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석 같다.
나는 덕산 아파트 표석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주민들 사이에서도 흉물스럽다는 말이 오고가는 듯했다. 엘리베이터 내부에 마련된 공지사항에 누군가는 표석에 굳이 관리비를 들이고 싶지 않다고 했고 누군가는 인근의 신축 아파트처럼 대리석 재질에 깔끔한 입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너 506호지? 쿵쿵 거리지마’ 따위의 말들을 써두었다. 엄마가 공지사항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어떻게 생각해?”
내 물음에 엄마는 어깨만 으쓱했다.
“들어가서 짐 정리나 하자. 수육 해줄게.”
저녁거리가 든 장바구니를 어깨에 고쳐 메며 엄마가 말했다. 약간 들뜬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내 짐은 소형 사이즈의 캐리어 하나였다.
남편은 기어코 서울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괜찮다고 두 번이나 말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가정법원에 이혼 서류를 제출하고 나선 지난달과 똑같은 태도였다. 그때도 남편은 혼자 걷고 싶다는 나를 억지로 차에 태워 집까지 향했다. 그러지 좀 마. 우리 잘 하기로 했잖아. 남편은 핸들을 잡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애써 차창 밖을 바라봤다. 기차가 도착하기까지 삼십 분정도 남아있었다. 혼자였다면 근처 카페라도 가서 커피나 빵을 먹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역에는 카페는커녕 플랫폼에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남편과 나는 역 내에 설치된 티브이 앞에서 자리 하나를 두고 네가 앉니 내가 앉니 했다. 결국 캐리어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남편은 기차가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올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다가 내가 캐리어를 들어보이자 조심해, 라고 말했다. 캐리어인지 코로나인지 둘 다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조심하라는 당부에 나는 당신도, 라고 말하며 주머니에 넣어둔 손 소독제를 꺼내어 남편의 손등에 묻혔다.
사십년이 훌쩍 넘은 덕산 아파트의 복도식 현관은 지난겨울보다 한층 더 낡아있었다. 그때는 남편과 시댁을 다녀오는 길이라 정신이 없어 제대로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벽 곳곳에 결로 현상으로 곰팡이가 스며들어 있었다. 형광등조차 제대로 켜지지 않았다. 형용할 수 없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소형 사이즈 캐리어와 성인 여성 두 명으로도 좁은 복도가 꽉 찼다.