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오늘, 적당한 거리
보수적인 아빠의 영향으로 나는 항상 정해진 삶을 살았다. 그렇게 살다가 결혼을 하니 선택에 있어 결정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큰 결정을 내릴 때마다 남편에게 의지를 하게 되었고, 그런 나를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나처럼 갇혀 있는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아이들의 자립을 위한 사랑이 제대로 표현되길 바랐다. 정성을 다해 보살펴 줄 수 있는 거리, 간섭하지 않고 오롯이 지켜봐 줄 수 있는 거리, 제 갈길 가도록 관여하지 않는 거리, 이런 적당한 거리에서 아이들을 사랑해 주고 싶었다.
‘적당한 거리란 무엇일까?’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있어서 언제나 따뜻하면서도 동시에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서로를 존중하고 자율성을 지켜주면서도 감정적인 연결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정한 적당한 거리의 의미이다. 이러한 의미를 떠올리며 나는 앞으로 어떻게 육아를 할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자라면 좋을까?
스스로 해내는 사람이 되길.
우리 아이들이 자신이 어떤 걸 해야 행복할지 스스로 알아내고 찾아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랐다. 나에게서 오롯이 독립할 수 있도록 적당한 바운더리 안에서 자유를 주고, 스스로 해낼 수 있는 힘을 키워주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적당하다는 건 참 어렵다. 나는 적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이 받아들일 땐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조언으로 하는 이야기를 잔소리로 들을 수도 있고 말이다. 아이들의 강점과 장점을 찾아내고 더 끌어낼 수 있도록 지지해 줄줄 알아야 하는데, 자꾸 내 눈에 아이들의 약점과 단점만 보이기 시작했다. 안 좋은 점을 고치려고 애들을 혼내고, 다그치고... 아이들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떨어 뜨리는 적은 그 누구도 아닌 나였다. 나는 아이들이 가장 멀리 해야 할 적이 되고 있었다.
모두 잘되라고 하는 말인데 도대체 왜 말을 안 듣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의 사랑은 집착이 되었고, 아이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너무나도 화가 났던 날, 나는 아이에게 해서는 안될 말을 해버렸다.
“이럴 거면 엄마딸 하지 마!! 엄마 말도 안 듣고!!”
충격받은 아이의 얼굴. 내 입으로 뱉어 놓고도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에 나조차 놀랐다. 후회했지만 그 말을 없던 일로 되돌릴 순 없었다. 딸아이는 흐느끼며 내게 말했다. “엄마 죄송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엄마 딸 계속하고 싶어요...” 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왜 이토록 아이들을 내 마음대로 휘두르려 했을까? 나는 아이들을 위한 육아가 아니라 나를 위한 육아를 해왔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돕고 지지해주지 못했다. 내가 느끼는 더 나은 삶을 살도록 강요하고, 혹여나 내가 바라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갈까 봐 한시도 아이 곁을 떠나지 못했다. 나의 이런 모습은 전혀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은 내가 힘들어했던 나의 과거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아이들은 부모의 바람과 달리 결코 원하는 대로 자라주지 않는다. 아이는 내가 아니다. 또 다른 독립된 인간이다. 그렇기에 나와는 다른 생각, 다른 느낌, 다른 감정을 가지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려놓음이 부모에겐 필요하다. 마음을 비우고 아이들을 바라본다면 저절로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지 않을까?
한 발자국 머리 떨어져서 아이들을 바라보길 다짐하며-
열네 번째 오늘, 끝.
• 오늘의 질문 일기 •
Q1. 적당한 거리란 무엇일까요?
Q2. 나와 가장 소중한 이의 거리의 선은 적당히 유지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