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약용이 살아있다면

by 닌자

정약용이 살았던 200년 전 조선은 신분제와 당쟁, 외세의 위협 속에 흔들리던 사회였다.

그는 혼란한 시대 속에서 현실을 직시하며, 사람을 위한 제도와 사상을 고민한 학자였다.

형의 부재를 안고 마재로 돌아온 다산은, 그 후 남은 생을 조용히 학문과 글쓰기에 바쳤다.


가끔 상상해 본다.

만약 지금 이 시대에 정약용이 살아 있다면, 그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적었을 것이다.

SNS와 블로그를 넘나들며,

정책의 허점을 조목조목 짚고,

백성의 고통을 풀 방법을 제시했을지 모른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부패한 권력, 경직된 신분제, 그리고 굶주림이 뒤섞인 사회였다.

오늘날의 한국은 신분제가 없다고 말하지만, 부와 기회의 대물림이 존재하고,

사회의 불평등은 여전히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오늘 우리 사회의 어떤 문제를 파고들었을까?

첫째, 그는 제도의 허점을 찾는 일에 나섰을 것이다.

『경세유표』에서 그는 중앙의 관제를 정비하고, 지방 행정을 재편하며, 토지와 조세 제도를 고치고, 구휼 체계를 세밀히 설계했다. 정치의 목적은 도덕적 외침이 아니라, 백성의 삶을 살리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음을 보여주었다.

오늘날이라면 부처 간 칸막이 행정과 낙하산 인사, 지방자치의 불투명함과 지역 격차, 부동산 불평등과 세대 갈등, 복지 사각지대 같은 현실이 그가 붙잡을 주제였을 것이다. “세금은 백성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는 그의 원칙처럼, 다산의 시선은 언제나 백성에게 향해 있었다.


둘째, 그는 사람을 바꾸는 일에 나섰을 것이다.

『목민심서』는 공직자의 윤리 강령이자,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깨우는 책이었다. 다산은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이 부패하면 무용지물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청렴, 절약, 애민을 거듭 강조하며, 관리 한 사람의 마음가짐을 바로 세우려 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배움은 삶 속에서 실천되어야 한다”는 그의 일관된 신념이 흐르고 있었다. 다산은 수많은 편지에서 제자들에게 학문은 글 속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드러나야 한다고 거듭 가르쳤다.


셋째, 그는 약한 자를 위한 목소리를 냈을 것이다.

『흠흠신서』에서 다산은 형벌은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쓰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은 권력을 지키는 도구가 아니라, 가장 약한 이를 보호하는 장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법과 제도가 약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는 변호사나 사회운동가처럼 직접 나섰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법과 제도에만 머물지 않았을 것이다. 기후 위기, 불평등, 노동 문제, 기술 발전 속에서 일자리 불안에 놓인 사람들의 삶까지도 그는 외면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산은 언제나 시대의 모순을 직시했고, 그 모순을 바꾸기 위해 끝까지 부딪힌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개혁 정신은 단순히 제도와 법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유교와 천주교, 전통과 외래 사상 사이의 갈등 속에서도, 그는 배척이나 단절보다는 새로운 사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보였다. 약자를 보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낯선 사상과 다른 세계를 향한 열린 태도 또한 그의 개혁을 떠받친 또 다른 디딤돌이었다.

오늘 우리는 변화를 말하면서도, 막상 나와 다른 생각과 마주하면 쉽게 등을 돌리고 적으로 규정해 버린다.

그러나 정약용 사상은 경계에 서서, 서로 다른 세계를 잇는 다리를 놓는 일이었다.


지금 그가 우리 곁에 있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와 다른 생각과도 대화를 이어 가보라. 그 안에서 길을 찾을 수 있다.

역사를 읽는 이유는 단지 과거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속에서 오늘의 문제를 보고, 내일의 길을 찾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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