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오늘, 사랑받고 싶은 작은 아이
나는 사회복지사다. 예전에 들었던 강의 중에 강사님이 하신 말씀이 너무나도 기억에 남는다.
“지금 여기 계신 사회복지사분들은 모두 다 마음의 병이 있기 때문에 사회복지사가 되신 거예요”
머리에 망치를 맞은 듯 큰 충격이었다. 강당이 웅성웅성, 이러한 충격은 나만 느낀 것이 아니었다. 모두들 자기 이야기라고들 했다. 우린 대리만족을 위해 사회복지사를 하며 남을 돕는다. 나를 안아주고 싶음에 남을 안아준다. 나를 위로하고 싶음에 남을 위로한다. 나를 사랑하고 싶음에 남을 사랑한다. 웃긴 말 같지만 진짜 그러하다.
사회복지를 전공하며 인간에게 주어진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어린 시절의 경험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고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후회해 봤자 나만 손해라고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용기를 내고 내면아이 앞에 서서 진정으로 이해해 보려고 했다. 되찾아야 할 내 안의 소중한 잠재력, 나의 빛, 나의 작은 내면 아이.
분명 나에게 어두운 내면 아이만 있는 것은 아닐 거다. 하지만 햇살아이를 생각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분명히 아주 행복했던 시간들이 있었을 텐데… 앨범 가득한 나의 사진들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아빠는 사랑 가득한 시선으로 내 모든 것을 담고 싶어 하셨겠지. 그런데 내 기억에는 왜 항상 아빠는 화가 나 있었을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상냥하고 따스했는데 나에게는 그러지 않는 아빠가 너무 미웠다. 엄마는 늘 나에게 ‘밖에서 아빠가 널 얼마나 칭찬하시는데~’라고 하셨지만 정작 내가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느꼈는데 그런들 무슨 소용일까? 아빠는 내가 오만해질까 봐 칭찬을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럼 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기분으로 살아왔는데… 이건 괜찮은 걸까? 난 항상 모든 게 두렵고 모든 게 불안했다. 잘 못해낼까 봐, 사랑받지 못할까 봐, 모든 걸 잘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함에 항상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완벽하고 싶었다. 이런 내 모습이 나조차도 버거웠다.
아직도 어린 시절에 갇혀 있는 나.
몸은 커졌지만 아직 그 시절 그대로에 머물고 있었던 내 안의 나.
내면아이 공부를 시작함과 동시에 결심했고 나를 오롯이 마주 보려고 노력했다. 많이 울기도, 강하게 분노하기도 했고, 하루 종일 우울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런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아이들에게 대물림되지 않도록, 그리고 내가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계속 이런 과정들을 경험하고 나면 부모님과 편해지고 아이들과 남편과도 편해질 거라 믿는다. 그리고 내가 나와 편해질 것이다.
내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 한 가지는 내가 나를 편하게 대하 기이다. 내가 날 너무 옥죄이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깊은 물음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아마 금방 해결되지는 못할 것이다. 30년 넘게 이렇게 살아왔고, 이미 높아져 버린 기준치들을 한순간에 낮출 수는 없기에. 그래도 계속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변할 것이다. 나를 받아들이며 나의 어두운 내면을 마주함으로써 매일 강해지고 있는 나를 느낀다.
안녕, 나의 작은 내면아이야.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네가 아직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다니 너무 놀라워.
나는 너에게 빌리라는 이름을 붙여주려 해.
Because I love you 제일 앞 알파벳을 딴 빌리.
널 제대로 마주 보고 사랑하고 싶어서 너에게 이런 이름을 붙여본단다.
나는 나를 소중하고 귀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그래서 너를 더 외면했지.
그런데 이제는 너를 마주해 보려고 해!
그리고 매일 너에게 이야기해 줄게.
‘그냥 오롯이 너를 믿는다.’
‘그냥 너니까 사랑한다.’
‘그냥 너 자체가 소중하다’
매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
세 번째 오늘 끝.
• 오늘의 질문 일기 •
Q1. 내 안의 아픈 나는 어떤 아이인가요?
Q2. 나의 내면 아이를 어떻게 안아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