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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경 Aug 16. 2024

그러지 말 걸

열네 번째 오늘, 후회 없는 삶

내 친구들은 계단을 뛰어가듯 승진을 하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지하 1층에 머물러 있었다. 유산 경험이 있었던 나는 첫아이를 임신함과 동시에 일을 그만두었다. 조금만 더 키워두고 취업을 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육아에 힘썼다. 어린 시절 너무나도 중요한 그 시기를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았다.


그렇게 육아를 하다 보니 둘째 욕심이 생겼고, 아주 귀여운 딸아이를 낳았다. 반복되는 육아 일상. 둘째도 어느 정도 컸으니 이제는 정말로 일을 해보자 싶었는데, 이번엔 코로나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그렇게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경력이 단절되었다.


친구들과 후배들이 커리어우먼으로 멋지게 일을 해결하고 있는 모습들을 핸드폰 너머로 볼 때마다 쿵! 하고 난 더 아래로 내려앉았다. 단정한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도 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들은 나와는 다른 세계 사람들 같았다.


거울로 비친 내 모습은 목 늘어난 티셔츠에 고무줄 잠옷 바지를 입고 머리를 질끈 묶은 영락없는 집순이 아줌마였다. 모든 것이 후회가 되었다. 조금만 더 경력을 쌓아 둘 걸. 퇴사가 아닌 휴직을 쓸 걸. 임신을 조금만 늦출걸. 둘째를 낳지 말 걸. 부모니 곁으로 이사라도 가서 일을 빨리 시작할걸... 수많은 후회들이 새롭게 생겨났다. 날마다 내 선택에 대한 후회가 내 마음을 침식시키곤 했다.


"그때 그런 선택들 하지 않았더라면..."


과거에 발목 잡혀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시간 여행자라도 되고 싶은 심정이었다. 현재의 시간 축에서 벗어나, 과거의 순간으로 이동하고 싶었다. 일을 그만두기 전으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한다면 더 나은 삶을 살 것만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말을 잃었다. 창 밖을 보며 멍해지는 시간이 늘었다. 밝게 비치는 태양이 싫어 커튼으로 늘 가렸다. 그늘진 방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아이들을 신경 써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는 죽어 있었다. 저녁이 되면 날이 어두워짐에 따라 마음도 더욱 어두워졌다. 밤마다 울었다. 밖은 온통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한데 내 삶은 회색빛 같았다.


한없이 밑바닥을 쳐 더 이상 내려갈 힘도 없었다. 미래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과거만을 후회하다가 당장이라도 내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렇게 후회만 하면 달라지는 게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날 더 괴롭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매일 긍정적이고 밝은 하루하루를 살아내면 미래에 되돌아보았을 때, 행복한 과거가 될 텐데.. 왜 나는 계속해서 나쁜 하루를 살아가며 불행한 과거를 만들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의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양 옆에 아이들이 안겨 있었고, 흐르는 내 눈물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닦아주고 있었다. 그래, 내가 만약 아이들을 포기했다면 지금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없었겠지.


아이들이 나를 어둠에서 꺼내주었다.


물론, 어떤 날은 아이들이 잠든 후 내가 선택한 길이 정말 옳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또다시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의문에 빠져들지 않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건지 아니까. 아이들이 나에게 준 무한한 사랑과 행복을 나는 아니까. 아이들과 함께한 모든 순간들을 감사하며 기억에 담고 있으니까 말이다.


다시는 후회의 늪에 빠지지 않길 바라며-

열네 번째 오늘 끝.







• 오늘의 질문 일기 •



Q1.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경험이 있나요?





Q2.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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