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오늘, 온전한 혼자
어릴 때 막연한 나의 꿈은 독립이었다. 어릴 적부터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독립적인 삶을 꿈꿔왔다. 내가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멋진 여성이 되는 꿈.
작가가 정해 놓은 인물 설정과 같이, 정해진 삶을 살아가는 아이였던 난 빨리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 목표를 고등학교 진학으로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어릴 적 바닷가 근처 촌에 살았다. 5분 정도만 걸어가면 바로 바닷가가 나왔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우리 집에서도 바다 냄새가 났다. 나는 바다가 좋기도 했지만 아주 밉기도 했다. 그 커다란 파란 물결이 날 떠나가지 못하게 막는 것만 같았다. 고요한 적막도 싫었다. 가만히 있으면 바다가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거기만 머무르게.
벗어나지 못하게.
악착같이 공부를 했다. 사실 나는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다. 뒤돌면 잊어버린다고 친구들이 붕어냐고 놀린 적도 있었다. 기억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걸 책에 빼곡히 다 적었다. 배운 내용을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우리 집은 가난해서 학원을 다닐 수가 없었다. 다른 친구들이 학원을 다니며 모의 문제지를 풀고, 꿀팁들을 배우는 동안 나는 악착같이 교과서를 달달달 외웠다. 그리고 상위권에 들게 되었다. 내 꿈에 도달해 나가는 것 같아서 벅차올랐다.
하지만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던가. 시내권에 갈 수 있는 성적이 됨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본인의 바운더리에 있길 바라셨다. 끝까지 동네 고등학교 진학을 강요하셨고, 매일 밤 울며 잠들었다. 담임선생님께서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으시고, 만나 뵙길 원하셔도 안된다고만 하셨다.
원서접수 마지막 날, 선생님의 오랜 설득 끝에 나는 시내 인문계 고등학교 원서접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원했던 자취, 나는 혼자가 되었다.
자취를 하며 신제적, 공간적인 독립을 이루었고, 경제적 독립은 아르바이트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정신적 독립은 나에게 너무 어려운 과제였다. 나름 나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도 내리고 실행해 간다고 생각했는데, 결론적으로는 부모님의 선택에 따르게 되는 삶이었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내 뜻을 굽히지 않고 밀고 나가는 용기가 필요했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지금까지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는데 어떻게 바꿀 수 있어? 이게 내 답이었다.
대학생 때까지 자취를 하며 10년 정도 혼자 살았지만, 나는 온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기에 온전한 성인도 되지 못했다. 나이는 먹어가는데 너무나도 어리고 미숙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부는 한낮 작은 어린아이 일 뿐이었다.
‘내 삶에 내가 있긴 한가?’
부모님 뜻대로 살아가는 몸만 큰 어른. 정말 온전한 독립을 하지 않고서는 나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빠른 결혼을 통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했다. 부모님에게서’만’ 독립을 한다면 나는 온전한 혼자가 될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결혼 후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어느 날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혼은 온전한 독립인 건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다고 내가 온전한 혼자가 되는 걸까? 나는 점점 남편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가 되어가고 있는데.. 이건 온전한 혼자가 된 게 맞는 건가? 도대체 온전한 혼자는 뭘까?
한참 동안 고민한 나는 이제부터 온전한 혼자라는 말은 이렇게 정의 내리기로 했다.
[온전한 혼자]
나를 온전히 바라보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상태. 나의 사고, 나의 행동, 나의 결정 등 모든 것을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나타낼 수 있는 것.
온전한 혼자란 결국,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오롯이 나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겉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아직도 온전한 혼자가 되지 못했다. 나의 자유롭고 의미 있는 온전한 혼자를 위하여 매일 글을 쓰며 나를 마주해 본다.
언젠가 온전한 혼자라는 꿈에 도달할 수 있기를 바라며-
네 번째 오늘, 끝.
• 오늘의 질문 일기 •
Q1. 온전한 혼자란 무엇일까요?
Q2. 나는 온전한 혼자의 상태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