위 경쟁이 격렬해졌다. 등수가 바뀔 때마다 관중석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이 거셌다. 그 소리가 잠잠해질 즈음, 확정판에 순위가 나타났다. 춘식이 그렇게 자신하던 7번 말은 뒤에서 세 번째로 들어왔다. 세 사람의 마권은 휴지 조각이 되었다. 춘식은 미안한지 엉뚱한 변명을 하며 선수를 쳤다.
“나는 고배당 말을 뽑아놓고도 제대로 엮질 못하네. 아, 뚜껑 열려.”
“예상한 대로네! 형의 추천한 7번이 14마리 중 12번째로 들어왔어. 그래도 두 마리를 제쳤으니 활기찬 말은 맞네. 아휴! 세뇌당한 내 머리를 하수구에 처박아야지, 누굴 탓하겠어?”
민수의 강렬한 레이저를 피하려고 춘식은 시선을 돌렸다. 연달아 헛손질했으니, 그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담배 좀 피고 올게.”
흡연실로 가던 치우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중앙 복도에 세워진 수십 대의 발매기 중 유독 한 발매기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어르신, 왜 저 발매기만 이렇게 사람들이 많아요?”
그는 궁금하여 옆에 있던 노인에게 물었다.
“얼마 전 저 발매기에서 어떤 할머니가 자동으로 삼복식에 베팅했는데, 무려 4천600배를 맞췄다네. 그 이후로 저 발매기가 복기계로 소문이 나서 인기가 많아졌지. 자네도 한번 해보게. 어차피 공부해서 많이 잃을 바에야 로또를 한다는 생각으로 하면 적게 잃을 거 아닌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로또에 몇백, 몇천을 베팅하는 사람은 드물죠. 저 복기계는 로또 명당과 다름없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런데 얼마를 받았어요? 배당금이 꽤 될 텐데요.”
“아마 500원을 베팅해서 세금 제하고 200만 원도 못 받았다지.”
“네?”
치우는 그 할머니가 부러우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제야 구매표를 확인해 보니 자동식이 표기되어 있었다. 매출을 높이기 위해 로또처럼 복불복의 자동 방식을 도입한 마사회의 상술에 그는 씁쓸한 기분으로 흡연실로 들어갔다.
점잖아 보이는 중년 남자가 모니터 앞에서 한 경주마를 열심히 응원하고 있었다. 경주가 끝나자, 그는 베팅이 실패했는지 한 움큼의 마권을 바닥에 내던졌다. 옆에 있던 아저씨는 그 마권을 주워 들고는 “아이고, 아까 경주에 승부를 걸었구먼”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때 초췌한 모습의 여자가 흡연실로 들어왔다. 그 여자를 본 남자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여자는 남자를 노려보며 숨을 고른 후, 소리쳤다.
“야! 이제 2층이냐? 저걸 내가 남편이라고. 나가! 내가 이 짓을 한 번 더 하면 죽일 거라고 했지?”
순간, 실내는 긴장감이 감돌았고 남자는 급이 밖으로 나갔다.
“죄송합니다. 남편이 경마에서 돈을 많이 잃어서 정신이 나갔어요. 그래서 죽은 마권을 주워서 자기가 한 것처럼 자랑하고 다니네요.”
여자는 사과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치우는 ‘얼마나 많은 한이 쌓였으면 저럴까’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