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오늘, 나의 쓸모
나는 완벽한 아이어야 했다. 학교에서는 똑 부러지고 교우관계가 좋은 아이, 이웃들에게는 예의 바른 착한 아이, 집에서는 동생들을 잘 돌보고 맞이 역할을 잘 해내는 아이. 내가 정말 뭘 원하는지,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내 기분은 어떤지, 그 아무도 나에게 묻지 않았다. 나조차도 나에게 묻지 않았다. 그냥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초등학생 때였나?...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린 나이였지만 사는 게 버거웠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할 무렵, 나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싶었던 나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을 잘 챙겼다. 그 아이들 중 한 명이 원인이었다. 그 아이와 친하게 지내고 어울리는 동안 점점 내 주변에 친구들이 사라져 갔다. 어느 날 나에게 단 한 명의 친구도 남지 않았다. 그 아이도 말이다.
“이제 내 기분 알겠어? “
소름이 돋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 내가 챙겨주었던 아이가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을 퍼뜨리고 다닌 것이었다. 내가 동정한다고 느껴서 기분이 나빴던 걸까?
지금도 그때 그 아이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왕따가 시작되고 괴롭힘의 정도가 점점 심해졌다. 같은 반 아이들에게 욕이 담긴 쪽지를 수시로 받았다. 책상엔 낙서로 가득했다. 지우면 또 그다음 날 다른 낙서가 생겨났다. 괴롭히지 않았던 다른 아이들도 나에겐 똑같았다. 손 내밀어도 잡아주는 이 한 명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부모님에겐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지 못했다. 완벽한 딸이 되고 싶어서, 나의 쓸모를 인정받고 싶어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숨겼다. 선생님에게도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항상 웃었다. 선생님이 아는 순간, 부모님 귀에 들어갈 것임을 알기에 혼자 끙끙대며 힘듦을 숨겼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치이고, 집에선 가족들에게 치이고, 집에 혼자 있던 순간마다 참 많이도 울었다. 죽으면 행복해질까 매일 매 순간마다 생각했다. 너무 슬프고 아프고 힘든데 아무 일도 없는 척 웃는 게 제일 힘들었다.
그래도 그냥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왕따가 끝이 났다. 다시 친구들이 다가오며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다.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친구들이 다시 날 봐줘서 좋았고, 부모님께 끝까지 들키지 않아서 좋았는데... 사실은 모두가 내 맘을 알아주길 바랐던 건 아닐까?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마음이 너무 아픈데...
나는 나의 쓸모를 인정받기 위해 이처럼 숱한 거짓말을 하며 살았다. 나 자신까지 속이면서 말이다. 어느 순간 되돌아보니 내 삶 자체가 거짓 같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진짜의 내 모습이 무엇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엄마에게 아빠에게 동생들에게 선생님에게 남편에게 나의 아이들에게까지도 나를 숨기고 사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나 자신이 무서웠다.
나의 쓸모.
삶을 살아가다 보면 넘어질 때도 있고, 구석구석 상처가 생길 수도 있다. 남보다 뒤처질 때도 있고, 좌절감에 허우적거리며 그대로 잠식될 때도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도 있을 것이다.
‘정말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인간은 모두 자신의 쓸모에 대해 고민하고 불안해한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분명 존재의 이유가 있다.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던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나고, 예쁜 두 딸을 얻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내가 지금 존재하는 이유는 자연스럽게 주어진다. 살다 보면 새로운 상황에 놓이고 자연스럽게 나의 또 다른 쓸모는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는 사랑을, 누군가에게는 행복을, 누군가에게는 위로를,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주겠지.
앞으로도 여러 쓸모를 받아들일 용기를 가질 수 있길 바라본다.
두 번째 오늘, 끝.
• 오늘의 질문 일기 •
Q1. 나의 쓸모는 무엇입니까?
Q2. 쓸모없는 삶이 있다고 생각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