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노트북에 커피 쏟아서 쓴 경위서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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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제아무리 유명한 경영대학원 출신이라고 할지라도 경영 관리 기술을 이론적으로 배웠을 뿐이지 돈 냄새를 맡는 후각을 훈련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단 중간관리자급 정도가 되어야 개인별 능력의 차이가 혁혁히 드러가게 된다.
(*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인 것 같다. 경영이든, 의학이든, 의류든 이론으로만 빠삭하게 배워봤자 실전이나 실무에서는 도움은 되지만 현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이론만으로 컨트롤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리 단순하지 않다. 물론 이론을 아예 모르고 시작하는 것과는 다르겠지만 이론이 빠삭하다고 모두 전문가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후배 인터뷰에 그런말을 했다. 자격증이 쓸모가 있냐는 말에 자격증이 없는 것보다야 있는 게 낫지만 실제 시뮬레이션이나 연습을 안하면 무용지물인 장농면허처럼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동아리 활동이나 그 진단에 대한 역할이나, 레크레이션을 바로 내담자한테 하는게 아니라 서로 역할 롤플레잉을 하면서 익혀놔야 현장에서 그나마 덜 삐그덕 된다고. 자격증을 돈 주고 땄는데 활용을 못하면 그건 돈도 버리고 시간도 버리고 능력도 버린 셈이니까. 무언가를 할땐 써먹고, 내 경제적상황에 +a 가 딸려 올 수 있을까? 만약 확신이 없더라도 땄으면 써먹어야 본전을 찾는다.
혁혁히 : 1. 공로나 업적 따위가 뚜렷하게. 2. 빛 따위가 밝게 빛나게.
혁혁히라는 단어를 서른살 넘어서 처음 본다. 그렇군요. )
(* 코로나19를 두 번 걸렸다. 나는 화이자 백신을 3차까지 맞았는데, 꽤나 슈퍼 항체라고 자신했는데, 백신을 맞고도 동기들이랑 겨울여행을 가서 백신맞은 바로 다음날 술을 먹기도 했다. 그러고 원룸 집으로 돌아와선 끙끙 앓았다.
나는 아픈걸 잘 참는편이다. 젊을 땐 그게 통했다. 근데 점점 아님을 느끼게 된다. 특히 코로나19 처음 걸렸을 땐, 그때 처음으로 서러웠다. 근데 또 코로나역학조사를 하던 나라. 수칙을 다 알고 있었고, 수칙의 허술함도 알고 있었고, 점점 이제는 컨트롤하기 어렵고 그냥 독감처럼 넘어갈 때 쯤엔 사람 많은 곳은 피했지만 친구네 놀러가서 저녁을 먹거나 술을 마시기도 했다. 반성한다.
아무튼 그 뒤로 후각이 돌아오긴 했지만 원래는 더 개코처럼 잘 맡았는데 후각기능이 많이 떨어진 것 같았다. 코로나19 후유증으로 후각은 덜하지만 돈이 돌아가는 냄새는 또 잘 맡는다. 장사가 좀 되겠네.! )
실제로 나는 미국 유명 MBA 소지자들 중 미국인이건 아니건 연봉을 더 주어야 한다고 판단되는 사람도 보았지만 처음 입사 당시의 연봉을 반으로 깎아도 여전히 돈이 아까운 사람들도 보았었다.
(* 타지로 나가서 첫 직장에서 받은 첫 월급은 6월 입사자라 6개월치 연봉이 적힌 계약서를 보고. 에? 연봉이 왜 반토막이지? 놀랐다. 사회초년생이라 그런걸 잘 몰랐다. 그냥 회사가 싸인하라고 하면 궁금한게 많아도 그냥 싸인했다. 그래서 주변에 꼼꼼한 동기들이나 궁금증을 참지않고 제안을 하는 직원들이 있으면 고마웠다. 나는 꼼꼼치는 않지만 신입 때 성격은 나쁘지 않았나? 주변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도움만 받는 건 아니고 나도 도움을 주기도 했다.
예 : 타팀 전화 처내주기, 우리 조직에게 맞는 내담자가 아닌지 분류해서 넘기기, 일처리 과정을 좁혀주기 뭐 그런 자잘한 일들.
나는 경차인데 경차유류세환급카드도 여자 동기생이 알려줘서 신청해서 잘 쓰고 있다. 주변에서 이것 저것 정보를 알려주면 나는 하긴 하는데 3천 만원이 모이면 비과세 은행으로 옮기라는 말을 많이 해줬는데도 그거는 뒷등으로 들었다. 그때 당시엔 세금이나 연말정산이나 할 줄만 알지 어떻게 해서 좀 더 아끼고 좀 더 혜택을 봐야하는지까지는 챙기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그 벌이나 그 생활에도 충분히 만족했으니, 굳이 아끼고 절약할게 뭐 있나 싶었다.
저축을 안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떡볶이에 맥주, 초밥에 맥주, 포카칩 과자, 가지 파스타 만들어먹고 자고 출근하기 바빴다.
돈이 쌓이면 어디다 쓸떼가 없나. 돈은 쌓이는데 돈 쓸 시간이 없었다.
데이트도 안하고, 가정도 없으면 그렇게 된다.
그렇다고 나는 취미생활도 딱히 돈 들어가는 취미를 한 것도 아니고
술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집에 쟁여놓고 마시는 타입도 아니였고
혼술은 안하는 편이었다.
근데 남자 상사 선배에게 스트레스 받았을땐
시발을 외치며 소주 한 병을 사다가
쭈꾸미 데쳐서 석잔을 혼자 마시고
울면서 잤다.
이 시발놈.... 으앙......
개새끼.....
그 처지가 처음으로 안쓰러워서 그랬던 것 같다.
(내 기준) 돈이 많이 찍혀도 기쁘지가 않았다.
그래서 울면서
그만 두고 싶다고 그랬다.
평생을 이렇게 출 퇴근하면서 사는게
20대는 재밌기라도 했지
30대는 다들 늙어가는 도입부라.
아무나 만날 수 없고
예전에 내가 알던 사람들이 아닌 것 같고
다들 떼가 타니까
이도 저도 아닌게 너무 싫었다.
뉴스에선 매일같이
실업자, 자살률 1위, 정치인들은 누가 더 범죄저지르나 경쟁하는 얘기들만
칼부림, 또 뭐가 있을까 아동학대.
만보걷기를 하면서 기본 체력이 올라가면서
아침잠도 사라졌었다.
그래서 아침 뉴스를 보면 그랬고,
그렇게 출근을 하면 늘 일상이 똑같았고.
연애를 해도.
어차피 장기연애를 끝내고 시작하는 마당에
결혼아니면 헤어질 놈인데
굳이 시간과 돈을 써야 하나 싶었고
결혼에 대한 로망도 없었다.
이 직업이라 그런지
행복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만 보게되다 보니까
대가리 꽃밭은 내가 알던 세상이 맞나
그러니 최고관리자가
죽상인 내 표정을 보고
"이제 점점 삶의 고민이 무거워질거야"
내 눈치를 살피면서 말씀하셨다.
저 말을 내가 이해를 할란가~ 말란가~ 라는 표정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도 워낙에 낙천적으로 살아서
세상 험한 꼴을 봐도 큰 데미지 없던 나였는데
이제는 그게 큰 일이였구나를 알게 되어서
그래서 세상이 무서웠다.
나는 생각보다 예민할때도 둔할때도 있다.
예민한 것 같은데 둔하고
둔한데 예민하다.
그래서 위에 상사들이 싸우거나 기싸움을 하면
숨죽이긴 했지만
별 대수롭지 않았다.
그들의 관계지 굳이 내 관계에 까지 대입시키지 않았고
퇴근하면 회사 생각이 없을 정도로 분리가 잘 되었는데
점점 연차가 찰 수록
그 미묘한 기류들이 더 느껴지게 되고
불편해졌다.
돈 벌러 왔지 싸우러 왔나 싶기도 했고
다들 나이들은 지긋하게 드셨는데 왜그럴까 싶기도 했고
앞으로 계속 쭉 봐야하는데
근데 지금은 안다.
<미생> 오과장처럼
그냥 가장이니까, 1인 가장이니까
그냥 1818 하면서 출근하고 술먹고 그러는 거다.
아무튼, 결론은 나도 봤다. 세이노 선생님만 본게 아니라
저 사람은 저 호봉에 저 돈은 좀 아니지 않나.
저 사람은 저 호봉에 받는 돈이 좀 적지 않나.
그래서 그렇게 국개의원, 아니지 엣헴 국회의원님들.
욕을 먹는 의원도 있고,
칭찬을 받는 의원도 있는거다.
어떤 의원이 될지는 본인이 하기 달려있다.)
대조직에서는 일이 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집단 속에 숨기 쉽고 스스로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기에 능력 배양을 등한시하는 경향도 많다.
(* 대부분 이게 고여가는 것이다. 나는 고인물 선배들을 많이 봤는데, 그들을 그렇게 욕해놓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되는게 싫어서 계속 해서 책도 보고 자료들을 찾아서 읽는 노력을 했다. 그러다보니 그게 내 기준엔 평균치 인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내가 피곤한 사람이 되어가나 보다. 수요 없는 공급은 나도 싫으니까. 같이 공부하자 했는데 싫다고 하면 거기까지다. 나도 굳이 두번 세번 제안하지 않는다. 나 혼자 지식배양하기도 바쁜데. 근데 함께 나눌수록 좋은건 맞으니까 나누려 했던 것이지만 나이먹고도 누가 계속 떠먹여줘야 하나. 이젠 알아서 수저들고 떠먹을 나이다. 나이가 들었는데도 누가 떠먹여줘야하는건 본인이 거의 이제 늙은 신생아 처럼 살겠다는 것이다.)
가장 한심한 경우는 대조직에서 '얼마의 예산 혹은 매출을 주물렀다.'는 것을 자신의 개인능력으로 생각하는 경우이다. 조직이 일을 하는 것이지 개인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 그렇다. 나는 사기업이나 대기업을 다닌 건 아니지만 복지 예산이 다른 예산에 비해 엄청나게 많지는 않아도 액수만 놓고보면 적은 돈도 아니다. 그렇기에 사업비나 추경 뭐 이런 단어들을 보면 나는 100만원도 큰 돈인데 억 단위나 천 단위가 그리 익숙치 않아서 1년 치 사업비를 보면 놀랐다.
소모품을 상반기 하반기 나눠서 200만원치를 써야할 때도 생각없이 써야할 게 아니라 기존에 비치된 소모품은 어떤 종류들이 있는지, 재고는 남아 있는지, 필요한 물품은 뭐가 있는지. 다 같이 적고 최대한 저렴하지만 너무 저렴하지 않고, 적은 돈으로 성능 좋은 물품을 들여놔야 오래 쓰고, 다른 제품을 살 수 있는 돈을 확보하게 된다. 그러면 좋은 거래처도 그 지역사회내에서 어디가 좋은지 알아놔야 편하다.
보통 회계 행정처리하려면 영수증 보관이 필수고, 다녀오면 바로 복사해서 껴놔야 한다. 영수증을 챙겼다 생각했는데 잃어버리면 퇴근하고 나서 그 영수증 어디다 놨지? 카드 어디있지? 하면서 잠든 적이 한 두번이 아니였다.
내 실수는 곧 팀의 실수고 팀의 실수는 조직의 실수고, 그렇게 작용이 되니까 내 물건은 잃어버려도 회사 물품은 더 챙기려고 애썼다. 물론 회사 노트북에 커피 쏟아서 수리비 나온건 안 비밀이다. 대신 회사측 배려로 수리비용은 부담해주셔서 다행이었다. 그 경위서를 대공개 하겠다.
위 본인은 직원으로서 공용물품 사용에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 활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래와 같이 공용물품에 고장 또는 손상을 일으켜 이에 경위서를 제출하여 차후 본 건을 계기로 과오의 재발이 없을 것임을 서약합니다.
20년도에 나는 뚜껑 없는 그냥 일반 기본 컵을 사용했었고, 이 일을 겪은 뒤로 뚜껑을 닫는 텀블러인가. 개인 컵을 구매해서 사용했고, 그 뒤로 같은 일은 반복되지 않았다.
성격이 급한 탓에 주변을 잘 살피지 않을 때도 있다. 어쩔 땐 주변에 안테나를 많이 곧두세우기도 하지만 대부분 위험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딱히 그러진 않는다.
편해지는 순간 좀 너프해지는 것 같기도 한데 또 흐트러지는건 싫어한다.
그래서 J들 사이에서는 빼박 P지만
P사이에선 J에 가깝다.
I들 사이에서는 빼박 E지만
E들 사이에선 나는 I가 된다.
막상 멍석 깔아주면 나는 도망간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내가 모았지만
막상 사람이 많아지면 나는 집에 가고 싶어한다.)
아무튼 고여있지말고 계속 공부해라.
그렇다고 무슨 고시공부처럼 수험생처럼 사활을 걸고 하라는 게 아니라
공부에 재미가 들리면
사는게 좀 더 재밌어 진다.
이 말이 웃기겠지만
아는 만큼 보이고
알아야 사기를 안 당하고
알아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나는 서로를 서로가 지켜주는 줄 알았는데
사회생활 해보니 아니더라.
착한 이미지 관리 속에
차라리 대놓고 나쁘기라도 하면 양심이라도 있지
착한 척 속에 본심은 숨기고
밑그림 큰그림 그리는 연놈들이 한 둘이 아니다.
앙증맞은 싸가지 없는 놈들
조직은, 세상은 절대 혼자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먼저 노력하지 않으면 그것 또한 바꿀 수 없다.
나 부터 똑바로 살고
그 다음에 개지랄을 같이 떨어줘야 한다.
이왕이면 뜻이 맞는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그 힘은 커진다.
조직은 개인을 위해 돌아가지 않고, 개인 또한 조직을 위해 출근하는게 아니라 개인을 삶을 위해서, 가족때문에 출근을 한다. 그 사이에 벌어지는 오해와 갈등들의 지점을 현명하게 풀어나가는 조직이 오래 롱런한다.
책은 이미 많이 읽었지만
하고 싶은 말이 많으니까 계속 쓰게 된다.
세이노 가르침 리뷰는 계속 됩니다.
세이노 미니미 무럭 무럭 크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