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째 오늘, 부모라는 그 이름
첫아이가 어렸을 때, 병원 진료가 있었던 나는 급히 아이들을 돌봐 달라고 부모님을 호출했다. 언제쯤 도착할까 문 앞을 서설이고 있던 나에게 돌연 걸려온 전화에 큰 충격에 빠졌다.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전해졌고, 그 순간 내 마음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우리 집에 오는 길에 큰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폐차를 할 정도로 큰 사고였고, 나 때문이란 죄책감에 휩싸였다. 이 상황에서 날 더 아프게 했던 건 엄마의 말이었다.
"너 병원 가야 되는데 어떻게 해.. 미안해.. 우린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본인이 힘든 상황에서도 나를 안심시키려는 그 말이 날 더 아프게 했다. 가슴 부근을 심하게 부딪혀 숨이 제대로 쉬어 지지도 않았던 엄마는 목소리를 덜덜 떨며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 가셨다. 모든 것이 나 때문이란 사실에 편히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리고 병원 진료 시간에 늦을까 봐 짜증을 냈던 내가 너무나도 죄스러웠다.
매일 밭일을 하시며 몸 성한 곳 없으신 엄마와 희귀병을 앓고 계신 아빠.. 안 그래도 힘드실 두 분께 아픔을 더한 게 그들의 딸이라니.. 사고의 후유증으로 몸도 아프고, 마음도 힘들어질 부모님의 모습을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급히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고, 두 분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고통스러워하는 두 분을 볼 때의 그 심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부모님을 부르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아픈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돌보느라 힘들지 않냐고 나에게 오히려 웃으며 괜찮은 척하는 부모님이 속상했다. 맨날 짜증만 내고 투정만 부리는 내가 도대체 뭐라고 이렇게까지 날 생각해 주는 걸까. 어릴 때 힘들었다는 이유로 부모님께 자꾸만 상처만 주는 딸인데 말이다.
사실 그렇게 상처만 줬던 이유는 일종의 복수심일지 모른다. 내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게 모두 부모님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도 똑같이 힘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전화도 잘 안 드리고, 늘 퉁명스럽게 대했다. 사춘기 때 참고 살았던 그 마음을 이제라도 표출하는 거뿐이라는 나름의 합리화였다.
세상엔 완벽한 부모는 없을 텐데, 왜 난 완벽한 부모를 꿈꾸며 나의 부모를 힘들게 했을까 싶다. 세상에 완벽한 부모가 있을까? 부모가 되어보니 뼈저리게 느낀다. 때때로 잘못도 하고, 실수도 하고... 모두가 부모는 처음이니 당연한 실수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내 맘대로 되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뭐든지 다 해주고 싶었던 나의 마음과 달리 그만큼의 돈이 없고, 절대로 혼내지 않고 키워야지 했던 다짐과는 다르게 매일 화만 내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직접 경험해 보니 부모님이 나에게 행했던 모든 행동들이 결코 미움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내 부정적인 생각을 탓할 누군가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을 바꿔 부모님을 바라보니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이 끝이 없다. 어떤 말로 표현해도 모자랄 정도로 나에게 그 마음이 크게 다가왔다. 작은 일상 곳곳에서도 나타나는 고마움.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채워져 있는 밥상, 늘 깨끗이 정돈된 집, 몰래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시는 용돈, 조금이라도 쉬라며 나의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그 시간들, 잠잘 때 몰래 다가와 다리를 꼭꼭 주물러 주시던 그 손길도... 이 모든 것이 다 나를 위한 특별한 사랑의 마음이었음을.
오늘은 감사함을 가득 담아 전화라도 드려야겠다.
열다섯 번째 오늘, 끝.
• 오늘의 질문 일기 •
Q1. 나의 부모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Q2. 지금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