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은경 Aug 22. 2024

일, 가정 그리고 나

열여섯 번째 오늘, 저울질

긴 공백 끝에 일을 구했다. 워킹맘이 되고 나서 부쩍 바빠졌다. 하루일과 자체가 바뀌었다. 아이에게 맞추어졌던 나의 일상이 조금은 내 위주가 되고 있었다. 회사에 출근하려면 늦어도 8시 30분 버스를 타야 한다. 9시까지 가는 유치원을 늘 첫 번째로 도착하는 아이. 유치원 앞에서 선생님께 토스하고 인사도 못 나눈 채로 부리나케 달려가야 겨우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간발의 차이로 늦으면 영락없이 택시다. 우리 동네는 버스가 많이 없어서 그다음 버스를 기다리면 지각이니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아이는 내 스케줄에 맞춰 일찍 준비를 하고 매일 유치원 1등 손님이 되어야 했다.


하원도 마찬가지. 회사가 6시에 끝나는데, 유치원도 6시에 문을 닫는다. 버스를 타고 유치원을 가면 6시 40분, 택시를 타고 유치원을 가면 6시 30분. 무조건 학원을 보내야 했다. 이곳저곳 연락을 돌려보다 다행히 6시 30분까지 기다려 주시겠다는 고마운 선생님을 만났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은 6시에는 모두의 퇴근 시간이라는 것. 늘 택시가 늦게 잡혔고, 늘 차가 막혔다. 선생님께 너무 죄송해서 아이 혼자 집에 있을 수 있도록 연습을 시켰다. 집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간식이 어디 있는지 설명해 주고, 티브이 사용법 등을 알려주었다.


유난히도 택시가 잡히지 않던 날, 도저히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아이에게 혼자 집에 있길 부탁했다. 집에 혼자 있는 것이 처음이었던 아이. 그게 트라우마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혼자라는 사실에 덜컥 겁이 났는지 아이는 가방을 멘 채로 쭈그려 앉아 있었다. 불 켤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거실 구설에서 울고 있었다. 회사 안 다니면 안 되냐는 울먹거리며 묻는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했다.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들을 나열해 가며 아이에게 이해를 바랐다.


나에게 아주 큰 고비가 또 찾아왔다. 아이가 열이 나는데 남편도 나도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 급히 쉴 수 없었던 상황이 생겼다. 해열제를 먹이니 열이 떨어져서 단순한 열감기인 줄만 알았다. 걱정되는 마음이 있었지만 내가 맡은 프로그램을 망칠 순 없었다. 그렇게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


프로그램이 끝나갈 무렵, 선생님이 전화가 오셨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 될 것 같다는 연락이었다. 뒷정리를 직원분께 맡기고 학교로 달려갔다. 축 쳐져서 오전 내내 보건실에 누워있던 딸아이. 열이 다시 올랐는지 몸이 뜨거웠다. 독감이었다. 심지어 중이염까지 함께 걸려서 귀도 너무 아파서 고통스러웠을 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내가 지금 뭐 때문에 돈을 벌고 있는가 싶었다. 나름 일과 가정을 균형 있게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나에게 일과 가정을 동시에 유지하는 건 불가능한 일있은 걸까?"


겨우 다시 구한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데… 나에겐 일도 중요하고 가정도 중요한데 왜 이 둘은 나에게 하나만 택하라고 속삭일까?


새벽에 맥주 한 캔 하며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답답한 마음을 가득 담아 하소연을 하는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우리가 미안해하고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 아이도 그걸 느낄 거라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잘 해내고 있다고 서로 응원해 주자고 말이다. 그리고 아이가 갑자기 아픈 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방법을 하면 되는 거라고 덧붙였다. 모두 맞는 말이었다. 그때부터 내 마음을 더 단단하게 다잡자고 결심했다. 회사에선 회사일만 집중했고, 집에서 업무 관련일은 일절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쉬는 날은 무조건적으로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힘썼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새벽에 한 시간이라도 나만의 시간도 마련했다.


어쩌면 난 평생 완벽한 균형을 이루긴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완벽함을 계속 쫓기보다는 일과 가정에서 얻는 다양한 경험과 소중한 순간을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모든 워킹맘을 응원하며-

열여섯 번째 오늘, 끝.





• 오늘의 질문 일기 •



Q1. 나의 일과 가정의 균형은 어떠한가요?





Q2. 일과 가정을 조화롭게 지키는 방법이 있나요?




이전 16화 엄마, 이름만 불러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